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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Jul 04. 2023

'경력 단절', 그 단어가 체감되던 순간

쪼하의 커리어 이야기

경력 단절. 2세 계획을 염두에 뒀던 여성으로서 결혼 전부터 계속 고민해 온 문제였다. 언론사에 다니는 사람들, 특히 기자는 커리어와 육아 병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첫 직장만 해도 요즘이야 좀 나아진 듯하지만 내가 신입이던 시절에는 임신하면 죄인이 되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지면을 매일매일 채워야 하는데 기자 한 명이 제대로 취재를 못 하면 다른 기자들이 그만큼 더 힘들게 취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이면 쉬러 가는 거 아니냐? 부럽다."라는 말을 뱉는 남자 선배들도 존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선배는 3개월 만에 복직했으며 다른 선배는 임신 초기에도 무리해서 취재를 하다가 유산이 될 뻔하기도 했다.


이는 내가 첫 번째로 대책 없이 퇴사를 한 이유였다. 당시 정부 부처 취재를 담당하던 중이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공무원들은 어느 정도 육아를 위한 배려를 받았다. 일단 모든 정부 시설에는 어린이 집이 있으며, 육아 휴직을 한 기간도 연차로 인정해 줬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다니던 사람들은 육아휴직 중간에 승진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결심했다. 공무원이 되기로!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나이 서른 먹고 하는 공부는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기자의 길로 돌아갔다. 2021년은 다시 기자가 된 것을 누가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꽤나 잘 풀리는 해였다. 여러 단독 보도를 썼고 그 보도를 바탕으로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에도 출연하는 등 그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성과들을 냈다. 그렇게 잠시 '기자 뽕'에 취하는 듯했다. 여전히 치명적인 단점은 남아 있었다. 특종을 찾는 기자로 있기 위해선 워라밸을 희생하고 술도 어느 정도는 가까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남편 될 사람과 얘기를 많이 했다. 둘이 내린 결론은 '2세를 생각하는 한, 기자라는 직업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였다. 물론 내 주위에 육아와 커리어 둘 다 쟁취하는 여자 기자들도 많았다. 나는 그럴 자신은 없었다. 건강이 그것을 뒷받침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결혼 후의 내 미션은 커리어를 전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회사에 연구원으로 들어가면서 일이 순조롭게 풀리나 싶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윗선에서 "다시 기자로 전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대책 없는 두 번째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 만에 새 생명이 찾아왔다.   


'대책 없는 퇴사'라고 쓰기야 했지만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퇴사 후 최대한 빠른 이직을 위해 업계 사람들과 자주 만났고, 아는 사람을 통해 몇몇 업체에 포트폴리오를 넣기도 했다. 운 좋게 한 곳의 면접이 잡혔을 무렵 이미 임신한 지 한 달이 지나 있었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기자에서 연구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꽤 열심히 어필했고 나름 면접관이 원하는 대답을 착착 내놓았다. 그동안 사이드 프로젝트에 들였던 시간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한 시간가량의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이 "이제 본격적인 인사 프로세스를 밟아보자"라고 말했다. 잠깐 망설이던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제가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면접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임신이 됐어요." 면접관은 '축하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경력 단절의 무서움이 하루하루 체감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동안 경력 단절을 우습게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왔으니 절대 경력 단절은 겪지 않을 거라고. 여차하면 예전에 따놓은 직업상담사 자격증으로 취직하면 되겠지, 하고 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막상 경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직업상담사를 알아봐야지'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놓은 업계에서의 네트워크, 간신히 올려놓은 연봉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없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애는 엄마가 봐야지, 엄마가 직장 나가면 애 불쌍해서 어떡해."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애 어느 정도 키워놓으면 다시 취직할 수 있지 않아?"

이 모든 말들이 내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만삭 때나 몸이 힘들 것이란 내 생각과 달리 임신 초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입덧에 시달렸으며 갑상선 기능 항진증도 겹쳤다. 하루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오면 이틀은 내내 누워 있어야만 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줄었다. 비린내 때문에 생선을 한 번도 먹지 않았으며, 삼겹살과 치킨, 곱창 등은 먹고 나니 장염이 도지는 바람에 저절로 멀리하게 됐다. 남들은 임신하면 뭐가 자꾸 먹고 싶다던데, 나는 뭐가 자꾸 먹기 싫어졌다. (이건 임신 4개월 차에 들어선 지금도 그렇다.) 집에 누워만 있으니 스스로가 생산성이 없고 도태된 사람인 것만 같아 자주 울기도 했다. 이대로 계속 건강이 좋지 않다면 나중에 일은 할 수 있을까?


경력 단절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었다. 임신 전에는 퇴근하고 방송 준비, 기고 마감, 브런치 연재, 트위터 운영 등등 하루에 10가지를 해도 늘 부족한 기분이었다. 그 생각을 임신 후에도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당연히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임신 초기에도 업비트 투자자 보호센터 외고, 블록체인 콘퍼런스(비들 아시아) 앰배서더, 스터디 운영, DAO 활동 등 당장 돈은 되지 않지만 커리어를 유지할 만한 최소한의 활동은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런 활동들을 소화하면서 다른 활동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내 몸이 무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하루에 하나만 해내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런치, 블로그 등 마감이 정해져 있지 않은 활동들은 쳐냈다. 그러고 나니 무력감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내 임신 사실을 감안해 준 회사에서 기자가 아닌 다른 직무로 일하는 중이다. 안정기에 들어서며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고 무력감을 이겨냈을 무렵 그동안 내 브런치 글을 좋게 봐왔던 곳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이로써 경력 단절의 공포에서 잠깐은 벗어난 상태다. 하지만 내 능력이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은 ‘M자형’ 그래프를 보였다. 25~29세 70.9%이던 한국의 여성 고용률이 35~39세가 되면 57.5%까지 13.4% P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난주 통계청 위원이 지역별 고용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여성의 경력 단절 기간은 9.1년이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들의 월평균 임금은 228만 7000원으로 일을 멈추지 않은 여성들(305만 3000원) 보다 훨씬 낮았다. 재취업한 여성들의 직종은 서비스 종사자, 판매 종사자, 단순 노무자가 주를 이뤘으며, 5인 미만 사업체에 취직한 비중이 높았다. (출처=경향신문)


만약 내가 계속 언론사에만 있었다면,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나름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몇 년 후의 나는 '57.5%'에 들어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물론 경력 단절의 공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애를 낳은 후의 내가 과연 육아와 일 둘 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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