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얼마 전 김제동 씨의 강연 내용을 짧은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내용인 즉, '사촌이 땅을 사면 ( )다'라는 질문에 한 초등학생의 답변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궁금한 얼굴로 보는 관객을 향해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정답은 '사촌이 땅을 사면 가서 본다'였다. 이 얼마나 멋진 참여 정신이냐고 했다. 땅을 산 자리가 어디냐, 합법적이냐, 얼마나 샀냐, 가서 보고 배가 아플지 말지 판단해 본다는 답변이라고.
어떤 질투도 미움도 없는 아이다운 답변 '우와!'도 아름다운 동화처럼 평화롭고 완벽했지만, 강연자의 해석을 거친 그 아이의 답변은 무엇보다 요즘 아이들 다운 참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보며 관객과 함께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며칠 전 가족 모임이 있었다. 갑자기 결정된 가족모임은 작은 시누이 내외의 한국 방문 때문이었다. 약속된 당일 차 안에서 남편은 모임의 또 다른 이유를 알려주었다. 바로 조카들의 취업 축하 자리라고.
큰 시누이의 두 아이는 우리 아이들과 한두 살 차이가 날 정도로 어릴 때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우리 아들과 같은 학년이 되겠다고 조카는 초등학교 취학을 1년을 미룰 정도였는데,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만남이 뜸해지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과는 상관없이 모임 때마다 아이들 안부며 자잘한 일들을 가감 없이 말할 정도로 아이들에 관한 한 네 문제 내 문제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진작 그랬겠지만, 부모들이 적당히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 것은 대학 입시를 거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교 진학이 부모의 자랑과 자부심이 된다는 사실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며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한쪽이 자부심이 넘치면 다른 한쪽은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다, 자존심이 아니라 은근히 비교당해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상했다.
여하튼 시누이의 두 아이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곳에 취직했다. S전자와 한국은행. 요즘 같은 세상에 그 어려운 취업을 당당히 해낸 것이었다. 연이어 들려오는 합격소식에 남편은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고 했다. 물론 두 아이도 취업을 위한 노력과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른 중반의 취업이었으니.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했다. 시누이도 집안 문제로 마음고생을 모질게 했으니 자식들 문제에서나마 한시름 덜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아이들을 떠올리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밥 먹는 내내 굳은 표정을 풀어 보려고 애썼지만 자연스럽지 않다고 스스로도 느꼈다.
김제동 씨가 말한 초등학생의 답변에 대한 해석대로라면, 조카들의 취업은 땅을 산 자리도, 합법의 여부도 따질 것 없이 명확했다. 그저 배 아플 일만 남은 것이었다. 그런데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머리는 텅 빈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무언가 꽉 막힌 듯 답답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밖에 나와야 했다. 이건 그들을 향한 질투가 아니라 내 자식들을 향한 마음 때문이었다.
조현정이 쓴 <멋진 프로를 꿈꾸는 너에게>는 운동선수·연예인·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십 대를 위한
진짜 ‘프로’가 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른바 청소년을 위한 실용 교양서다.
책에는 직업인으로서 소속사와 계약할 때 유의할 점, 괜찮은 매니지먼트사인지 확인하는 요령과 같은 현실적이고 유용한 정보는 물론 슬럼프 극복하는 법, 인간관계, 재정 관리 운영 등 프로로서 롱런하기 위한 심리, 관계, 경제 관리 노하우가 소상하게 담겨 있다. 또한 김연아, 유재석, 오타니 쇼헤이, 방탄소년단 등 다양한 스타들의 생생한 사례를 함께 제시하여 청소년 독자들이 더욱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최근 청소년 장래희망조사 결과에 운동선수, 가수, 배우, 콘텐츠크리에이터 등 문화 예술, 스포츠 관련 직업군이 43.2%로 압도적 1위라고 한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응원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 방향은 엄청난 경쟁을 통해 상대적인 격차가 시시때때로 매겨지는 긴장도 높은 생활이라는 점에서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책에서 소개하는 유명 선수들의 성공 이야기는 그런 모든 상황을 극복한 소수의 결과라서 심상치 않다.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도, BTS가 팬들과 소통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실행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다.
프로는 때때로 실패를 겪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 자기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심인 사람이죠. 지금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p.186)
책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성공을 쟁취한 인물들이다.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성공의 성패를 판단하는 방식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로 측정되곤 한다. 그러니 소개된 인물들과 작가의 위로는 보통의 사람들의 삶과는 상당히 큰 괴리가 있어 보였다.
가족들을 만나고 온 이후로 마음이 아프고 속이 쓰린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모의 때늦은 걱정이나 조언은 아이들의 성공이나 방향성에 이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돌파구를 찾을 것이고 스스로 나름의 성공 공식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 분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 부부는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고 며칠 속을 끓였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성공'이 어느 만큼의 크기로 측량할 수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건강하면 됐지, 소박한 행복도 괜찮고... 이런 말로 위로를 삼는다. 시간이 지나니 이성의 버튼이 작동하는 것인지, 또는 감정의 흐름이 수용과 극복의 단계로 접어드는 건가 싶고.
10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추위가 상기될 정도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하필 겨울여행, 하필 러시아. 단단히 몸을 감싸고 나갔지만 눈으로 들어오는 냉기는 속수무책이었다. 놀랍도록 새로운 풍경은 반가웠지만 추위는 눈에 가득 담을 수 없도록 여정을 맹렬하게 방해했다. 여행의 기쁨이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연일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밖으로 나가니 정신이 없다. 완벽하게 방비하지 못한 몸 구석구석을 냉기가 파고든다.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정신 차리라고 뺨을 세게 후려치는 것 같다. 눈물이 흐르고 콧물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