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Round] 언제든 마음이 앉았다 갈 수 있는 곳

《크라바트》《かもめ食堂(카모메식당)》

by 필화

좋은… 날씨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필화 님.

날씨가 정말 극악이네요. 적어도 지금 제가 있는 이곳은 그래요.


필화 님이 주신 지난 답장에서 팩트 선호형 인간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듣고 나니 저도 저의 어린 시절을 복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깨닫게 되더군요. 저의 어린 시절은 온통 아름다운 환상과 전설, 그림과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요.


제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을 꼽는 대신, 저는 그 책들의 인물들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냥 그러고 싶어 져서요.

뭐니뭐니해도 저의 원픽은 에드몽 당테스입니다. 그 뒤를 잇는 달타냥과 루돌프 라센딜을 보면 대체로 저의 어린 시절 취향의 계보가 드러납니다. 그러다 바통은 느닷없이 셜록과 아르센을 거쳐 새라 크루와 앤 셜리, 패트와 이자벨 오설리번 쌍둥이 자매에게로 넘어가는 듯하다가 맥락 없이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와 짐 크노프에게로 넘어가죠.


사실 저 사이사이에 수많은 오솔길과 잔가지가 있습니다만 저라는 인간의 장르적 DNA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할 때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급해 보았습니다.



하루하루 충실히 자란 초딩이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만나면서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무엇이지, 이 신박하게 근사한 세계관은?’ 김담화 어린이의 눈이 그렇게 커졌던 적은 아마 그 앞으로도 뒤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십삼 세 초등학생은 이때 뭔가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거대하고 멋진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취향을 순식간에 틀어버린, 제가 지금까지도 저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대작을 영접하면서 저의 취향은 확고하게 매듭지어집니다.

그 작품은 《은하영웅전설》이라고 하죠.


네, 저는 초기의 번역본과 OVA를 모두 섭렵한 사람입니다. 조연(키르히 돌려내 작가 선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말을 잃었고, 제겐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생을 마감했을 때(양웬리 살려내) 식음을 전폐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뭐 하여간, 그 정도로 제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한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더라…


아, 그렇죠. 제가 왜 SF/FAN 선호형(설계형이기도 합니다) 어른이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중이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제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지금껏 갖고 있는 책을 보여드릴까 싶네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환상소설입니다. 현실주의자의 눈으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비하하면 슬퍼져요. 물론 필화 님이 그러실 리가 없지만.





《크라바트》라는 제목을 가진 책입니다. 작가인 오토프리트 프로이슬러는 1923년 생입니다.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대략 가늠이 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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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소개하기 전에 늘 두어 번 다시 훑어보는 과정을 거칩니다. 분명 읽은 책이고 부분적으로 기억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유창하게 소개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망실됐기 때문이죠. 물론 그 망실된 대목은 제 머릿속,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 녹아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기억하는 대로,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미지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저는 보통 사람들보다 이미지 연상력이 월등한데,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뉴스를 들었을 때 순식간에 그 현장을 눈앞에 현실처럼 띄울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여기가 SF 소설 속이고,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 풍경을 이미지로 홀로그램처럼 띄울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마 저는 특급 뉴스캐스터가 됐을 겁니다. 아무튼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설명을 잘해보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내내 어떤 음침한 숲 속, 그리고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는 축축한 습지와 근방에 자리 잡은 물방앗간,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방앗간 주인이자 사악한 마법사와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제자들의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말이죠.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만 했던 직공과 그를 추모할 의욕조차 없이 비탄에 빠진 동료 직공들, 그를 제물로 바쳐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던 방앗간 주인.

모습보다 청량한 노랫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원자와 최악의 순간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까지,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 허구의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에 소스라친 기억까지 선명합니다. 그게 얼마나 감동적이고 놀라운 체험이었는지까지도요.



분명 허구이지만 분명히 실존하는 듯한 감각을 안기는 문장들이 한 권의 책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는 단어들의 놀라운 조합이 초현실적인 공간과 세계를 빚어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 같은 그 세계 안에 내가 빠져 있음을 깨닫는 찰나는 이제 막 뭔가를 알 듯 말 듯했던 아이에게 거대한 에피파니의 순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는 실재하지 않음에도 실존하는 현실은 엄연히 있다. 지금 그것이 막 내 눈앞에 열렸다'는 그 깨달음의 충격은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대단히 감동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그 순간을 돌이켜서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음이 새삼 기쁘네요.

아마 그것이 제가 필화 님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텍스트에 빠져든 계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네가 말하는 게 ‘그’ 방앗간인지 모르겠다만……” 노인은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저 뒤쪽 코젤브루흐의 ‘검은 물’ 근처에 방앗간 하나가 있긴 하지. 하지만……” 노인은 너무 많은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크라바트는 알려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에 노인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p.14


“살아가면서 생기는 일들은,” 직공장이 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크라바트야. 그런 일이 닥쳐도 견뎌 내야 해.” p.109



다 쓰고 보니, 또 절판된 책이네요.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나요. 그런데 왜 이 좋은 책이 절판됐을까요. 제가 다 속상하네요.





환상적이어도 좋고, 현실적이어도 좋습니다. 마음속에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세계 외에도, 언제든 열어볼 수 있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힘겨움은 자주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화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셨기를 바라요.











담화님 안녕~


한국의 장마는 이제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상당히 공감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날씨에 영향을 잘 받지 않는 편이라 고장 나버린 습도계를 보면서 ‘오늘은 습도 몇 % 이려나? 이 정도면 90%? 아 오늘은 90%는 넘을 것 같은데...’ 이러면서 하루하루 그럭저럭 잘 보내고 있습니다.




