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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미야니 Dec 05. 2020

집밥 안정제

집밥 안정제.....

1996
교복을 대충 걸쳐 입고 뛰어 나가야 할 만큼 늦었다. 전날 벼락치기한다고 밤샌다더니 이내 새벽 4시가 넘어 잠들었다가 두 시간 잠깐 자고 일어나 이미 6시인데, 6시 30분까지 등교를 해야 하는 막내딸을 붙잡고 엄마는 기여코 밥공기 한가득 사골국을 담아 연신 드미 신다.


"이거 마시고 가! 시험 잘 보려면 이것도 먹고, 이국은 꼭 마시고 가야 한다.... 아가"

19살, 고3인 나는 엄마에게 아가였고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아가'다.

사투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대로 배워 초6, 초3 아들, 딸 에게 '아가'라고 부르니...

보고 배우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크고 작은걸 보고 배운 나였으니 엄마처럼 집밥에 집착하는 게 이상 할리 없지...

집밥이 뭐야? 왜 먹는 거야?
나는 서른에 결혼하면서 밥도 지을지 몰랐고 라면도 끓여본 적 없는 정말 새내기, 새색시였다. 그런 내가 음식을 시작하게 된 건 첫 아이 임신부터? 음식에 대한 공부와 태교에 대한 연구가 나를 집밥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몇 해 전 '푸드 테라피'라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취득하면서 잊었던 나를 발견해보니 나는 그런 집밥에 악착같은 면모가 있던 엄마의 딸로 자라면서 보고 배웠던 거였다는 걸 알았다. 20년을 아니구나 결혼하는 전날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으니 30년을 그렇게 집밥만 먹고 자란 나는 딱 신혼 1-2년 소꿉놀이 같은 생활을 하고 난 후 임신과 함께 바로 엄마의 계보를 잇듯 집밥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첫 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뱃속의 태아를 위해 김치찌개용 고기도 구분할 줄 모르던 내가 뱃속 아가를 위해 밥부터 반찬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리도 할 줄 몰라 신혼에 인스턴트, 레토르트로 배를 채우다가 드디어 마음을 먹고 다닌 요리 학원은 이태리 요리 학원... 두둥?

새신랑 술안주만 열심히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던 그 이태리 요리학원...

그랬던 내가 임신하고는 마치 한 번도 외식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돌변하더니....

외식만 하면 입덧이라는 떳떳함으로 속을 전부 다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속에 좋은 음식을 찾아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집밥이더라는...

그러한 집밥이 속만 편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편한 것을 느끼게 되면서 아~ 이렇게 태교를 하는 거구나 하는 안도감까지 일석 몇조 였는지.....
그렇게 날 위한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한 오버스러움이 모두 합리화되는 착한 안정제의 시작이었다.
즉 '집밥 안정제'의 화려한 오프닝




심리 치유를 위한 도구-집밥
그리고 몇 해 전 틱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을 J군을 맡게 되면서 더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 시기로 말할 것 같으면 상담할 때만 좋아지는 것 같고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인 것 같다는 불변의 진리 같은 상담 후기를 가지고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 어머님의 뜨겁고 차가운 피드백이 항상 한 그릇에 담아 오니 나로서는 상담을 자주 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정부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상담 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횟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상담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 끝에 어머니께 상담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의 행적을 간단하게라도 적어 달라고 부탁드리게 되었다. 나머지는 별다른 게 없었는데 눈에 띄는 게 바로 간식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래도 허기가 지게 마련인데 어머님께서 준비해주신 간식은 다름 아닌 초콜릿으로 덮은 파이, 정스러운 그 파이 1-2개를 주신다는 거였다. 초콜릿은 할많하않..... 간단히 카페인이 듬뿍 들어간 각성효과가 적지 않은 제품인데 쉽게 말해 5분 기분 좋아지고 50분 흥분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어떤 행동에도 음식으로 인한 감정 기복이 있을수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뿐인가 우리가 술이라는 음식을 먹으면 맨 정신에 못하던 말을 할 수 있고 헤어진 애인에게 받지 않을 전화를 한다던가..... 숨겨져 있던 폭력성을 못 참고 드러내는 등.....그것이 바로 '술'이라는 음식의 한 면이 아닌가?


