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Oct 25. 2024

찌부러진 마음을 펴자

하루의 일과는 대체로 단조롭다. 아침을 먹고 나면 간단히 집안 청소를 마친다. 이후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도 읽고 서가도 거닐고 가지고 간 노트북으로 인터넷 공간을 헤집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시청 담벼락에 마련된 이름 그대로 담벼락 도서관이 시끌시끌한 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려는 시청 직원들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시간, 시끄러운 소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만의 차분한 분위기는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찬바람이 불며 도서관 가는 게 뜸해졌다. 더워도 매일 가던 곳이었는데 정작 시원하니 게으름을 피운다. 몇 발자국만 떼면, 신을 신고 문밖으로 한 발짝만 디디면 되는 데 그게 쉽지 않다. 매일 신간을 검색하고, 대여 가능한 수량만큼 촘촘히 책도 빌리고, 그렇게 가져온 책을 계획을 세워 읽어나가고 하던 것이 요즘 흐트러졌다.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데, 무너지는 것은 순간인 것 같다. 몇 권 안 되게 빌려온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시간. 지난주 독서토론을 위한 책은 반도 못 읽고 토론에 참여했다. 다 놓쳐도 성실함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 성실도 이렇게 가볍게 흠집이 나 버렸다.




여름 내 열어놓았던 베란다 안쪽 문을 꽉 닫았다. 바깥 베란다 문은 손바닥만큼 열어 놓았는데 아침에 거실 안쪽 문을 열면 찬바람이 훅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새삼 날씨의 변화가 매섭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추우니 바깥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식물들이 신경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매일 싱그럽게 가지를 뻗고 새 잎을 내던 식물의 생명력이 잠시 주춤한 것도 같고. 얘들도 밤새 추웠으려나, 거실 안쪽으로 자리를 잡아줘야지, 생각만 했다.


연 이틀 매트 커버를 갈고 이불과 얇은 패드를 겨울용으로 바꿨다. 아들 방과 딸 방을 모두 바꾸니 온통 들쑤셔 내놓은 빨랫감이 이삿짐 같이 쌓였다. 세탁기 용량이 적어 몇 번에 나눠 돌리니 이틀간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보다는 소란이 나쁘지 않았다. 빨래를 건조할 수 있는 공간도 제한적이라 실내 여기저기 젖은 커버와 패드를 걸쳐두었는 데 하필 날씨도 우중충. 연일 떨어지는 빗방울과 안팎으로 습한 공기가 쓸쓸한 분위기만 짙게 만들었다.




오늘은 모처럼 스웨터를 입었다. 보송보송한 실이 몸을 감싸며 후끈한 기운이 목을 타고 얼굴까지 달아오르는 느낌은 갱년기 증상과 더해져 최근 몇 년간 몸이 스웨터를 견디기 어려웠더랬다. 그런저런 이유로 스웨터 종류는 기피했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되는 날씨인지, 그래도 되는 몸인지 오늘은 감싸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도 반팔 면티 위에 긴팔 면티를 덧입어 쌀쌀한 느낌을 덜었다. 긴팔 티가 기모 안감으로 된 것밖에 없었다는 것이 함정이긴 했지만. 나갈 때는 적당히 괜찮았는데 들어올 때는 땀이 촉촉하게 배어 체감 온도의 차가 컸다. 아쉬운 대로 몸까지 부하게 하는 그것들을 한 열흘 내리 입고 다녔다. 소매를 걷어 올릴 때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후회를 하면서.


내친김에 앞으로 입을 스웨터 종류를 모두 꺼냈다. 놀랍게도 앞으로 몇 년은 옷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많았다. 올해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는데도, 내내 버리기에만 열중했는데도 집안의 서랍은 여전히 꽉 찼고 행거는 빈 틈이 없었다. 그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 비운 것은 맞는지. 앞으로 이 옷들이 해지기 전까지 계속 입을 수 있도록 몸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 나의 숙제인가 싶어 지레 피곤해졌다.    


옷을 입다 보면 늘 입는 옷만 계속 찾는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이 있어도 새것보다는 입던 그 옷을 입어야 몸과 옷이 똑 떨어지게 적당한 느낌이 든다. 오늘의 옷도 자세히 보니 보폴도 많고 해질 듯 말 듯한 곳도 여러 곳 보였다. 옷 상태를 보며 그만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끔하게 수선할 방법을 생각했다. 역시 비움은 외면받는 것부터 하는 것이 정답이었던가.




침구를 갈고 빨래를 하고 새 옷을 꺼내고 하는 모든 일들로 느슨한 일상을 뒤엎고 싶었다. 몸을 바쁘게 해서 하나만 생각하도록 하는 고전적이고 단순한 방법, 그런데 마음이 환기되지 않았다. 지겨워서, 마지못해서, 숙제처럼 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는데, 뿌듯함이 마음을 지배하지 않았다. 상쾌하다는 느낌도 크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마음 한 구석이 찌부러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20대가 나오는 웹툰을 봤다. 생활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싫은 소리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이유 없는 질시와 차별과 모멸을 견디며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일상에 지친 사람. 말도 안 되는 남자와의 연애의 실패는 주인공의 필수 조건. 모든 것으로부터 지쳤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정리하고 짐을 단출하게 꾸리고 가진 돈으로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2년 한정 일탈을 시작한다.


새로운 곳에서 정착한 그녀는 가장 싼 방을 구하고 하루 만 원으로 만족하는 삶을 시작한다. 일주일 낮밤을 좋아하는 영화와 맥주만으로 즐기고, 하루 종일 서점에 머무르고, 목적 없이 먼 데까지 종일 걷다가 돌아오고, 걷다가 바다가 보이면 바닷물에 풍덩 빠지고. 여름엔 슬리퍼 하나로, 겨울엔 두꺼운 패딩 하나로 버티는 모습이 만화가 아닌 실재하는 인물의 삶처럼 다가왔다.


뭔가 하고 봤다가 이런 삶도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60대의 몸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것이 60대의 마음은 이해가 됐다. 현실이라면 위험천만하다고 걱정하며 뜯어말릴 것이 분명했을 일탈을 어느새 긍정하고 응원했다. 몇 안 되는 친구도 끊고 상투적인 인간 관계도 끊고 자신을 속박하는 휴대폰도 끊고 오롯이 마음에 집중하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땀이 차오르는 느낌,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옷의 택,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브라의 끈, 정수리를 압박하는 질끈 묶은 머리의 무게감, 마른 얼굴을 때리는 바람, 콧등에 가해지는 안경의 무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큰 사건보다는 자잘한 것들이 은근히 신경을 괴롭힌다. 마음을 흔들고 주의를 흩트리는 것은 언제나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오늘의 나태와 우울이 작은 거슬림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뭔가 엄청난 이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다. 신경 쓰이는 작은 것들을 털어버리고, 20대 그녀의 무모한 도전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조금 멀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가을. 다음 주쯤이면 날짜도 적당할 것 같고. 가을바람에 마음을 맡기면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갈지도 모르. 빨간 단풍을 만나면 찌부러진 마음이 조금은 펴질 것 같기도 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