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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Sep 17. 2023

Are You Ok?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는 집으로 돌아가서 근처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차 요원으로 일했는데, 주차장 출입구에 요즘처럼 무인 차단/정산기가 있는 게 아니어서 차가 들어오거나 나갈 때마다 주차 요원이 일일이 차량을 확인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OOO 해수욕장입니다. 1일 주차

   요금은 5,000원입니다."

   차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차량 쪽으로 달려가서 창문을 내린 차주한테 도레미파솔라의 '라'음으로 안내 인사를 했다.

   "아가씨 여기 사람 아니지? 여기 말을 안 쓰네."

   언제 봤다고 반말?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동해 바다에 붙은 집에 온 거였기에 타지에서 온 티만 나고 시골 출신인 티는 아예 안 났으면 싶었다.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의 여아르바이트생처럼 목소리를 내봤다. 반말은 기분 나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해수욕장 아르바이트라니까 절정기 2주 정도만 바짝 일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 세계를 잘 모르는 거다. 개장 전부터 일이 시작되는데, 해수욕장 부근의 쓰레기를 줍고 백사장 주변과 주차장의 풀을 뽑는 잡일도 했다. 사무실로 쓸 컨테이너 박스의 내부도 싹싹 정리했다. 1년 만에 정리하는 것이라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20대의 또래끼리 만나서 뜨거운 여름에 새파란 바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재밌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생 전원이 격일마다 근무를 했는데 쉬는 날에도 굳이 다들 해수욕장에 와서 놀 정도로 단합이 잘 되었다. 일이 곧 노는 거였다. 텐트 숙박비를 수금하러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일인데 재밌고, 서로 미루다가 결국에는 내가 하게 되는 안내 방송도 일인데 즐거웠고, 주차비를 안 내고 달아나는 차를 잡으려고 무전을 하며 출구 쪽으로 열나게 달려가는 것도 일인데 신났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해질 무렵 해변에 줄줄이 앉아 하루를 마감하는지 낮보다 차분해진 바다를 보며 들이켰던 맥주 맛이다. 그 이후부터 해가 지자마자 펼쳐지는 회색 어스름 속에 있을 때면 으레 맥주가 생각나곤 한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강렬하게 쏟아지는 볕 아래에서 동분서주하는 게 설마 재밌기만 했을라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절은 옷은 살갗에 착 달라붙어 끈적거렸을 거고, 타지인 티만 나고 싶던 마음과 다르게 피부가 드러난 부위는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을 때처럼 나날이 시커메졌을 테고, 파라솔 아래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팍팍 소진될 날씨에 추차비로 진상 부리는 손님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날은 파김치보다 더한 폭폭 쪄낸 감자나 옥수수가 됐을 텐데. 텐트 숙박비를 걷으러 다니다가 줄에 걸려 넘어진 건 또 어떻고.


   그런데도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를 떠올리면 나는 세상 둘도 없는 흥분과 설렘을 느낀다. 심장 박동이 거칠어지면서 말이다. 그때 만난 두 살 아래의 연하남과 2년 간의 열애를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손예진, 조인성 주연의 영화 <클래식>과 엮어볼 생각이다.)


   재밌고 즐겁고 신나게 살고 싶다. 흥분거림이 가득하고 한껏 설렌 채로 살고 싶다. 이럴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걸까. 이십 년 전에 해수욕장에 있던 이도 나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도 나인데, 둘의 심장이 분명히 똑같은데 왜 지금의 내 심장은 활화산 같지 않은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에는 고스란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일단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나면 걱정이란 놈을 제쳐놨었다. 그냥 일을 했다.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면 뛰어갔고, 스키장 슬로프 아래쪽의 매점에서 어묵 국물이 끓으면 어묵을 넣었고, 학교 근처 수제비 집에서 항아리와 뚝배기를 수도 없이 나르고 날랐다. 그러면서 더불어 해변에 앉아 노을을 보며 맥주캔을 뜯었고, 인공눈이 아닌 자연눈이 내리기에 어묵 꼬치를 두고 난생처음 스키에 도전했고, 수제비를 나르면서도 입술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반짝이는 링 귀고리를 했었다.


   일, 딱 그 일에만 매몰돼 있지 않았다. 뛰고 나르고 끝내주게 어묵을 팔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았다. 활화산은 참지 않는다. 참을 수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 해야 하는 것만 하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의 해야 할 일을 끝냈으면 ok! 내일도 내일의 해야 할 일을 다하면 ok겠지. 고 2 국어 시간에 언제 행복감을 느끼냐는 국어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해야 할 일을 끝냈을 때라고 대답했었다.  그땐 그랬나 보다. 하지만 지금, 그것만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대답을 찾아야 할 때다. Are you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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