엄마라는 열혈 연구가

이것처럼 음식이란 실로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 한데... 어찌나 음식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인정들을 하기 싫어하시는지.....
라고 쓰고 있지만...
솔직히 나도 둘째가 알레르기로 밤낮 고생하기 전까지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와준 고통이 지금의 열혈 집밥녀를 만든 동기부여랄까? 그렇게 나의 음식 공부는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속에 너무도 많은 나를 발견하면서 내 안의 나의 절반이 사실은 엄마에게로부터 받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도 깨달았고. 그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음식. 집밥...  그렇게  또 집밥 안정제...............

 다시 책으로의 작가 소개글에서 발췌

사실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라는 책을 쓴 매리언 울프 교수도 자식의 난독증 덕분에 난독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만큼의 연구를 통해 발전과 성장을 거듭했다. 엄마란 이름의 성장 속에 자식이 없을 순 없으니까.... 우리 엄마도 나도 또 수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성장을 하는 게 아닐까?
정말 진지하게 이대목에서 아이가 없는 부부들은 아마도 더 이상의 성장이 필요 없을 만큼의 성인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라는 내 맘대로 식의 해석까지 해볼 만큼 엄청난 고통과 함께 성장을 시켜준다... 자식의 아픔은....


나는 보고 배운 대로 '엄마 성장'속에 음식이 포커스 온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푸드 테라피'라는 공부를 하면서 음식이 얼마나 몸에 관련된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이고...


푸드 테라피스트

우울하고 아플 때 한 번쯤 어릴 적 음식이 그리운 적은 없었는지? 임신과 더불어 생각나는 음식과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었는지? 거짓말처럼 임신 사실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평소 잘 먹던 음식이 주로 태아에게 안 좋을 법한 음식이 저절로 입맛에 안 맞아 내뱉었다는 경험담을 수 없이 들어왔다.

어쩌면 본능에 가장 가까운 자가치료법이 아닐까 싶다.

암 환자들 중 많은 사례를 보면 자신의 고향으로 요양을 떠나 어릴 적 먹던 음식들과 천연재료, 좋은 공기를 통해 치유 혹은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의사에게 허락받은 개월 수 보다 훨씬 오래 나름의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체험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 결과들로 미뤄 볼 때 어쩌면 내게 익숙한 음식이 주는 효과에는 정신적 안정감도 적지 않을 것 이기에....


감히 나는 '집밥 안정제'라고 이름을 붙이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

소소하게 내 주변에는 나만 보면 집밥녀, 집밥 집착녀, 집밥 마니아, 집밥 덕후, 집밥? 하고 놀리듯 말하지만

어느새 그들도 생전 하지 않던 집밥을 해서 나에게 주는 사진들만 봐도 알게 모르게 그들도 집밥의 위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집밥의 위대함을 (그렇다고 집밥 없이는 절대 적으로 안정적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결혼 10여 년이 넘도록 애들만 키웠지 집밥은 해본 적 없다던 분도 상담을 통해 나와 친해진 뒤로 반찬에 김장까지 뚝딱 해내며 변해진 자기 자신과 그 집밥 덕에 가까워진 자녀들과의 모습

* 임신으로 인해 결혼하게 된 새댁이 여러 가지로 불안해하던 아이와 임신이 결혼의 이유인가 하며 우울해하던 자신을 위해 반찬 하나하나 해나가며 매번 음식 사진으로 인증샷에 보내며 집밥 끼니 횟수만큼 아이와 자기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며 역시 집밥이네요~! 하는 모습

이런 일들을 보면서 '혹시 이것이 나의 사명인가?' 할 때도 있다.

무슨 사명?! 집밥 알리미~!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나 혹시? 집밥의 안정성과 중요성을 알리러 이 세상에 태어났나? 하고....
20대 시절 나의 친구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웃고 난리 칠 일이긴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 <
지금은 집밥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나를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20년 가까이 교육 현장에만 있던 내가 워킹맘으로 한 조기교육 하나가 있다면 바로 '집밥 쿠킹 클래스'



그렇게 3살 6살부터 시작한 요리 수업 덕분에 지금은 주말마다 6학년 아들에게 주말 밥상을 받아먹고 있는

나름 가정에서도 2%는 성공한 집밥 애정러라 인정해 주고 싶다.

잘하고 있어. 집밥녀~!

사실 쿠킹 클래스는 놀기와 음식 만들기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낼 수 있는 일석이조 육아방식이기도 했다

       초3부터 집밥도 척척 차려준 아들, 딸

하도 집밥, 집밥 했더니 -엄마 생일 선물로 유부초밥을 만들어준 아들,
집밥에 집착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간식도 전부 집에서 만든 것만 먹였었다... 후회는 없지만. 조금 힘들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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