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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19. 2024

다시 여름을 위해

요즘 부쩍 지난 사진들이 앨범으로 만들어지고 알람이 온다. 뭔가 설정을 건드린 것 같은데 이유를 찾을 수는 없다. 사진을 보다 처음엔 이런 사진을 찍었구나 싶으면서도 빠르게 스킵했다. 어느 날엔 천천히 바뀌는 사진을 한 장씩 천천히 볼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때 그 시간의 풍경이 사진과 별개로 머릿속에 펼쳐졌다. 사진을 찍은 장소와 시간의 언저리, 날씨와 분위기, 지나는 인파와 북적한 소란사이에 주고받았던 대화까지 주르륵 떠오르며 사색에 잠기려는데 초라한 내 모습이 말랑한 감성을 정지시킨다. 


립스틱은커녕 기초화장도 하는 둥 마는둥한 민낯, 마르고 건조해서 갈라진 입술, 빗질 안 하고 질끈 묶은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끈 밖으로 지저분하게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이마와 뺨에 달라붙은 모습. 어색한 표정과 둘 곳을 찾지 못한 시선, 손과 발의 어색한 연출은 그렇다 치고 집 안에서 편하게 있다 몸만 빠져나온 그대로의 모양새가 그야말로 사진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무리 본인이래도 어지간한 애정 없이는 보아주기 어려웠다. 


아마도 오 년쯤... 전이라면 반사적으로 휴대폰 창을 바로 닫았을 것이다. 부끄러운 마음에 누가 볼까 무서워 다시는 뜨지 못하게 휴대폰 설정까지 조작했을지도 모르고. 그보다 더 어렸다면 가차 없이 삭제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요즘의 난 그냥 웃어넘긴다.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의 모습일 수도 있는 사진들. 1년 후 다시 사진이 새롭게 편집되어 보인다면 반가울 것도 같다.




옷차림에 지금처럼 신경 쓰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옷차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름 꼼꼼하게 신경을 쓰던 때가 있었다. 큰 사치는 하지 않아도 자잘한 소비는 삶의 활력소였다. 대부분은 옷이었다. 잠깐을 나가도 상하의의 밸런스를 생각했고 지나치게 편해서 몸을 늘어지게 하는 복장은 경계했다. 최소한의 긴장감 정도는 주는 복장을 선호했다.


더운 여름철에도 다르지 않았다. 보들보들 흐물흐물한 면이 아닌 적당히 각을 잡아주는 마가 섞인 원단의 사각거리는 느낌을 즐겼다. 부드럽지만 역시 들러붙지 않는 인견 제품도 선호하는 품목이었다. 목의 깃을 세울 수 있는 것, 하나만 걸쳐도 정장 느낌으로 연출이 가능한 것을 정말 부지런히 쇼핑했다.


색감 선택도 점점 과감해졌다. 무채색에서 벗어나 약간의 색감을 더하니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기본형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소매나 깃에 변화를 준 것도 괜찮아 보였다. 상하의 중에서 하나가 차분하면 하나는 요란해도 괜찮은 연출. 옷장은 실험정신으로 채워졌고 다양한 색감으로 물들었다. 버건디. 보라색, 녹색, 핑크, 호피와 반짝이 의상까지. 받쳐 입는 옷에서 겉옷까지 점차 색이 요란해졌다.




지난해와 다르게 올여름은 훨씬 무더웠던 것 같다. 예전엔 더워도 땀을 잘 흘리지 않아 겨울보다는 여름이 견딜만하다는 말을 할 만큼 여름은 만만한 계절이었다. 더위쯤이야 가뿐하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체질이 변한 것 같다. 조금만 더워도 땀이 흘렀다. 내리쬐는 한낮의 열기에 숨이 막혔다. 가장 힘든 것은 옷의 선택이었다. 오죽하면 피부를 보호한다는 선크림도 두꺼운 옷처럼 버거웠으니. 


조금만 길어도, 조금만 두꺼워도, 조금만 무언가 닿아도 우선 마음이 견디지 못했다.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옷을 찾다 보니 결국 면밖에 없었다. 남편이 사 온 세 개의 면티와 반바지로 여름을 났다. 의도치 않게 합리적인 소비를 한 셈이 됐다. 매일 비슷한 차림으로 서점에도 가고 마트에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사람도 만났다. 남들의 시선이야 어떻든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무더운 여름을 나며 입지 못하는 옷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옷장 앞에 빈 가방을 놓고 하나씩 둘 씩 채웠다가 한꺼번에 수거함으로 직행하길 여러 번 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위에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모든 옷, 올여름에 손대지 않은 옷들을 정리했다. 행거의 반 이상이 비워졌다. 비우니 마음이 조금 시원했다. 마음만 먹으면 비움이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비움이나 내려놓음이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잘 사는 것에 대한 내면의 감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어떤 이는 기운이 있을 때 비워야 한다는 말도 했다. 아직은 단 몇 벌의 옷으로 사계절을 보낼 용기를 낼 수 없지만, 그런 사람의 지혜가 왠지 부럽기도 하다. 어떤 행동이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는 나를 구속하는 것들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다. 미련이다.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며 가을이 오나 싶어 살만하다 생각했는데 다시 여름이다. '다시 봄'은 반갑고 아련하고 애틋한데 '다시 여름'은 단박에 괴롭다. 태풍이 올라와 어딘가에는 홍수를, 어딘가에는 거센 바람을 동반해서 피해를 준다고 뉴스 영상이 뜬다. 그 태풍이 대한민국을 덮은 이 뜨거운 열대 고기압을 몰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면 너무 염치가 없는 걸까. 


내년 여름을 위해 1년을 열심히 비워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베란다와 부엌 창을 통과하는 바람 한 자락이라도 여유롭게 들락거릴 탁 트인 방, 바람이 머물다 갈 옷장과 행거를 준비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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