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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Aug 27. 2023

똑같이 당해서 다행이야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다음날에 새벽부터 학교 밖 동아리 활동이 예정돼 있었다. 학교까지 버스로 통학을 하고 있을 때인데,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40분이 걸렸다. 평소처럼 집에서 버스로 출발했다가는 너무 늦어서 동아리의 새벽 활동이 끝나고 나서야 도착하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 중이던,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던 친구한테 하룻밤을 부탁해 보기로 했다.


   교회 목사님의 딸이었던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은 나에게 흔쾌히 잠자리를 내어 주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친구랑 둘이서 그 친구네 집으로 향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친구네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씻고 무얼 먹고 어찌 누웠는지 25년의 세월 동안에 다 잊혀서 딱히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유독 이튿날 새벽에 우리가 깨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방 안으로 친구네 어머님이 쟁반 채 들여보내 주신 아침 식사가 분명하게 생각난다.


   요구르트 두 개, 숟가락 두 개, 빵 두 개, 과일 두 쪽. 요즘 마땅한 아침 식사거리가 없을 때 열세 살, 열 살의 두 아들에게 내가 제공하는 메뉴와 매우 비슷했다. 혼자서 치킨 한 마리를 거뜬히 먹어치울 기세인 열세 살 큰아들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아침 식단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내가 마치 공주라도 된 기분이었다. 있던 김치를 볶아놓는 게 주 반찬이었던 내 집의 식단과 너무나 다르게 세련된 아침 식사였고 자주 못 먹던 참말 맛난 메뉴였다. 굉장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친구네 어머님이 마련해 주신 쟁반 위의 아침 식사에서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 말고 다른 것도 보았다. 공주가 된 기분보다도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가슴까지 저렸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 식사. 엄마가 깨워 주는 아침. 엄마가 있는 아침. 언제나 있는 엄마.


   친구와 친구 부모님의 호의 덕분에 새벽 활동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다음 날부터 친구를 외면했다. 동아리에서 큰 행사가 있었을 때 홍보를 맡았던 그 친구와 나는 학교 일과가 끝나면 둘이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곳곳에, 그리고 시외 외곽에까지 나가 전봇대마다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우리를 태워줄 자동차가 없었기에 몇 정류장마다 버스에서 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막차 운행이 끝날 때까지 밤이 늦도록 전단지를 같이 붙였다. 그렇게 동아리 안에서 함께 궂은 일을 웃는 얼굴로 하면서 둘이서 딱 붙어다녔기에 학교 선생님들도 이름까지 똑같은 우리 둘을 아주 성실하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런데 내가 하루아침에 그 친구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작은 교회 목사님의 딸. 목사님의 사례비라는 게 대형 교회가 아니고서야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랬을까. 그 친구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공부는 전교에서 손에 꼽혔다. 수업 시간마다 자주 그 친구를 유심히 쳐다봤었다.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단 한 번도 선생님한테서 다른 데로 시선을 옮기지 않는 집중력이 부러웠다. 그 친구는 동아리에서 건반을 다뤘는데, 건반 솜씨도 좋았다. 재주가 많았는데도 그저 조용히 잘 웃고 나대지 않는 아이였다. 고운 마음을 가졌던 그 친구답게 입시에서 선택한 과가 목사님의 아내인 어머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학과였을 만큼 착한 친구. 그런 친구가 영문도 모른 채 내게서 소외를 받아야 했다.


   쟁반 위에 놓였던 요구르트 두 개와 그걸 떠먹는 용도였던 플라스틱이 아닌 도자기 숟가락 두 개.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딱 그뿐이었는데, 그것이 여고생이었던 내 감수성으로는 그 친구가 세상의 전부를 다 가진 것 같았다. 나한테 없는 엄마가 친구한테 있었을 뿐이었는데. 사람을 더욱이 친구를 그렇게나 철저하게 외면한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원래 서먹한 사이였다면 그런 나를 친구 또한 그러려니 했겠지만, 동아리 활동 때문에 수시로 붙어 다녔던 사이인 내가 돌연 냉기를 쌩쌩 일으키며 자기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회에서 배운 예수님의 가르침을 곱씹었을까.


   서른이 훌쩍 지나 다시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을 때 진심으로 사죄하는 손편지를 친구에게 건넸다. 그때 그 친구에겐 고등학생 시절 내가 자기한테 저지른 무례함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너무 거대한 삶의 무게가 가해지고 있던 터라 친구는 그저 나에게 예수님처럼 웃어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거슬린다. 직장이든 바깥에서든 만나면 반가워서 깡총깡총 뛰어가 알은체를 하는데 쌩하니 내게서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경쾌하게 고양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이것저것 일에 관해 궁금한 것이나 자기한테 도움이 될 것들을 묻는다.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수가 뒤틀린다. 그런데, 나를 외면하는 그 동료의 모습에서 고등학교 때의 나를 본다. 그게 참... 다행이다 싶다. 동료에게 불쾌해하며 같은 방식으로 응대하거나 그러지 않고 동료를 기다려 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다행이다 싶다. 누구에게든 또다시 내가 무례한 이가 되지 않도록 나를 가다듬을 수 있게 하니 다행이다 싶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고생 때처럼 감수성을 들먹이면 오죽이나 부끄러운 일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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