담화님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환상과 전설, 그림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부분에서 저는 엄마 미소를 하고선, 어린 담화님이 책에 얼굴을 파묻고 놀랐다가 웃었다가 심각했다가 하는 장면들을 떠올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겠네요.


“엄마~ ***(맘 속의 주인공)이 죽었어. 흑흑”하고 우는 장면이나 책장을 탁 덮고선 “아아아아~” 탄식하며 가슴 아파하는 장면들 또한 놓칠 수 없었지요. ‘아, 역시 이 사람은 판타지/SF 웹소 작가가 될 수 있는 씨앗이 어릴 때부터 가득 차 있었어!’라며 담화님의 정서적 텃밭에 경의를 표해 보았습니다.



담화님의 서술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 가득 담겨 있어 마음 어딘가가 몽글몽글 아른아른해지는 추억 모드의 아름다운 화면이었어요. 그리고 그 마지막 한 문단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마음속에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세계 외에도, 언제든 열어볼 수 있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힘겨움은 자주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그래서 상냥한 몽상가인 저는 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 아... 지금 내 삶에서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민을 가야 한다면 나는 어떤 책을 챙겨야 할까?’라고 말이죠... ‘아니, 책이야 뭐 가서 사면되지. 없으면 어떻게든 구하면 구할 순 있을 거야. 그런데 이런 가정보다는 무인도에 가는 설정이 낫긴 한데, 무인도에 내가 갈 일이 없지만... 그럼 그냥 내가 아끼는 책 10선을 추려볼까?’ 뭐 이런 의식의 흐름 속에서 최근에 다시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일본어 원서와 영화 제목 모두 《かもめ食堂(카모메(갈매기) 식당)》이라 합니다.


이번에는 영화가 추가되지만, 담화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영화와 책(번역본과 원서)의 매체에 따른 변주를 관찰해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니,, 이번에는 영화와 원서를 다루어 볼게요. (이제 보니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군요!! 세상에!!! 이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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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첫 식사에서 왜 이곳에서 식당을 하느냐는 객식구 미도리의 질문에 식당 주인인 사치에는 “여기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라면 나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생각했어요.)”라는 대답을 합니다.


이 책과 이 영화는 바로 이 いばしょ(이바쇼)에 대한 얘기입니다. 사전에는 ‘있는 곳, 앉을 곳, 거처’라고 번역이 됩니다만,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곳,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있어야 할 장소를 찾아 지켜내는 이 어른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옷을 바꾸어 입고, 커피만 마시다가 오니기리를 먹어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다려주는 마사코가 있고, 어떠한 이유로든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는 미도리가 있고(그녀는 주인공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견인 역할을 합니다.), 자기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괴로워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여인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언제고 다시 와서 자신들을 배를 채우고 자신들의 마음과 영혼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며 힘을 주는 주인공이 있지요.



마사코의 이 대사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마사코 : 당신들은 어떻게 여기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나요?

미도리 : 저는 잠시 여기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을 뿐이에요.

사치에 : 저는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랄까,,, 하하 농담이에요.

마사코 :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좋네요.

미도리 : 아뇨..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마사코 : ,,,,,,,,,,,,, 언제까지나 한 옷을 입을 수만은 없는 거네요..



항공사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짐을 기다리던 마사코는 이 말을 하고선 일어나 새로운 옷을 사러 갑니다. 여기서 옷이란 것은 부모의 봉양을 무려 이십 년이나 해 온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확실히 영화는 이 옷의 변화를 파격적인 의상의 디자인, 화면 구성, 영상의 전반적인 색채와 음향으로 더욱 부각해 줍니다. 확실히 영화는 음향, 색채, 앵글, 배경 등 주인공들의 심경의 변화를 드러내줄 수 있는 장치가 참 많아요. 물론 이런 모든 것을 자기 감각으로 해결해 내시는 담화님 같은 분도 계십니다만!!



그에 비해 소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는 많은데, 다만 이 영화의 원작에 한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인 사치에가 이 핀란드라는 장소를 찾는데 많은 공을 들여 설명하지만, 이곳으로 떠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파이널펀치는 로또 1등 당첨입니다..... ‘아니 이 고된 과정의 결말을 이렇게 쉽게 쳐버리나..’ 싶어서 당혹스러웠으나, 감출 것은 감추고 살려내야 할 내용들만 감각적으로 살려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요.(참고: 원래는 감독이 작가에게 소설을 의뢰한 후, 그걸 다시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와 원서를 읽고 저는 제 개인 블로그에 이런 후기를 남겼더군요.


'자신의 いばしょ(이바쇼)를 찾아간다는 설정이

희망을 대변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영화는 그 기점을 중심으로 삶의 희망적인 부분만을 보여주었고, 소설은 과거 삶의 각박함만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죠.




저의 오늘은 조금 각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떠날 곳,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오늘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책 속의 세상입니다.



‘무인도에 떨어지면 뭘 하지? 뭘 가져가지?’ 저는 이 영화를 가져가려다가 ‘이걸 보려면 출력 장치(적어도 핸드폰)를 가져가야 하고, 그러려면 충전도 해야 하고, 충전하려면 전기도 들어와야 하는데 그건 이미 무인도가 아니지 않나?’ 싶어서 결국 상상 속의 저는 책을 들고 가기로 합니다.


내일은 또 무슨 책 속의 세상으로 들어갈까요? 아니 일단 오늘 저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사치에 씨의 카모메 식당에 가서 시나몬롤과 커피 한 잔을 마셔볼 생각입니다.



담화님, 우리 다음에 같이 시나몬롤 먹을까요?



일곱 번째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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