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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cycloperiod Mar 18. 2021

생리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

생리를 둘러싼 서로 다른 관점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리에 대한 생각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인류학의 연구는 생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수의 문화권에서는 생리와 생리중인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와 금기를 부여해왔다. 생리는 곧잘 죄나 오염, 불결함 등과 연결되어왔으며, 대표적인 생리 금기에는 성관계 금지, 요리 금지, 제사를 포함한 종교활동 참여 금지 및 종교시설 참여 금지, 생리 기간 중 가족과의 격리 등이 있다. 이러한 생리 금기는 동양과 서양, 남반구와 북반구를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생리에 대한 각 문화 전통의 인식이 언제나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사실, ‘금기(Taboo)’라는 말의 어원이 된 폴리네시아어 단어 타푸(Tapu)는 힘, 강력한 상태, 또는 성스러움과 연관되어 있으며,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가치 판단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즉, 표면상으로는 금기처럼 보이는 관습들이 사실은 생리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마 고틀립(Alma Gottlieb)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전 세계의 문화를 조사하면서 생리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즉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리를 대하는 문화권들을 찾아냈으며, 이들의 연구는 우리에게 생리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생리에 통상적으로 할당되는 가치인 오염이나 불결과 반대되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원주민 부족인 유록(Yurok) 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류학 연구가 다루는 많은 부족들 발견되듯이, 유록 족에게도 생리 중인 여성을 다른 가족들로부터 격리하는 풍습이 있지만, 이 풍습의 이유에 대해 유록 족이 공유하는 설명은 오염이나 불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유록 족은 생리를 정화 작용과 연결 지으며, 생리 기간을 여성의 영적인 힘이 가장 고양된 시기로 본다. 따라서 여성들은 생리 중일 때 이 영적인 힘을 활용하여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록 족은 여성들이 생리 기간에 일상적인 잡무나 남성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방해로부터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그렇기에 격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생리 중인 여성들을 별도의 공간에 격리하는 생리 오두막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 공간이 생리 중인 여성 공동체 내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에서 주로 이런 사례들이 발견되는데, 울리티(Ulithi) 섬과 얍(Yap) 섬 등에서는 생리중인 여성들을 마을에서 떨어진 오두막에 보내는데, 이때 같은 시기에 생리를 하는 여성들은 함께 격리되어 생리 오두막에 머물게 된다. 생리중인 여성들은 이곳에서 함께 수공예품을 만들거나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여성들에게 생리 오두막은 그 자체로 사교와 휴식, 환대의 장 역할을 하며, 생리중인 여성들을 제약하기 보다는 여성들 간의 상호 협력을 이끌어내는 장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생리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생리를 있는 그대로 설명함으로써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문화권도 존재한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룽구스(Rungus) 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룽구스 족에게는 ‘생리’를 지칭하는 별도의 표현조차 없으며, 이들은 생리에 대해 어떠한 특별한 의미부여도,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생리 금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리 중인 여성은 별도의 생리용품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다만 평소보다 목욕을 더 자주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비교적 편한 일을 수행할 뿐이다. 




* 모든 글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판 예정인 <엔사이클로피리어드(ENCYCLOPERIOD)>의 원고 일부이며, 매주 월/목 한 편 씩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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