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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작 Oct 13. 2023

수줍어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

_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고

 오래전, 한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도시를 바꾸는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였는데, 운이 좋게도 프레젠테이션 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어 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너무 떨렸지만, 단단히 준비한 탓에 후회 없이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날, 시민단체에서 올린 기사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내 이름 앞에 ‘수줍게 발표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있었다. ‘수줍다’라는 표현 때문인지 내가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전과 다르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꺼려졌고, 어딜 가든 주목받지 않기 위해 구석을 찾아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여 자주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좌중을 끌어안는 이들이 부러웠고, 성공하려면 외향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커졌다.


당연히 육아에도 반영되어, 내향적인 둘째를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공개 수업이라도 다녀온 날이면 한숨이 더 짙어졌다. 거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클 수 있을지 혼자 속앓이를 했다.


이러한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준 책이 바로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다. 변호사였던 저자는 세상이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고,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감추려 한 것에 의문을 품었다. 내향성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인지 증명해 보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으며, 수년간의 연구를 더해 책을 펴냈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다. 방대한 양과 깊이에 놀란 것도 잠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면담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전 케인은 어떻게 외향성이 우리 문화의 이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주민들의 삶을 이야기했고, 그리스와 로마인의 전통 등을 함께 짚었다. 외향성과 내향성은 단순히 기질 차이가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외향적인 면모를 갖춰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나의 편견이었음을 확실히 인지시켜준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효과적인 CEO들 중 상당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며 이들은 과시나 카리스마가 아닌 겸허함과 프로의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조용하다’ ‘겸손하다’ ‘소박하다’ ‘말이 적다’ ‘수줍어한다’는 말로 묘사했다고 한다.


나는 수줍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느꼈던 터라, 이러한 언급이 참으로 반가웠다. 마치 저자는 그동안 내향인들이 받은 상처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 하나하나 세심하게 이야기하며 위로와 용기를 건넸다. 내향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애정 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외향적인 부모는 내향적인 아이를 기르기 위해 자신의 선호도를 뒤로 밀어 넣고 조용한 자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어떤지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지 모를 구두 수선공들을 찾아봐야 한다. 내향적인 아이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운동장에서건 재능을 억압당할 때가 너무도 많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나는 외향적인 아이를 보며 더 자주 미소 지었다. 학교 시스템이 외향적인 아이에게 최적화되었음을 잊고 집단으로 배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과연 집단 교육이 최고의 학습법인지, 내향적인 아이들과 외향적인 아이들에게 다른 지침이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이들은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의견을 말해야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야 한다. 생각하거나 창조할 시간 따위는 거의 없어서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은 자극보다 진을 빼는 일에 가깝다.


비로소 이러한 부분들을 인지하자,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은 교육 환경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변해야 하는 것은 내향적인 아이가 아니라, 교육 방식과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학교를 바꾸거나 홈스쿨링을 할 수는 없는 법. 저자는 독자들의 마음을 간파했다는 듯, 루앤 존슨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전직 해병에, 문제 있는 십 대 아이들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위험한 아이들>에서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존슨은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능숙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어릴 적 얼마나 소심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고, 말하라고 격려할 때는 거리끼는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매력적인 주제를 잡았다고 했다. 아이가 보는 세상에 기꺼이 눈을 맞춘 것이다.


존슨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매주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다양한 배경 지식을 짚으며 감정을 나눈다. 나는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곤 하는데, 애를 써도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는 아이,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가방을 메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어떤 부분을 도와줘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는데, 아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해 주며 조금 더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콰이어트》는 내가 나를 알아가도록 돕는 것은 물론 내향적인 아이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도 살펴주었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연구 자료에 초반에는 따분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인생 지침서라 해도 좋을 만큼 따뜻함이 가득한 위로를 받았다.


저자는 ‘수줍다’는 표현에 내가 스스로를 가뒀다는 점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 번 더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는데 이 부분을 읽은 것만으로도 나는 앞으로 하게 될 큰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고 확신한다.  


아이가 두려움과 경계심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면 아이에게 '수줍음이 많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고정된 특성이라고 믿어버리고 말 것이다.(중략) 가능하다면 아이가 아직 어려서 주저하거나 수줍어하는 성격 때문에 누명을 쓰기 전에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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