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팬텀 싱어 3'
경연 프로그램에서 불리는 우리 노래가 좋다. 노래도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이 좋다. 다양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문장이 나를 이끈다. 그래서 역사적 시인들의 시가 노래로 불리는 것이 반갑다. 시가 시 자체로 그 서사가 지난하지만, 삶을 압축한 시가 노래로 불릴 때의 감정은 새롭다. 정지용의 시는 삶이 고단하면서도 따뜻하다. 윤동주의 시는 안타깝고 아프다.
팬텀 싱어에서 우리 노래가 많이 들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태리의 사랑 노래도 좋지만, 그리스 아저씨의 열정도 좋지만, 쿠바의 노래도 좋지만, 난 우리 노래가 더 좋다. 게다가 멋들어진 화음으로 깊이를 모르게, 고음도 숨 가쁘지 않게 넘어가는 가창 실력을 가진 사람들의 화음이라면 간절히 기다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오히려 부탁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노래가 마음에 닿는 매 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드디어 우리 노래가 나왔다. 윤동주의 시, <무서운 시간>은 사실 처음 접했다. 윤동주의 다른 시에서 보인 참회와 부끄러움은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을까. 역사 앞에 한 몸 일으키지도 못하고 나서지도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의 아픔이 노래를 들으며 고스란히 느껴졌다. 절로 숙연해지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지난 방송에서도, 매화 한 번도 본방송을 놓치지 않고 시청했던 드라마의 주제가 ‘바람이 되어’가 불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과 별리에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순간에 흘러나왔던 그 노래가, 내가 좋아하는 참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으로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연(緣)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들으면 원곡에 관심을 갖는다. 윤동주의 시 <무서운 시간>은 원곡을 듣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짧은 시에 원대한 서사를 녹여 낸 노래를 들었는데, 다른 무슨 곡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심사위원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크로스 오버 사중창이 지향해야 할 바를 보여준 것 같아 벅찬 느낌이었다. 슬픔의 미학을, 노래의 분위기와 배경과 내용을 알고 듣는다는 것이 주는 느낌을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래가 불리는 내내 숨도 크게 쉴 수 없게 노래는 강약과 장단의 조화로움을 보여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나를, 소용돌이 치는 역사의 흐름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삶이 시가 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게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정지용의 <향수>를 읽으며 어느새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벌판의 한가운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맨발로 흙을 밟고 서 있었다. 시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를 들을 때, 숨이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크게 숨을 쉴 수가 없다. 노래가 끝나고 여운이 천천히 가신 뒤에야 가늘게 숨을 뱉는다. 요즘 '팬텀 싱어'를 들으며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노래가 마음을 잡고 놓지 않는 순간이 싫지 않다.
무서운 시간 -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呼吸)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바람이 되어 - 하현상
그댈 닮은 저 시린 꽃잎이, 바람에 날려 흩어질까
꿈에 본다면 좋을 텐데
우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우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게요
그대 곁에
두 눈에 서린 안개 너머, 그대 뒷모습 아른거려
꿈에 본다면 좋을 텐데
우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우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게요
곁에 머물게요
그대 느낄 수 없나요, 이 바람 끝에 맺힌 내 맘을
그대에게 닿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잖아요
바보 같은 내가 보이지 않나요, 내가 그대 곁에 있는데
우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우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게요
그대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