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하루 전으로의 시간 여행
천천히 시계추를 과거로 돌린다. 혼자만의 시간 역주행이다. 청춘의 시간대를 서서히 통과하다 20대의 나와 마주한다. 얼굴은 선명한데 다른 것들은 희미하다. 그 시간 속에 엄마가 있다.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지나온 시간으로의 방문을 그들은 느끼지 못한다. 나 혼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익숙한 풍경 안이다. 그 속에 결혼을 앞둔 나도 있다.
결혼식 전날이다. 예식장에서 소개한 마사지숍을 들러 집에 왔다. 며칠째 나를 괴롭히는 얼굴의 뾰루지는 결국 화장으로 커버하는 수밖에 없다. 내일이면 이 집에 나는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아쉬움을 생각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대중목욕탕에 간다.
엄마의 나이를 숫자로 가늠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하기 전은 물론이고 결혼한 후에도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다시 보니 엄마의 얼굴에서 나이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나이도 주름도 보이지 않았는데 선명한 주름도 눈에 들어온다. 피로가 묻어나는 웃음기를 띠며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본다. 결혼 생활의 팁도,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당부도 없다. 눈이 말을 대신한다. 등을 밀어주고 토닥여 준다. 두 시간의 길지 않은 시간 내내 엄마의 시선은 나를 쫓는다.
나는 엄마를 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복잡한 결혼 절차가, 아직 해결 안 된 여러 문제로 꽉 차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그렇지 않은 문제까지 나를 괴롭힌다. 한사코 폐백은 받지 않겠다는 시어머니의 단호한 거부의 의사표시가 그중 가장 큰 문제다. 폐백 음식도 준비할 것 없다고 이미 전달받았다.
내일이면 남편이 되는, 그의 나이 스물에 시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시어머니에게는 고단한 시간이었다고 짐작된다. 남편의 부재가, 그 어두움을 그늘막 없이 견뎌낸 고집을 마주한다. 남편이라는 울타리, 그 보호의 안락함을 잃어버린 짧지 않은 9년,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 시어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받는 인사가 초라하다고 하셨다. 그런 이유로 남들 다 받는 폐백을 받지 않겠다고 분명한 의사를 밝혔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결혼식의 폐백은 당연한 절차다. 하고 말고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엄마는 걱정했다. 그런 게 있냐고 물으셨다. 음식은 준비했다,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준비는 해야 한다시며. 누구도 대놓고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조심스러웠다. 시어머니가 받지 않는 폐백을 누가 받을 수 있을까. 시할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한 마디로 자르셨다. 폐백이 없으면 결혼식에 참석 안 하시겠다고, 한 마디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내일 그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시댁 식구들과의 공식적인 인사 자리. 폐백을 그렇게 정의했다. 당신의 불편한 심기를 이유로 폐백 받기를 거부하는 어머니에게 누구도 이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결정된 것은 없는데 결정된 것인지도 몰랐다. 내일의 혼란이, 그 파장이 가늠할 수는 없지만 무수한 말들이 안 들어도 들리는 듯했다.
친구들의 결혼식을 따라다니며 단연 폐백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였다. 형식적인 예식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돈되어 흘러가는 과정이라면, 폐백은 돌발 변수였다. 엄숙함을 깨뜨리는 파격이 폐백에서 간간이 나왔다. 웃으며 결혼식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할 수도 있다는, 안 할지도 모른다는, 표현만 다른 부정의 말을 여러 번 들었고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복잡한 표정들을 살피는 엄마가 눈에 들어온다. 목욕을 끝내고 엄마는 가는 숨 줄기를 내보내며 말씀하셨다.
“너도 이제 고생문으로 들어가는구나! 너는 잘 살아라.”
너도……, 너는…….
결혼식 이후 나도 고생문을 열었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나 중심의 세상에서 주변인의 세상으로 뚝 떨어졌다. 나의 목소리가 없어진 세상의 삶이었고 모든 것이 내겐 비정상이었다.
비정상도 익숙해지니 마치 그것이 정상인 듯했다. 나는 잘 살아야 했다. 그것이 엄마의 바람이었다. 엄마의 바람을 난 여러 번 지키지 못했다. 울며 전화했고 아이를 둘러업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친정을 찾았다. 엄마 곁에서 불안한 외박의 밤도 여러 날 보냈다.
시계추를 돌려 도착한 결혼 전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있고, 앞으로의 일들을 예견이라도 하듯 간절한 바람을 얘기하는 엄마가 있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에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과 섞여 미래의 내가 변형되고 확장될 수 없으므로 당시의 나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바심으로 아련하고 엄마의 당부는 무겁고 깊어 처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