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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06. 2024

망설이고 주춤하고

돈, 글, 나이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

자주 들르는 과일가게가 있다. 장보기를 할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질과 가격이다. 질이 좋아도 가격이 너무 비싸면 고민하다 마음을 접는다. 요즘 특히 그런 일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 말부터 사과를 시작으로 과일 값이 폭등했을 때, 과일가게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되돌아오는 일이 많았더랬다. 지금은 다른 제철 과일이 많이 나와서 비교적 싸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무조건 반길 수는 없다. 주인이 확인을 했든 안 했든 안 먹느니만 못한 것도 매대에 놓여있다. 조금 먹더라도 좋은 것을 먹자는 마음이다. 몇 번의 실패 경험을 통해 싼 것은 나쁜 것, 비싼 것은 대체로 좋은 것이라는 공식이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비 적정선을 정하고 쓸 수 있는 한계비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가게 앞에서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다. 특히 나처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의 주춤거리는 행동은 타인의 눈으로 볼 때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사과, 참외에 망설이는 모습이라니, 초라하다기보다는 속이 상하다.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상황이 속상해서 애먼 과일장사에게 화가 난다. 


거침없이 장을 보는 손길들을 넋을 놓고 볼 때가 있다. 사과 한 박스, 살구 한 박스, 복숭이, 수박, 체리, 참외 한 박스. 그 많은 것들이 집 냉장고에 다 들어가기나 할까 싶은데, 종류별로 것도 박스 채로 담는 모습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인가 싶다. 나만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에 금세 우울해진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기운을 받자고 시장에 왔다가 오히려 자신을 잃고 가는 느낌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 강사로 간간히 나가고 있다.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은 크지만, 책을 내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글을 쓰면 쓸수록 깨닫는 중이다. 아쉬운 대로 강의를 하며 글쓰기를 병행하지만 수입이 만족스러운 것도, 그렇다고 글을 놓아버리는 것도 아니라서 이도저도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나는 한 길만 보고 달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모든 것을 던지고 하나를 선택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매주, 매일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글을 올리는 브런치 작가님들이나, 매년 신간을 출간하는 작가들을 보면 감탄을 넘어 존경스러운 마음도 든다. 엊그제 서점에서 신인문학상과 젊은 작가상을 동시에 수상한 2022년 등단 작가의 이름을 보기도 했다. 동명이인은 아닐까 몇 번이나 확인을 해서 동일인임을 확인했을 때 뭔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이라니. 끊임없이 나오는 문장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고 싶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나와는 다른 경지의 사람이라는 갭이 엄청나게 느껴지며 몸속에 거세게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나름 열심히 강의를 쫓고 나름의 노하우를 습득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싶다. 굳건하게 단단한 나의 감성은 어쩌다 강의를 접하는 순간만 말랑말랑 유연해지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쓸데없이 회복력이 좋다는 것이 함정이다.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아침에 눈을 떴나 싶은데 저녁에 자리를 깔고 있다. 월요일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금요일이다. 어느새 나이를 헤아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한 살의 시간은 순간처럼 지난다. 그러니 어제의 나이가 의미가 없고 내일의 나이는 무섭다. 


78세의 언니가 있다. 아직은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도 빠르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동생을 만나러 먼 길을 오는 것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다. 나이를 가지고 위세를 떨지도 않고 몸이 힘들고 아프다고 한숨 쉬거나 특별한 대접을 바라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막내인 나보다 더 건강한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언니를 보며 그 나이의 나를 생각한다. 그때도 살아있다면 나는 언니만큼 건강하고 자신감 있게 살고 있을까?


나이 앞에서 늘 주춤한다. 나이가 아킬레스 건이 되고, 나이를 염두에 두는 순간 모든 사고와 동작이 정지된다. 나이를 먹는 것과 몸의 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거부할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는 한껏 거부하는 모양새다. 나는 노화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jtbc에서 방영되는 <낮과 밤이 다른 그녀>다. 낮의 그녀는 이정은(임순) 배우고 밤의 그녀 정은지(이미진) 배우다. 어느 날 30년이 늙은 모습으로 바뀌어 깨어난 그녀, 나이 든 오십 대 임순의 한탄이 내 마음이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내보고 우짜라고! 차라리 확 늙게 만들든가 꼬부랑 할머니를 만들지. 그럼 희망고문이라도 안 할 거 아니가. 이 꼴로 할 수 있는 게 뭔데."


역시 미친 연기력이다. 어느 날 갑자기 30년을 늙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한탄이 내 마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가왔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지금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젊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희망고문을 끊임없이 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직은 충분하다는 희망고문은 어쩌면 스스로 어정쩡한 나이라는 고백인 걸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준하는 옷차림을 거부한다. 지금도 면티와 헐렁한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동네를 활보한다. 직장에 다니며 준비했던 정장스러운 옷들이 지금은 장롱에서 잠자고 있다. 하나 둘 정리하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것도 언젠가 중요한 자리에서 입을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보관만 하는 것도 여전히 많다. 사실 입으려고 하면 나잇살이 스타일을 망가뜨리지만, 그래서 결국은 버려지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나름의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노인 행세를 하며 여유로운 노년인 척하는 것도, 젊은 사람의 모양으로 버티며 열심히 활력 있게 사는 것도 어려운 때다. 여전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만 몸도 마음도 여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법적 노년은 점점 미뤄지는 추세고 나이 듦은 사회에나 국가에나 하물며 스스로에게도 짐으로 다가온다. 


잠시 주춤하지만 삶은 멈춤은 아니다. 망설이지만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토록 나를 허무하게 하는 젊은 몸과 마음이 완성형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젊음의 순간은 찰나와 같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또 철학자처럼 곱씹고 있다. 


오늘만큼은 과일가게에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통 크게 박스채로 사야겠다. 삼일 지연된, 그래서 나를 이토록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브런치북의 발행도 오늘은 마무리해야겠다. 마음을 먹으니 분위기가 전환되는 느낌이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망설임과 주춤함이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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