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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28. 2024

언젠가는 정면돌파

"약 나왔습니다. 10일치고요. 아침 점심 저녁 약이 똑같아서 따로 표시하지 않았으니 한 포씩 드시면 됩니다. 혹시 장거리 운전을 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운전 후에 드시면 좋을 것 같아요. 졸린 성분의 약이 있어서 운전 중 졸음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 두 마디까지는 눈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약사는 눈을 마주치며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처럼 어절이 끝날 때마다 굳이 눈을 마주치려 했다. 그러니 눈치가 있다면 내가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인지했을 것이고 눈치가 없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늘 듣는 말이고 약국에 오는 손님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는 상투적인 구호로 들기에 딱히 나를 향 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다음 말예상과 어긋나지 않았다. 약 성분이 이전과 같다는 말은 이 약국을 방문한 이래로 지난 2년간 한 번도 빼지 않고 들었던 말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늘 해야만 하는 심정을 이해해야 하는 건지, 그 정성만이라도 높이 사야 하는 건지. 약사는 마치 그런 말을 꼭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것처럼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제는 그다음 문장이었다. 이미 완성된 그림에 쓸데없는 것을 붙여 그림을 망치는, 사족이라고 생각했다.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 대목까지 오면 끝을 알면서도 짜증이 났다. 말을 끊고 미리 알겠다고 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특히 오늘처럼 차로 이동하는 길에 들은 이런 안내는, 자신은 이미 위험성을 경고했으니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어떤 종류의 책임감 또는 죄책감도 가볍게 사양하겠다는 면피성 발언처럼 들렸다. 삐딱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을 듣고 오기를 부렸다. 굳이 받은 약을 한 포 뜯었다. 입에 약을 털어 넣고 물을 찾는데 약사를 보조하는 분이 마침 비타민 음료를 한 병 권했다. 길가에 차를 고 내렸고 다시 운전해서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이 덥지요, 며 내미는 손. 이 말을 포함해서 그냥 주르륵 외는 영업용 구호라고 생각했다. 인사말 대신 뚜껑을 열고 물을 대신해서 약을 삼켰다. 그들의 말이 배려가 아닌 구호가 된 순간 나 역시 그들에게서 단골인 듯 단골 아닌 단골 같은 사람의 모양새가 된 것 같았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카페였다. 매일 들르는 중저가 커피 매장. 창업 이래로 중저가 커피 시장을 장악했다는 그 집의 커피가 다행히 내 입에 맞았다. 고가 브랜드의 커피가 쓴 맛을 주체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먹고 난 뒤의 입맛이 깔끔하게 정돈되는 느낌이라 선호하지는 않아도 실패가 없다는 마음으로 그간 선택했다면, 이곳의 커피는 쓴 맛도 덜하면서 뱃속의 텁텁하고 불쾌한 기분을 한 방에 정리해 주는 데다 가격까지 딱 적합해서 매일 마시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대놓고 인생 커피라고 떠드는 맛이었다. 아아는 기본, 따아에 라떼까지 추가했다. 충분한 카페인의 확보가 오늘과 같은 날에는 무척 중요했다. 손가방을 대신해 허전하지 않도록 늘 손에 들려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누군가 말문을 막을 때, 더워서 불쾌감이 치솟아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때, 말도 안 되게 표정관리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조용히 커피잔을 들어 목으로 넘기면 타인의 경우 없는 입을 막는 효과는 물론 신기하게 마음에 쉼표가 생기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부질없어지고 다 괜찮아지는 현상, 달리 말할 수 없는 카페인의 마법이었다. 깊이 생각에 빠져들지 않게 하고 눈앞의 불합리와 부조리한 현상에 휘말리지 않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인의 목소리로 멘트가 흘러나왔다. 빈틈없이 이어지는 그 말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터치를 하며 주문을 완료했다. 분명 들으면 기분이 좋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이상하게 상쾌했다. 타인의 의견을 가볍게 묵살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만족감 같은. 약국에서의 느과 비슷한 것일까 싶었다. 마지막 기계음이 들려왔다. 000번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가 준비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었을까? 줄 서고 터치하고 기다리고 받는 과정에서 아무런 감정적 소비가 없다고 생각했다.  


약과 카페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밥이었다. 밥이 가장 우선이던 세상은 이미 멀어진 것 같았다. 인간이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굶주림의 고통이라는데, 지금의 시대는 그러한 고통을 느끼게 할 만큼 폐허의 시대는 아니라서. 강요된 배고픔이 아닌 이상 하루 정도의 허기는 괴로움이나 고통이 되지 않았다. 언제든 채우면 되는, 무엇을 먹어도 괜찮은, 적당히 속을 달랠 만큼의 단탄지나 무기질, 때론 물 만으로도 충분했다. 절차로서의 식사는 생략해도 상관없었지만, 내키지 않는 일정에 대한 반항으로, 혹은 나에 대한 존중으로 김밥 두 줄을 챙겼다. 아침은 이미 충분히 지난 시간이었고 늦은 아침에 점심까지는 준비해야 했기에 보나 마나 먹다 흥미를 잃어버리고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기본은 사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주고받는 대화는 간단했다. 특별한 메뉴를 고를 생각이 없었기에 그곳의 기본을 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펴서 주문했고 미리 소복하게 쌓아 둔 것에서 썰어주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드를 건네고 결제하니 끝. 나가는 것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감사합니다, 인사를 들었나 못 들었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운도 감동도 없는 건조하고 재미없는 생활극 한 편이었다.


남은 하루의 피로가 충분히 예상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다 말의 피로에 신경이 꽂히고 말았다. 여러 생각이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예민한 신경으로 약국과 카페와 김밥집을 거치며 들리는 말에 멀미가 날 것 같았던 이유는 의무감으로 나서야만 했던 동행 때문이었다. 하루의 동선을 미리 그려보며 어지러울 만큼 복잡했던 생각들이 밤새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피로감. 그로 인해 아침부터 공연히 고개를 쳐드는 짜증을 왠지 누르고 싶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내키는 대로 풀어내고 싶었다. 괜찮은 척 참고 웃어주고 견디고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혼자만의 억울한 감정을 미리 털어내고 싶었다. 그간의 뒤끝 없고 깔끔하고 시니컬하며, 건조하며 무심하여 자잘한 감정 따위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썼던 것은 나름의 방어였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연출이며 노력이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 그러함을 가장하는 피로는 다소 억지스러운 짜증의 발산으로 조금은 흩어지기도 했다.


그날의 동행은 무사히 끝났다. 아니 무사하지 못했다. 꿈자리부터 괴롭히던 복잡했던 생각들은 다가올 일에 대한 경고였음이 확인됐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은 층이 넓고 섬세하다는 것을 다시 목도했다. 아무 말 대잔치 속에 숨겨진 은근한 적의는 마음 쉽게 상처를 냈다. 거기에 묵직한 돌이 얹어졌다. 체기가 흔적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하루의 과정이 지났다는 사실은 홀가분했다.


어떤 감정은 나이가 들어도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불편한 사람, 그 사람을 만나 마음이 뜯기고 상처 입는 상황은 어떤 면역력통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오늘의 우회적이고 소심한 짜증이 잠깐 마음을 풀어주기는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정면돌파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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