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팔아도 돼. 하지만 베이커리는 안 돼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다시 뜨거워진다. 이제는 끝난 이야기인데도, 아직도 이 기억만 떠올리면 이를 악물게 된다.)
"사장님, 이웃 가게들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해요."
북카페를 오픈하기 전, 나는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당연하지. 한 건물 안에서 함께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도와주고 응원하며 잘 지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관계가 모든 곳에서 통하는 건 아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만약 당신이 가게를 오픈하려 한다면,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커피는 팔아도 돼. 하지만 베이커리는 안 돼."
나는 2층 북카페.
1층에는 베이커리 공방.
문제는, 내가 북카페를 오픈하겠다고 하자마자
1층 사장님이 쏜살같이 뛰어왔다는 거다.
"커피는 팔아도 되는데, 베이커리는 절대 안 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멍해졌다.
"네?"
"우리 매장과 겹치는 메뉴는 절대 안 돼요."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속으로 계산했다.
1층은 베이커리 ‘공방’이다.
수제 케이크나 디저트를 주문 제작해서 판매하는 곳.
즉석에서 구워서 진열해 두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왜 미리 와서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지?
"이런 조항도 계약서에 넣을 수 있어요?"
나는 관리인에게 물었다.
"이런 조항을 강요하는 게 가능한가요?"
관리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저 사장님이 원래 그래요. 상가에 새 가게가 들어오면 다 막아요."
"예전에 들어오려던 떡집 사장님도 계약서까지 다 썼는데, 결국 울면서 나갔어요."
나는 고민했다.
(이때 그냥 포기하고 나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나는 참았다.
그냥 합의하면 되겠지.
별 문제 없을 거야.
그렇게 메뉴 합의서에 사인했다.
- 모든 베이커리 금지.
- 크로플만 허용.
크로플?
아직까지도 베이커리 판매 기준이 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북카페를 열었고,
손님들이 "케이크 없어요? 디저트 없어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입장이 난처했다.
"아, 저희는 1층에서 베이커리 판매를 못 하게 해서요…"
라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을 어기고 몰래 팔 수도 없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런데 2개월 후, 1층이 사라졌다."
북카페를 운영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1층 베이커리 공방이 문을 닫았다.
"개인 사정으로 잠시 영업을 중단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기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이제 베이커리를 판매해도 될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기가 막혔다.
"우리 다시 영업할 거니까, 약속 꼭 지키세요."
…이때 나는 알았다. 나는 순진했다. 아니 멍청했다.
이때부터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말했다.
"이제 베이커리 팔아도 돼.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항이 어딨어?"
하지만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층에서 공사를?"
북카페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매장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1층에서 공사 소리가 들려왔다.
"응? 다시 베이커리 공방이 오픈하나?"
그런데, 알고 보니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다는 소식이었다.
"1층에 스콘 전문점이 들어올 거래!"
…뭐라고?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
나는 북카페를 한다고 할 때 커피 메뉴도 겹치지 않게 조정하라고 했고,
베이커리는 절대 팔면 안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얘기도 없이 스콘 전문점이 들어온다고?
그때 건물 관리인이랑 1층 공방 사장님의 멱살이라도 잡으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매장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참았다. 이를 갈면서, 꾹 참았다.
"그래도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늘 우리 커피를 주문해 주신 분이 계셨다.
바로 1층 베이커리 공방 바로 옆 수선집 할머니.
할머니는 손님이 올 때마다 전화로 커피를 주문해 주셨다.
나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1층 공방 뒷문을 살짝 피해 할머니께 커피를 배달해 드렸다.
그리고 매장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아이고, 이렇게 좋은 커피집이 사라져서 아쉬워서 어떡해"
할머니의 그 말이, 그때의 나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위로였다.
이제 나는 안다.
이웃 가게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건물주와의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계약 전에 상권 조사가 얼마나 필수적인지. 그래서 다짐했다.
"두 번째 북카페를 열게 된다면, 좋은 건물주와 좋은 이웃 가게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그래야 오래오래 운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언젠가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면, 내가 했던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기를.
세상에는 성공한 자영업자도 많지만 나처럼 우당당탕 우여곡절이 많은 자영업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이 더 치밀하게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