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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16. 2024

맛있게 먹으면 건강식단

무더위를 견디는 방법

더위로 밤에 잠을 설쳐서인지 입병이 났다. 입 안쪽에서 시작된 부스럼이 입 밖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딱히 고단할 일도 없었는데 날씨가 몸을 고되게 하는가 싶었다. 2주 전 코로나 증상이 느껴져서 약을 사서 먹었는데도 일주일 넘게 두통과 몸살로 힘들었다. 각자도생의 시대니 알아서 살아내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빠르게 약을 먹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입병은 코로나 여파일지도 모른다.


몸이 바로미터였는지 코로나가 대 유행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예전처럼 대대적인 보도는 없지만,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는 기사였다. 8월 둘째 주 기준 1357명으로 3주 전 226명 대비 500.4% 증가했다니 코로나 한창 유행할 때 날마다 기록경신을 하는 듯한 놀라운 수치를 다시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위는 몸을 더 힘들게 했다. 일부러 참았던 건 아니었는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참는다 싶었던 것 같다. 한낮의 온도가 35도를 넘나들던 날, 바람 한 점 없고 매미 소리만 하늘을 찢던 날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지친 얼굴에 웃옷은 온통 젖은 채로 들어온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에어컨이 장식인 줄 알았다,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가구라 버리려고 했다. 딸도 드디어 에어컨을 켜냐며, 우리 집 같은 집은 없을 거라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이미 중복을 지난 시점에서 정말 오랜만에 켠 에어컨의 맛이 제법 좋았다. 한 시간 정도 틀고 있으니 땀이 싹 가시고 뽀송한 몸이 되었다. 그렇게 두세 번 틀면 하루가 갔고 여름도 견딜 만하다 생각했다. 말복도 지났으니 결국 여름은 물러갈 것이고, 조금만 더 이렇게 견디면 전에 없다는 올여름의 무더위도 지혜롭게 잘 넘긴 셈이 아닐까 생각했다. 




2년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살았다. 커버만 벗겼다가 다시 씌우기를 반복하며. 에어컨을 안 켜게 된 나름의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우선은 잠깐만 틀어도 시원하다 못해 냉기가 도는 것이 내 몸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 열효율이 안 좋다느니 어떻다느니 말도 많은 때였다. 전기세 걱정도 한몫했다. 되도록이면 열효율에 맞게 적당히 더위를 피하고 싶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결정적인 것은 밤이었다. 에어컨을 트니 환기는 불가하고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있을 수도 없고.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춥고 덥고 잠자리의 온도가 왔다 갔다 했다. 잠은 잠대로 설쳤고 실내 공기는 탁하고 답답했다. 다른 집들도 우리와 비슷한 사정이었는지 때마침 변압기가 터졌고 단지 전체가 정전 사태를 맞았다. 가족을 모두 깨워 찜질방으로 대피했고 희한한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변압기는 빠르게 복구됐지만 그날 이후로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무한 반복됐다. 


늘 더운 상태인 것보다 시원함을 맛본 후에 다가오는 더위에는 몸이 더 힘들었다. 서서히 실내 온도가 올라가고 냉방을 위해 굳게 닫혔던 문을 열어야 할 때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미약하지만 뜨끈한 자연의 바람은 몸과 마음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어때? 견딜 만 해?" 바람과 햇빛의 싸움에 말려든 나그네처럼 실험 대상이 된 것 같았다. 


그런 경험은 유쾌하지 않았다. 몇 번 반복되니 차라리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켰다 껐을 때의 몸의 부조화를 설명했고,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 아니냐며 사워로, 얼음물로, 수박으로 더위를 피해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게 맞다고 군색하게 환경보호 구호까지 내세웠다. 




올여름은 특히 몸과 마음에 위기감을 더 느낀다. 에어컨 사용에 있어서는 나름의 해법은 찾은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무더위로 집 나간 입맛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 입맛에 맞춰 가족의 식단도 바뀌고 있다. 밥과 찌개보다는 후루룩 넘길 수 있는 간단한 한 끼. 요즘의 식사는 면과 면과 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용량으로 냉면을 주문했다. 처음엔 시험 삼아 10인분, 그다음엔 20인분, 엊그제는 무려 40인분을 주문했다. 열무 국수에 이어 냉면을 밥처럼 먹다 보니 냉장고에는 냉면과 육수만 그득하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은 요즘에 딱 맞는 간편식이다. 먹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누군가는 형편없는 식사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생존 방법이라고 합리화하는 중이다. 


나이 61세에 생물학적 나이 38세를 자랑한다는 남자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유기농 풀을 먹인 소고기, 방목한 닭고기 또는 야생에서 잡은 생선, 다양한 색상의 채소와 마늘, 허브,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먹으며  보충제와 스킨케어 제품에 연간 3만 달러(한화 약 4138만 원)를 지출한다고 했다. 


건강한 몸이 좋아 보이지만 부럽지는 않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돈도 돈이지만 그의 식단은 우리 취향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더위가 문제고 지나치게 이완되고 흐물흐물해진 몸과 마음이 문제다. 그럼에도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불편한 마음은 피할 수 없다. 긍정의 논리가 없지는 않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기적의 논리를 가져와서, 비록 면 식단이라도 '맛있게 먹으면 건강식단'이라고 소심하게 우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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