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시작 후 첫 CT결과 마주하기
내 왼쪽 팔목아래에는 내 몸에서 유일한 작은 타투가 새겨져 있다.
inner peace
트리플 A형으로 유난히 멘털이 약하고 자존감이 낮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세계관이 구축되고 세상에서 나의 쓸모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정립하던 시기를 거쳐, 결혼과 육아 그리고 지금의 조금은 다듬어진 멘털을 만들 수 있었던 청소일을 하면서도 그랬고 언제나 답은 내 안의 평화.. 평정심이었다.
내 마음이 편안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에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3차 항암을 마무리할 때쯤 CT촬영을 하기로 했다.
부작용이 어떻고 혈액검사의 수치가 어떻고를 떠나서 CT를 찍어봐야지만 정확하게 암의 진행상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생이 연장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을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라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삶에 확신이 가득하던 나였지만 이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이기에 언제나 희망차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해도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췌장암이나 담도암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잘 맞는 항암치료제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요즘 유독 젊은 층에서 많이 발병하고 있는 유방암 같은 경우는 완치율이 이제 90%가량 되고 있고, 부작용이 심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항암제가 암을 줄이고 없애는데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완치율도 높게 나타난다.
유방암뿐만 아니라 생존율이 높은 다른 암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담도암은 진단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발견했을 시에는 이미 3,4기 이상 진행되어야 느낄 수 있고 더불어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대표적인 항암치료제라 할지라도 적합하게 잘 맞는 환자의 비율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들도 통계적으로 나오는 수치(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를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어설프게 희망을 얘기했다가 나중에 원망 섞인 책임을 물을 환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실제로 종양내과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내 CT결과를 보시고는 복수가 찰 수도 있고, 여기서 암덩어리가 조금만 더 커지면 황달이 올 수 있다고 주의해서 관찰하라 말씀하셨고, 황달이 올 경우에 갑작스러운 발열로 인한 쇼크가 올 수 있고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말씀하셨다.
잔뜩 겁을 먹고 진료실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첫 항암주사를 맞고 집에 와서 며칠 동안 눈 흰자위가 이상하게 누렇게 보이는 듯했고, 배는 이상하게 튀어나온듯해서 내 몸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건 기분 탓이었지만~
어쨌든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은 항암과정과 진단당시와 항암이 진행되면서 통증이 줄어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기 시작하고, 소화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좋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믿어보려 했다.
암 진단을 받을 시기에는 6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복통이 지속되어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진통제를 복용했다. 어느 순간부터 버틸 수 있는 간격이 조금씩 늘어났고 2차 항암을 하면서부터는 완전히 진통제를 끊어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잠자기 전 눈을 감고 잠에 들기 전에는 늘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알약병정들이 몸속에서 병균을 찾아 없애는 동화책 '버즈'의 한 장면처럼, 내 몸에 가득 넣어놓은 항암치료제들이 팀을 나누어 암덩어리를 캐내고 찔러서 산산조각 내는 상상을 계속했다.
담당교수님은 10월 1일 날 결과를 확인하고 계속해서 이 약을 쓸 것인지 바꿀 것인지를 결정하고 4차 항암을 시작하자고 하셨다.
10월 1일. 어느 때보다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
'진료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혈액검사 이상 없고 특이사항 없이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으면 잠시 의사 선생님 얼굴만 보고 바로 항암주사를 맞으러 가면 된다. 하지만 검사에 이상이 있고,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사 선생님은 새로운 치료법을 안내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매번 3분 이내로 진행되었던 나의 진료시간이 이번에는 얼마나 될지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교수님은 영어로 가득 찬 화면을 보시면서 "일단 좋아진 걸로 보이고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궁금한 나는 "얼마나 좋아진 걸까요?" 하고 물었다.
교수님은 CT사진영상을 화면에 띄우고 처음 병원방문했을 때의 사진과 비교해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와, 상당히 좋아졌는데요? 보이시죠? 이랬던 게 이만큼 줄었네요."
워낙 냉담하던 교수님이시라 그 반응에 얼마나 뭉클하던지...
내 눈에도 확연히 보일만큼 줄어든 암덩어리가 반가워서도 그렇지만, 4기 정도 되면 더 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 거라던 얘기들을 들어왔던지라 모든 과정에서의 고됨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주변에서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 지인들에게도, 특히 엄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이렇게만 한다면 나.. 정말 살 수 있나 봐 하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대로 주사 맞고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의 진료시간은 또 짧게 끝났다.
진료실을 나와 처방전에 내려질 때까지 앞 의자에 남편과 앉았다. 진단받은 이후로 한 번도 울지 않았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참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더 견고해진 확신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더 힘내 보려고 한다.
역시 수많은 통계와 경험담들이 상황을 인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나에게 맞는 건 나의 경험치다.
많은 이들이 불안한 희망 속에 있을 때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일단 내가 부딪혀 겪어보는 수밖에.
앞으로 언제나 행복한 결과만 나오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때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안 좋은 결과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나 그랬듯 ' inner peace'를 되뇌며 끊임없이 희망을 꿈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