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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12. 2024

매미의 마음

아이들의 등교시간이 끝나면 길은 다시 고요해진다. 잠시 걷다 보니 분명 인적이 없는데도 시끄러운 느낌이 든다. 사람 소리도 아니고 새소리도 아니다. 귀를 울리는 찌르르르한 소리. 맞다, 이때쯤에 매미가 등장했다. 아직은 소리가 집중되고 몰아치는 느낌은 아니지만 제 소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며칠만 지나면 요란하게 아침을 깨울 것이다. 또 여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더위의 상징처럼 나타났다가 더위가 가실 즈음에 흔적을 지우는 곤충, 여름과 매미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이제 아이들이 방학을 맞게 되면 험난한 매미 인생의 수난이 시작될 것이다. 매미채는 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필수 아이템이다. 엄마 아빠를 앞세우고 먼저 부모가 시범을 보이면 어느새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다. 아이가 매미 채집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매미의 계절은 저문다.


매미는 성충의 모습이 되기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고는 7~20일의 짧은 생을 산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생, 반짝하는 순간 소멸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의 울음엔 이유가 충분하다. 그 소리가 요란하고 짜증스럽더라도 참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짧은 시간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죽음을 걸고 외치는 사투. 매미들의 울음은 처절한 비명 내지는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본 구절이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 건 자식이 뭐가 되고 뭐가 되고 뭐가 되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거라고. 뭐가 되기 위한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이 뭐가 되었을 때, 가슴이 벅차하며 눈물을 흘리나 보다. 또 그 무엇이 자식을 웃게 하고 살아가게 할 때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 같다.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면 성인이 되어 뭐가 될 거라고, 서로를 축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세대에게는 그런 미래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대단한 뭔가가 되겠다는 계획이 아니어도 어렵다. 어려운 시대에 그들의 그 '무엇'은 흔들리고 변경된다. 무엇을 향한 계획은 마치 진입로를 잘못 들어선 운전자의 선택처럼 무겁지 않다. 그저 가볍게 경로를 수정할 뿐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뭐가 되겠다는 계획 자체가 임시방편이 된다. 목표를 상실하고 방향을 잃은 자녀 앞에서 부모 역시 혼란스럽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은 모임에서 자식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암묵적인 배려다. 혹여 자식 자랑에 목소리가 커지는 부모 옆에는 씁쓸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자리를 뜨는 부모가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청년패널조사로 본 2030 캥거루족의 현황 및 특징: 누가 캥거루족이 되고, 누가 캥거루족에서 벗어나는가’를 발표했다. 내용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청년 3명 중 2명은 부모에 얹혀살거나, 따로 살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캥거루족'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몇 년 새 30대 초반에서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캥거루족’이 2030 세대 10명 중 6명 이상이며, ‘캥거루족’ 증가 현상은 20대 중후반보다 30대 초중반 연령대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고 한다. 암컷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아야 하기 때문에 배 부분이 발성 기관 대신 산란 기관으로 채워져 있어서 울지 못한다고 한다. 포식자에게 잡히게 되면 귀가 터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대는 수컷과 달리 암컷은 소리도 못 내고 그저 발버둥 칠 뿐이라고. 어쩐지 부모마음 같아서 애틋해진다. 


또 다른 얘기도 있다. 7년 동안 땅 속에서 꿀 빨다가 죽기 직전에야 겨우 기어 나오는 게으른 녀석들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다소 혐오스러운 외관과 소음 공해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해충이라는 인식은 없지만 그야말로 무기력하고 방만한 인간의 표본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백수나 무직자를 매미에 빗대기도 한다니 여담이지만 웃을 수 없다.


유충일 때는 지하의 어둠에서 살고 성충이 되어 남은 생명력을 올인하기 때문에 문학에서는 비운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단다. 가장 자주 쓰이는 소재가 눈물 나는 비운의 과거를 가진 인물이 엄청나게 긴 무명기를 극복하고 쨍하고 해 뜰 날을 맞이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모습에 빗대는 것이라고. 고작 매미지만 그 한살이는 부모의 입장, 자식의 입장, 성취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재구성되는 것 같다.


문득 궁금증이 든다. 아이들의 채집통을 가득 채운 매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의 훌륭한 과학탐구과제물이 되었을까? 여름날 부모와 자녀의 행복한 한 때의 즐거움으로 소진되었을까? 간혹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에 날개와 다리가 잘려 길에 버려졌을까? 내게 올여름의 매미는 작년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한 때나마 목청껏 울도록 방범창 매미를 쫓지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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