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하의 커리어 이야기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꼭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일경제TV <코인레이더> 고정패널, 내외경제TV <블록체인 B뉴스> 전문가 패널 등 방송 출연이나 외부 기고, 강연 등으로 부수입을 얻었으며 당장에 돈이 되지 않더라도 트위터와 브런치에서 내 커리어에 관련된 지식을 공유했다.
사람들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자기 계발 또는 포트폴리오 확장, 부수입 창출 등등... 내 주요 목표는 자기 계발 또는 포트폴리오 확장이었다. 만약 부수입 창출을 원했다면 네이버 블로그에 일상 콘텐츠를 올리거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게 더 빨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런치, 티스토리, 블로그 등을 비교해 본 결과, 눈앞에 수익이 보이는 측면에선 블로그가 가장 매력적이다.)
잠시나마 네이버 블로그를 해보니 깨달았다. 구글 애드센스를 통한 광고비 수익이나 맛집/운동/화장품 협찬 등이 내게는 그다지 좋은 유인책이 되지 않았다. 목적의식이 약한 것에 비해 블로그 콘텐츠를 올리는 데 품이 많이 들다 보니 결국 블로그를 당분간 쉬게 됐다.
그렇다면 돈이 되지 않는 브런치/트위터 운영은 내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줬을까?
우선 브런치에 연재한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를 통해 몇몇 제안이 들어왔다. '상식의 시대'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 채널 역사상 처음으로 가상자산과 DAO를 소개했으며 '블록체인법학회'의 DAO 관련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DAO 관련 책을 공동 저술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다른 언론사에 계시는 분이 내 정체를 모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하신 다소 우스운 경험도 있었다.
트위터는 웹3 업계에서 네트워킹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최근에 업계 사람들 모임 자리에 가면 '트위터 보고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기자라는 명함을 내밀 때보다 트위터 아이디를 보여주는 편이 업계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기에 좋았다. (아무래도 일하는 입장에서 기자는 경계할 만한 존재기는 하다. 언제 어떻게 내 말이 기사에 간접적으로 인용될지도 모르니!) 트위터 메시지 기능을 활용해 그동안 트위터에서만 알고 지내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업계의 C레벨 이상의 분들과 만나서 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그들이 내 콘텐츠 중 높게 평가한 것은 기사가 아니었다. 브런치 글, 트위터 스레드, 방송 등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일반 기자들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까지 깊게 파고드는 것을 좋게 봤다. 브런치 글에서도 썼던 코스모스 81~83번 제안 분석, 메이커다오 '엔드게임' 제안 분석 글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 내용도 기사로 쓰면 안 되냐고. 하지만 언론사는 대중을 주요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그들이 원하는 건 가상자산 거래소 관련 이슈다. 특히 기자는 사건을 쫓는다. 그렇기에 가상자산/블록체인을 담당하는 기자들 거의 모두가 가상자산 거래소나 사고 터진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언론사 재직 시절, 거래소 중심으로 취재할 것을 요구받았다.
결국 내게 사이드 프로젝트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실제로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디지털애셋>으로 이동할 때 '연구원'이라는 직무로 옮기기 위해 대표에게 트위터와 브런치 글을 보여주며 대표를 설득한 바 있다. 또한, 최근 한 리서치센터 면접을 앞두고 "기자들은 지식이 얕다"는 말을 듣고 포트폴리오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넣으며 그 단점을 보강하고자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사이드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알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을 '본업에 진정성이 없다'라고 함부로 평가했으며 본업에서 성과를 내는 데 모든 시간을 기울였다. 실패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 회사를 나온 나는 기자도, 뭣도 아니었다. 내가 쓴 기사는 내 것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물일 뿐이었다. '모 매체 기자'라는 타이틀을 뗀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디지털애셋>을 나온 후에도 브런치, 트위터에 쓴 글들은 오로지 내 것이던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 경험을 통해 '회사에서만 쌓은 커리어는 온전히 내 것이 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늘 곱씹는다. 물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란 쉽지 않다. 남들이 퇴근 후나 주말에 쉴 때 노트북을 켜야 한다. 그렇기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즐거워야 하며 동시에 그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한다는 성취감도 얻어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미쳐야 미치는 것(不狂不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