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생리컵을 만든 발명가
레오나 차머스(Leona Chalmers)는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 형태의 생리컵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다. 그는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직업은 배우 겸 가수였다.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고 노래를 하면서 그는 여성의 생리 여건을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위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이 현실에서 결실을 맺게 된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었다. 차머스는 의사와 결혼해 딸을 낳은 후 무대에서 은퇴했는데, 은퇴 후에도 그는 가정 주부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발명가이자 사업가, 그리고 작가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는 기존의 제품들보다 “더 안전하고, 청결하고, 편안한” 생리용품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비록 차머스가 의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여러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해 필요한 도움을 제공했다. 차머스는 몇 년 동안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고무 재질에 짧은 꼬리(Stem)를 가진 종 모양의 생리컵을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35년 미국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으며, 2년 뒤인 1937년에 특허를 받았다.
차머스는 이 혁신적인 제품에 ‘Tass-ette’라는 이름을 붙이고 야심 차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초의 현대적 생리컵인 Tass-ette는 고무로 의료 용품을 제조하는 다볼(Davol)이라는 기업에서 생산을 맡았으며, 가격은 1달러였다. 1937년의 ‘Tass-ette’ 광고는 생리컵이 편안하고 안전하며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고, 냄새와 위생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홍보했다. 같은 시기에 차머스는 <여성의 삶의 은밀한 면The Intimate Side of a Woman’s Life>이라는 128쪽짜리 책을 출판해 생리를 포함해 여성의 몸 전반에 대한 내용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생리컵에 대한 설명, 생리통의 원인, 유독한 화학물질이 질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었다.
그러나 생리컵 판매 사업은 순탄치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생리컵의 주 원료인 고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생리컵 생산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차머스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종전 후인 1950년, 차머스는 기존의 생리컵을 개선해 2번째 특허를 받았다. 1957년에 차머스는 로버트 오렉(Robert Oreck)이라는 사업가에게 그가 보유하고 있던 2번째 생리컵 특허권을 팔고 2년 뒤인 1959년 Tassette Inc.라는 회사를 함께 설립했다. 개선된 생리컵은 여전히 고무 원료를 사용했지만 기존 버전보다 부드럽고 가벼웠다. 오렉이 대표를 맡은 Tassette Inc.는 생리컵 대량 생산에 나섰지만, 이 2번째 사업 역시 난항을 겪었다. 오렉은 열성적으로 생리컵 홍보에 나섰지만 많은 언론사들은 생리컵 광고를 부담스럽게 여겼으며, 이 때문에 광고는 언제나 완곡한 형태를 취했고 ‘질’이나 ‘월경’과 같은 단어는 광고에서 제외되었다. 이뿐 아니라 삽입형 생리용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당시의 많은 여성들은 생리컵 사용을 꺼렸으며,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재사용 가능한 제품이었기 때문에 구매가 활발히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970년, Tassette Inc.는 일회용 생리컵 Tassaway를 출시해 소기의 성과를 냈지만 결국 1973년 문을 닫고 말았다. 차머스의 업적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여년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