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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29. 2024

지금 내 감정은 안녕한가

도시 감정 사전 제작에 참여하며

매주 토요일은 부천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도시 감정 사전 제작을 위한 강연에 참여한다. 지난주에 9주 차 수업을 마쳤다. 토요일의 모임이라니,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토요일이라는 의미가 주는 왠지 모를 달콤한 휴식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잠시 들었더랬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 시작만 하면 시간은 지나가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어느새 마지막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홉 번의 토요일 중 네다섯 번 정도는 비가 왔던 것 같다. 주말이면 제법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막연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다. 차로 이동하고 차에서 내릴 때와 오를 때 잠깐 빗방울이 몸에 튀는 정도긴 했지만, 비가 쏟아지는 날씨는 강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했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비 오는 토요일, 집에서라면 TV 소리를 소음 삼아 집 청소하고 빨래하다 베란다 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보고 있었겠지. 문득 정신을 차려 궂은 날씨가 주는 습기와 더위를 몰아내려고 부산을 떨었을 것이고. 그러다 화분 한 번 살피며 니들은 오늘 살만하겠다 생각하며 잠시 식물의 마음이 되어 보았을 것이고. 그러다 또 눅눅한 베란다 마루 바닥이 더 칙칙해 보이면 구석구석 걸레질을 했을 것이다. 무릎으로 움직이다 누렇게 변색된 이파리가 눈에 들어오면 신경이 쓰여 정리했을 것이고. 봄 날씨에, 비에 살만하다고 이리저리 네 활게를 활짝 펴는 식물 가지들을 정리하려고 전문가라도 되는 양 꽃가위도 들었을 것이다.


강의를 들으며 세상에 쓸모없는 강의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감정사전 제작을 위한 강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다.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그림책 수업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감정을 채색하는 활동을 다. 활동이 끝나면 차분히 그날의 감정을 정리다. 어린 시절에도 배우지 못했던 소금 만다라 활동을 하며 전지 사이즈의 종이에 다양한 촉감과 색감을 구현하기도 했다. 다시 또 감정의 정체를 살피며 나의 오늘 어땠는지. 즐거움과 당황스러움,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우울한 느낌들이 어떻게 흘러들고 어우러지는지 감정의 저 바닥을 들여다보기도 다. 감정의 바닥까지 살펴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 생각했다. 나를 돌보는 활동들이 늦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내가 속한 모임은 '0세를 시작하는 우리들' 편이었다. 0세를 시작하는 우리들을 기록하는 60세라니, '0세의 우리'에 60세가 속할 수 있는 것인지, 엄청난 거리감과 함께 현재의 내 위치가 실감되었다. 시간과 마음의 괴리가 큰 사정을 담당자에게 구구절절 얘기했지만 진행하는 측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본인의 출산 경험 말고도 친인척으로 연결된 아이들과 거리의 이웃을 보고 느낀 감정을 표현하면 된다그 말보다 더 큰 위안 사실 나 말고도 절반 정도는 내 나이 근처로 보이긴 했다는 것이었다. 동년배의 동질감이 어느 정도는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손녀나 손자들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쓸 만한 것이 많을 것 같았다. 가장 가까이 얘기했던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사람도 늘 아이들과 아기 엄마들을 만나니 느낌이 나와는 다르게 생생할 거라고 짐작했다. 아직은 정서적으로 분리가 덜 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고등학생을 둔 부모의 입장도 글의 취지에 비교적 적합하게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둔 엄마들도 꽤 있었고 자녀의 어린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그들에게 낯선 일이 아님을 가벼운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을 감정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연재 브런치북의 제목을 감정사전으로 정한 것도 강의에서 받은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예순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실체들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더불어 주변을 살피고 순식간에 흩어지는 감정을 예민하게 붙잡을 수 있다면, 그걸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하나의 일로 두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이니 그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걸을 때 생각이 정리되는 편이다. 걷다가 문득 느껴지는 감정의 실체가 걸음걸이에 맞춰 단계를 밟게 된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결국은 어디에 이르게 될 것인지 걷는 호흡과 함께 하나씩 떠오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걸을 땐 더 생생하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는 이걸 현장감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고. 반듯한 길과 양 옆에 도열한 나무가, 초록이 주는 다양한 색감이, 중간중간의 새소리와 온갖 곤충과 벌레들의 꿈틀거림의 향연이, 스치는 사람들이 감각을 열게 하는 것 같았다. 떠오른 생각의 꼬리를 잡고 따르다 보면 저절로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중간중간 입으로 복기하는 것은 무척 중요다. 생각의 과정을 다시 곱씹는 단계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들이 입으로 나오고 그다음에 글로 정리되면 한 편의 얼개가 완성다. 걸음과 호흡과 그 와중에 시각까지도 무의식을 따르니 오히려 몰입이 쉬웠다.


세 편의 글이 완성됐다. 나가 주목한 감정은 '애쓰다', '출렁이다', '사랑하다'였다. 30대 주부의 모습을 담았고, 60대 이후의 노점상들의 모습을 담았으며, 7살과 9살 형제의 모습을 담았다. 절반의 정보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대상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거기에 나의 감정을 진솔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연결'. 그걸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감정이 넘치지 않게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오래 쌓여 묵은 감정은 언제든 보상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억누른 감정과 아픈 감정은 때론 마음까지도 요구한다. 마음이 해결해 줄 수 없을 때 몸이 반응을 한다. 피곤, 우울, 괴로움, 혐오, 분노 등. 마음을 요구하는 감정이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우선은 인정하고 수용하여 달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간의 수업을 통해 깨닫게 됐다. 더불어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방법, 다독이는 방법에 글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의 내면은 오락가락했다. 글에 집중하려고 애쓰며 혼란한 마음을 외면하거나 한쪽으로 차갑게 밀어놓으려고 애썼다. 마음에 정착하지 못한 감정이 혹여 가족들에게 향하게 될까 조심했다. 감정을 배운다고 하면서 정작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상처 주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글도 마무리했고 내 감정을 본격적으로 꺼내 볼 시간이 된 것 같다.


지금 내 감정은 안녕할까? 감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의 저변에 자리한 욕구가 충족이든 불만족이든 마음 가는 대로 가볼까. 그 과정에서 참고 참다가 터지는 감정의 찌꺼기가 혹여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감정사전이 그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오늘 특별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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