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책을 반납할 것이 있어서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 검색대에서 다음에 독서토론 진행할 책을 검색하고 대출 버튼을 누르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다음날 아침이었다.
독서토론 진행하는 모임 톡방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속보 소식을 누군가 올려 바로 알 수 있었다. 뉴스를 클릭하고 내용도 없는 기사 제목을 읽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막말로 내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이유도 근거도 없는 두근거림이 당황스러웠다. 천천히 상황을 돌아봤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간 무수히 거론되었던 작가가 아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었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연암 박지원이나 서포 김만중 같은 천재작가와 동시대를 사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닐까.
검색대에 앉은 옆자리의 아저씨도 수상 소식을 듣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자 했던 것 같다. 적어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 보니 신기하게도 도서관에 비치된 작가의 책은 모두 대출 중이었다. 지역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34개, 대강 계산해도 작가의 책이 적어도 200여 권은 넘게 비치가 되어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일을 말이 되게 만드는 것이 노벨문학상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사건을 마주하는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수상했을 때도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 상의 가치를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이미 읽은 책이었고, 문장은 난해하면서도 줄거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고 읽는 내내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작가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어 교사로서 체면치레는 했다는 생각에.
당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약간의 얼개와 감상을 소개했던 것 같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라는 사실과 그 위상에 대해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바를 소개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연한 뿌듯함을 공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로 조용히 한강 작가의 출간 도서를 검색하고 모두 주문했다.
한강 작가 말고도 좋아하는 작가가 여럿 있다. 김애란 작가도 좋아하고 요즘은 천선란 작가도 좋아한다. 조지 오웰의 글도 좋아하고 글쓰기와 관련해서 은유 작가와 정희진 작가의 글도 온통 귀하게 생각한다. 가벼운 글은 가벼워서 좋고 무거운 글은 무거운 대로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책에 관한 한 개성이나 고집이 없는 나는 작가마다 갖는 독특한 분위기와 문체를 호불호 없이 즐기는 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다음 날, 오래전 사놓고 마이너스를 기록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주식이 갑자기 급등했다고 알람이 왔다. 이틀 정도 올랐지만 내 수익은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삼거래일을 넘어가며 주가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또 1년쯤 더 묵혀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그래도 가능성을 봤으니 서운하거나 속상하지는 않았다. 내년 이맘때를 다시 기약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다른 작가가 더 큰 놀라움을 안겨주어 다시 주가를 들썩이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고.
대한민국이 들썩들썩 책과 함께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중이다. 유튜브에서는 한강 작가 관련된 콘텐츠만 수백 개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개중에 기꺼이 기뻐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그놈의 이념 때문이다. 사고가 비틀린 사람들에게는 몽둥이가 특효약이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관심이 바람직한 처방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눈감고 외면하지 않는 것은 지식인의 책무이다. 특히 작가는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는 모두가 침묵할 때 글을 썼다. 많은 우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의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의 구속과 재판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문학적 성과와 명예와 목숨을 걸었다. 결과적으로 이 글로 인해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집은 경매에 붙여지고 재판에 시달리고 징역형과 벌금이 선고되고 명예훼손 소송에 시달리며 결국엔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
훗날 드레퓌스 사건은 졸라의 노력과 드레퓌스 파의 힘겨운 싸움으로 무죄가 밝혀지지만 가톨릭 교회와 군부는 끝까지 졸라를 괴롭혔다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은 세계의 유대인들의 연합을 이끌어 이스라엘 국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2024년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면 선이 선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언론과의 기자회견을 갖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딸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며 기자회견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드레퓌스 사건을 겪으며 졸라가 한탄했다는 말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진실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늪지대를 지나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현실을 봐도 오늘이 암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진실을 향해 암흑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벗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역사는 기어이 전진하고 진실도 전진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암흑의 순간이든 수렁의 순간이든 그 중심에 쓰고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