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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걸으며

by 바람

연 이틀 공원을 걸었다. 한 바퀴 도는 데 1.6km, 4바퀴를 돌고 나니 만보기의 숫자에 만 보가 채워졌다. 일 년 반쯤 전부터 매일 만 보를 계획하고 드문드문 만 보를 채웠는데, 이렇게 돌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제보다 어제가 수월했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수월할 것 같다.


걷다 보면 앞서가는 사람이 많다. 몇 해 전, 몰아서 일주일의 운동을 하던 주말에 마음먹고 걸을 때만 해도 앞서 가는 사람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그보다 조금 더 앞서가야 했고, 또 앞서 가는 다른 이의 뒤를 쫓아가는 것이 싫어 뛰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한 사람씩 추월하며 걷다 보면 뒤처지지 않아 좋기는 한데 걷는 내내 힘이 들었다. 힘이 들었어도 힘이 부치게 걸어야 운동을 대신한 걷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이번에는 뒤에서 나를 추월해 앞서가고 더 멀어져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옆에서 걷던 남편이 말했다.

"사람들이 왜 자꾸 추월해서 가지? 우리가 느리게 걷나?"

스스로의 걸음이 느린 것에, 느리다고 느끼지도 못한 채로 뒤로 밀리는 것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물음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서둘러서 쫓아가자고 말했겠지만 이번엔 천천히 가자고 했다.

"좀 천천히 걸으면 어때. 이렇게 걸어야 지치지 않고 딱 좋아."

정말 딱 좋았다. 한 사람씩 먼저 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지 않는 걸음걸이 덕분에 만 보를 걸을 수 있었다.


앞서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천천히 볼 수 있었다. 나이 든 노부부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자주 만났다. 우리보다 10년쯤 더 사신 것 같은 분들, 혹은 20년쯤 더 사신 부부, 그보다 조금 더 사신 부부의 걸음을 두루두루 만났다.


한쪽으로 기울 듯 말 듯 걷는 걸음이 남일 같지 않았다. 우리도 그 나이가 되면 저 정도 걸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묻기도 했다. 우리도 10년쯤 후에 저렇게 걸을 수 있겠지. 20년쯤 후에는 우리도 저 정도의 모습으로 걷겠지.


세월이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는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돌아보면 어느새 몇 년을 뛰어넘어 추억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제의 만 보를 얘기하면서 벌써 일 년 반 전의 계획을 가져와서 말하고 있으니. 일 년 반의 시간이 한 달 반의 시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 이렇게 셈한 시간을 다시 몇 년 후 어제와 같은 기억으로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데, 기억을 끌어오다 보면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 있다.


걸을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데, 시간의 셈법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시간의 기억들을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글을 쓰다 보니 생긴 습관 같다. 지난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의 나보다 오늘 내가 선택하는 하루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의 내가 곧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줄 것이고,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면 어디에 무엇이 되어 있건 어떠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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