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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집이 집을 낳다 (1)

서울 2주택 시스템 만들기

by 손프로

헌 집을 새 집으로 만드는 경험을 한 뒤, 정작 우리는 헌 집으로 다시 이사를 갔다. 보통은 주거 환경이 점점 더 나아지는 선택을 하는데 역행하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을 전세로 돌린 덕분에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대출을 상환함으로써 더 이상 원리금 상환을 하지 않아도 됐고, 덕분에 근로소득의 60%를 온전히 저축할 수 있어서 돈을 모으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1년 동안 모은 종잣돈과 첫 번째 주택의 전세금을 합쳐 서울에 두 번째 주택을 매수할 수 있었다.



투자를 준비하며 2년 가까이 수도권 구석구석을 발로 누비고 다니며 나를 둘러싼 공고했던 편견을 깨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재가치를 보려고 노력했다.


'여기는 언덕이라서 별로야.'

→ ‘언덕이라도 강남까지 접근성이 좋다면 가치가 있구나!’


‘여기는 주변 환경이 별로라서 별로야.’

‘앞으로 주변 환경이 더 좋아질 거고, 이 단지가 있는 땅의 위치 자체가 좋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구나! ’’


‘여기는 구축이라서 별로야. ’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축은 이유가 있구나!’




나만의 투자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 나가며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투자 공부를 했다. 내 집마련이라면 보지 않았을 지역과 단지로까지 시야를 넓히고 내가 하고 싶은 투자와 할 수 있는 투자의 교집합을 찾아나가며 투자 대상을 추려 나갔다. 가치 대비 가격이 싼 매물이 보이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고, 이 단지가 최선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하루는 서울 아파트를 전수조사하다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지역과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단지를 둘러보고 부동산에 들어갔다.


“사장님, 20평대 투자할 매물 찾고 있는데 추천해 주실 매물이 있나요?”


“얼마 전에 20평대가 XX에 거래되어서 30평대 가격이랑 크게 차이가 없어요. 지금은 30평대가 싸요."


“30평대는 매매가가 제 생각보다 높아서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유주택자라 혹시나 전세가 안 나갈 경우 잔금대출도 어렵고 투자금도 빠듯하네요."


“주인이 0억에 전세로 살고 싶어 하는 집이 있어요.”


“네? 그렇게 높게요? 현재 시세보다 굳이 왜 높게 거주하려고 하실까요?”


“분양받은 집이라 이 집에서 이사가 기는 싫고 오래 거주하고 싶으신가 봐요.”


일단 ‘퍽 괜찮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뒤 그 집을 보러 갔다. 매매가가 조금 더 싼 집도 같이 봤는데 전세를 새로 맞춰야 하는 리스크가 있었고 주인전세 집은 전세를 맞추지 않아도 되지만 매매가가 0.3억 더 비쌌다. 주인전세라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만 매매가가 내 기준에는 들어오지 않았기에 네고를 해서 원하는 가격으로 만들지, 새로운 물건을 천천히 더 찾아볼지 사이에서 다시 고민을 했다.


전수조사한 단지 중 저평가 단지들을 추리고, 그 단지들 중에서 가치가 좋은 물건을 뽑았을 때 이 단지의 가치가 가장 좋았고 안전마진은 물론 역세권 대단지 신축임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상승여력도 더 있어 보였다. 같은 생활권 내에 전고점 대비 하락률이 더 컸던 구축 대장도 있었지만 하락률이 덜해도 투자기준에 들어오고 가치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제 원하는 가격으로 만드는 일만 남아서 사장님께 내 상황을 정리해 말씀드렸다.


“사장님, 그 매물이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조정되어야 매수가능할 것 같습니다. 매도인이 말씀하셨던 전세금보다 더 낮춰도 되니 매수가격을 조정해 주세요. 중간에 입장이 곤란하시겠지만 일단 제 의사만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어려우시면 저는 다른 매물 더 찾아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빨리 매수할 생각이 없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좋은 매물 보여주셔서 매수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거예요.”


만약 그 가격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면 가치와 가격에 대한 확신을 갖고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조정이 안되어도 12월까지 천천히 매물을 찾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매도인이 그동안 가격 하나도 안 깎아줬었어요. 일단 말은 해볼게요.”

(매도인과 통화&등본 확인 후)


“등기부 등본 보니까 대출금이 많아서 갚고 싶으신가 봐요. 그리고 새로운 주인이 나중에 들어와서 산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더라고요. ”


등본과 대화를 통해서 매도인의 상황을 파악한 뒤 그 집에 실거주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오래 살아주시면 더 감사하다고 뜻을 분명하게 전달드렸다. 그렇게 몇 번의 핑퐁이 오간 다음에 최종적으로 내가 원하는 가격에 매수를 하게 되었다. 투자금이 조금 더 들어도 싸게 사는 게 중요했기에 매도인이 처음에 제시했던 전세금보다 더 낮추고, 투자금이 더 들더라도 매매가를 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세금은 2년 뒤 올려 받으면 되지만 매매가는 한 번 결정되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얼떨결에 매수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수 진행과정이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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