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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Sep 30. 2019

쮸와 나

의사소통

제주로의 이주라는 큰 산을 넘는 동안에도 아이는 늘 함께였고, 성장했다.

자라고 있지만, 여전히 말하지 않기에, 늘 표정과 행동을 살피고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했다.

아이는 불필요한(?), 또는 귀찮은 일은 최대한 '지능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신발을 신고 문 앞에 나가면 두 팔을 벌리고 내 앞을 가로막는다.

처음에 이런 몸짓이라도 의사표현을 하는 게 기특해서 "안아줄게~~!!"하고 반겼더니, 9살이 된 지금까지도 학교 교실까지 안아달라고 조를 때가 많다.

또, 간단한 지시는(가져와, 이리 와 등) 못 들은 채 하거나, 도망가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한동안 무척이나  "엄마, 배고파"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배고파를 시작하면, 아픈 것이나, 가려운 것이나, 여러 가지 신체상태를 알려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람이 컸는지, 어느 날은 멀쩡하게 아이가 "엄마~ 배고파요!"하고 말하는 꿈을 꿨었다.

"너 언제부터 말할 수 있었니? 왜 이렇게 말을 잘해~!"

"저 원래 말 잘할 수 있었어요..." 꿈에서의 대화는 짧았지만 강렬했고, 그것은 딱 나의 바람, 그만큼이었다.


아이는 조금씩 행동/소리/표정으로 요구사항을 늘려갔다.

냉장고 열고 닫기를 반복하면 배고픈 것이고, 컵을 식탁 위에 놓으면 목이 마른 것이다.

소리를 꽥 지르는 것은 화가 난 것이고, 귀를 두 손으로 막으면 시끄럽다는 뜻이다.


쇼핑하러 가면, 원하는 것은 이름을 불렀다.

"가그린", "리스테린", "킨더초콜릿", "마이쮸"...

이름을 잘 모르거나, 방향(위치)을 지시할 때에는 "여기다, 여기다!"라고 소리치며 손으로 대충의 장소를 알려주었다. '여기다'는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각각의 어투와 표정 등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차려야 했다.


여전히 말을 잘하지 않지만, 남편과 나는 참 끈질기게도 상황에 맞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럴 땐, 킨더초콜릿 사주세요. 하는 거야."

"이럴 땐, 냉장고에 있는 우유 주세요. 하는 거야."

"이럴 땐, 저도 먹고 싶어요. 하는 거야..."


4살 즈음, 아주 조금씩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문 닫아"하면 문을 쾅 닫거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하면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기도 했다.

내비게이션 음성을 따라 말하기도 했다. 꽤 어려운 단어가 섞여 있어서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반복해서 따라 하면서 발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오른쪽 커브에 주의하세요."

 

아마도, 사람이 옆에서 "~해봐"하며 다그치는 것보다는, 기계가 저 할 말만 하고 말아서 부담이 안됐는지, 기계에서 나오는 말을 더 잘 따라 했다.


유튜브 영상(어린이 동요)을 틀어줬더니 관련 영상 리스트를 이리저리 보다가 스스로 영상 몇 개를 찾아 끝없이 반복하면서 보았고, 덕분에(?) 한글보다 영어 알파벳과 단어들을 먼저 습득했다.

엄마가 모국어로 지겹게 말해보라며 시키는 것보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저 할 말만 하는 영상이라 관심이 지속된 것은 아닐까...


"아이가 부모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잠깐만 봐도 그게 느껴져요."  - 한 치료사의 말


아무리 기계에서 나오는 말을 더 많이 한다고 해도, 의사표현을 위한 코칭은 계속 이어 나갔다. 치료사의 말처럼 아이는 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통의 한 부분을 열어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형이 짝꿍 이름은 뭐야?", "주형이 친구 이름 알아?"

몇 년 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자주 물었던 질문이었다.


6살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자기 교실 쪽으로 이끌었다.

교실 벽에 꾸며진 사진들 앞에서, 내 검지 손가락을 자기 손으로 쥐고 사진의 아이들 한 명 한 명 가리키며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20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감격스러워서 아이를 끌어안고 울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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