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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길

by 바람



새벽 5시 30분. 내장산을 향해 출발했다. 주말 새벽의 고속도로는 조용하고 빨랐다. 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모두의 목적지가 같은 것처럼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행렬이 나란해서 주말의 느낌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언제나처럼 예고 없는 출발이었다. 옆에서 일어나는 기척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는데 남편은 이미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캄캄한 방,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거슬리면서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짓궂은 표정으로 나가자고 입모양으로 뻥긋했고 홀리듯 따라 일어섰다. 얼굴에 찬 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일련의 행동들이 습관적으로 이어졌다.


내장산 첫 방문은 10년 전쯤, 그날도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출발이었다. 정체 없는 고속도로가 신기하기도 했고 언제 다시 정체구간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시간에 맞춰 최대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시간에 쫓기는 것처럼 무수한 휴게소를 그냥 지나치면서 정읍에 도착해서야 아침식사를 챙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아침은 편의점에서 공수한 컵라면 등, 차 안에 간단한 식사가 차려졌다.


내장산 초입부터 펼쳐진 눈부신 빛깔의 단풍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단풍구경을 오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던 것 같다. 여느 곳에서 보았던 단풍보다도 무리 지어 뽐내는 모습이 단연 돋보였다. 압도적인 경관에 말문이 막히다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단풍을 찾아가며 즐기는 것이 나이 들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면서도 이런 풍경이라면 반드시 경험할 만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번 내장산행은 일상의 변화를 주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름다운 단풍을 찾는 것보다는 가고 싶은 곳을 언제는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것, 집이라는 틀에서 멀리 벗어나는 여유와 기대, 잠깐이지만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출발 자체가 여행이 될 수 있으며 모든 여정이 목적이 되는.


내장산 초입까지는 이전의 여정보다 훨씬 빠르고 순조로웠다. 내비게이션이 3시간 20분 걸린다고 안내했지만 길을 지날수록 시간이 늘어나는 정체가 이번에는 없었다. 사실 목적지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눈으로 마음으로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새벽어둠을 가르고 달리는 차에서 보는 일출의 장관,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의 색감, 밀려드는 아침의 고요, 산길을 지날 때마다 연무와 구름이 어우러지며 조화를 부리는 모습과 그 풍경에 마침 어울리게 줄지어 나는 새들의 행렬, 그리고 간간이 나타나는 00호라는 안내 표지판들. 내륙에 호수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처럼 신기했다.


기대는 경험의 절대치와 통한다는 말은 함정이 있다. 언제나 기대했다가 막상 속성이 파악되는 순간 기대감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이번에는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때 최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로 벅찬 감동을 만끽하지 못했고, 허상의 기대를 품고 달려왔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풍경에 실망했던 일도 이미 있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어떤 모습이든 가을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한다. 예술품처럼 집약된 실체가 아니어서, 고정된 현상이 아니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각은 자연이 주는 감흥을 한 곳에 오래 묶어두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 그런 이유로 오래 보거나 자세히 보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되거나 통째로 소거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첫 느낌은 다른 첫 느낌으로 지워지고 늘 새로운 인상을 맞이하기 바쁘다. 그렇게 해서 자연이 안내하는 새로운 세계로 깊게 빠질 기회를 잃고 만다. 그렇기에 여러 번 방문해서 새로운 몰입의 기회를, 자세히 보는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 언제나 필요하지 싶다.


세 번째 내장산 방문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감흥이 남달랐던 것 같다. 백양사 경내의 단풍나무를 앞에 두고 마치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사람처럼 펜과 종이를 꺼내 스케치를 했다. 가지의 휘어짐이, 빛이 만들어내는 단풍의 명암이, 잔가지가 흔들림에 따라 잎의 매끈한 곡선이 눈에 들어오며 그 단풍나무가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어우러진 멋진 나무로 보였다. 그저 가지 끝 단풍의 색에 집착하고 불긋불긋한 색으로만 눈이 쏠리며 이리저리 최적의 포토 스폿을 찾아 헤맸던 이전의 방문과 비교하면 이번은 목적도 태도도 달라진 느낌이었다.


와중에 불상을 향해 오래 기도하는 이에게 눈길이 갔다. 그의 염원을 따라 오래 침묵하며 그의 절실한 바람을 따라가 보았다. 그 바람이 무엇이든 이루어지길 함께 기원하며 오랜 기도의 시간 동안 침묵했다. 한 곳에서 느긋이 바라보는 여유가 새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10년의 시간 동안 세 번의 방문. 두 번째 방문은 절정의 때를 지나친 것이 아쉬워 급하게 결정한 것이었다. 유난히 힘든 계절을 보냈고 어디든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근심을 잊고, 짧지만 굵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맞을 수 있으면 하는 애꿎은 효율까지 따지며 떠난 길.


내려가는 길에서도 여행은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일부러 마음을 들뜨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해의 단풍은 가뭄 때문에 잎이 말라 물들기 전에 잎이 다 떨어져 버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단풍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단연 최고라는 내장산은 위로가 되겠지 하는 기대를 조금은 품었다.


단풍이 별로라는 소문이 나서인지, 그나마도 절정의 때가 지난 탓인지 인적이 드물어서 오히려 좋았다. 산의 초입까지 운행하는, 첫 방문에서 오래 기다려서 탑승했던 셔틀버스는 타지 않았다. 차길이 아닌 사잇길이 너무 예뻤고 바닥을 보이지만 졸졸 흐르는 계곡의 정취 때문에 자주 발을 멈췄다. 화려한 빛이 없으니 오히려 다른 곳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의 효과 대신에 청각이나 발에 닿는 감각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고. 산은 우리를 넉넉하게 품었다.



문득 지난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생각해 보면 멀리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티켓을 예매하고 짐을 꾸리는 것 모두가 여행이며 설렘이었다.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오고 가는 560km의 길에서도 여행의 설렘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감동의 포인트를 분석하고 얘기하는 것은 여행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어리석음은 아니었을까.


세 번의 내장산 여행은 모두 다른 느낌이었다. 또한 단풍으로 인해, 단풍과는 상관없이 좋았다.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다고 말한다. 여행이 행복하려면 가벼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맨몸으로 떠난 가벼운 여행의 설렘이 감동이 되고 진한 여운이 되도록 앞으로도 하루치의 여정은 반가울 것 같다.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 기대를 품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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