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블록체인 프로젝트 '코스모스(Cosmos)'를 두고 커뮤니티가 쪼개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최근 코스모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진영(ICF, Inter-Chain Foundation)이 내놓은 제안이 토큰을 이미 보유한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우선 코스모스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코스모스는 여러 블록체인이 서로 연결되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코스모스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만 있으면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쓰든 상관없이 코스모스 생태계에 입성할 수 있다. 마치 요리 초보라도 밀 키트로 손쉽게 한 끼 식사를 차릴 수 있듯이 말이다.
이더리움에서 댑(DApp, 블록체인 위에서 구동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선 다소 생소한 '솔리디티(Solidity)'를 배워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코스모스는 크게 '허브(Hub)'와 '존(Zone)'으로 구성된다. 코스모스 SDK를 활용해 코스모스 생태계에 입성한 블록체인을 '존'이라고 하며 이들을 함께 연결하는 중심축을 '허브'라고 한다. 이들은 '인터 블록체인 커뮤니케이션(IBC)'이라는 고유의 통신 프로토콜을 활용해 서로 소통한다.
비유하자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 하나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것처럼 주노, 오스모시스, 테라, 스타게이즈, 에브모스 등은 하나의 블록체인이면서 동시에 코스모스 생태계의 네트워크다.
코스모스는 거대한 DAO처럼 작동한다. 코스모스가 내린 의사결정은 코스모스를 넘어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여러 블록체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코스모스의 검증인(Validator, 밸리데이터; 새로 생성된 블록에 위변조 내역이 없는지 검증하는 역할)은 거버넌스 토큰인 'ATOM'으로 주요 안건에 투표한다. 검증인은 다른 보유자로부터 ATOM을 위임받아 투표권을 대신 행사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모든 안건에 일일이 투표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이를 간접 민주주의 형태로 대신한 것이다.
커뮤니티가 강점이던 코스모스는 왜 최근의 논란에 휩싸인 걸까? 코스모스 2.0 진행 과정에서 나온 82번 제안이 그 원인이었다. ICF가 제시한 82번 제안은 'ATOM을 추가 발행하고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코스모스 생태계 내 인센티브 강화'를 골자로 한다. 코스모스에 진입하려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ATOM을 코스모스에 스테이킹(지분증명(PoS) 기반 네트워크에 토큰을 락업시키고 이자를 받는 행위)한 투자자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인센티브를 강화해 생태계를 활성화시킨다면 추후 ATOM 가격이 오를 여지는 있다. 실제로 ATOM은 올해 1월 약 45달러에서 11월 19일 기준 9.94달러로 떨어졌다. 가격 상승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 제안을 두고 기존 ATOM 보유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ATOM을 추가 발행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미 ATOM의 인플레이션율이 13.20%인 상황에서 ATOM 공급량을 늘린다면 당장 ATOM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존 보유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코스모스 창업자 vs 현재 주도 세력'이라는 신구 대결 구도도 펼쳐졌다. 코스모스 창업자 재 권(Jae Kwon)이 82번 제안을 견제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제안 통과 기준을 50% -> 66% 이상(3분의 2)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낸 것이다.
게다가 82번 제안의 어셈블리(Assembly)-카운슬(Council)이라는 거버넌스 구조로 인해 어셈블리나 카운슬에 속하지 않은 ATOM 보유자의 권한이 축소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카운슬은 ATOM 보유자를 대신해 제안을 올리고 다른 카운슬을 감시한다. 어셈블리는 카운슬의 대표자들로 구성되며 카운슬에게 예산 및 자원을 분배한다. 어찌 보면 미국의 양원 체제와 유사하다. 카운슬이 미국의 하원처럼 국민(구성원)을 직접 대신한다면 어셈블리는 상원처럼 주요 결정권을 행사한다.
결국 82번 제안은 '제안 무효화(No with Veto)'가 33.4%를 넘기며 의미가 없어졌다.
82번 제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이렇듯 여러 의견이 오고 가는 것은 건강한 조직'이라는 의견과 '트위터에서 의견이 오가는 모습이 무정부주의 상태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이 존재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현상은 좀 더 후자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시기 메이커다오에서도 조직을 통째로 바꿀 만한 제안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발도 강했지만 "이 제안이 통과되면 커뮤니티가 쪼개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메이커다오와 코스모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창업자의 입지인 듯하다. 메이커다오의 공동 설립자 루네크리슨텐슨은 설립 이후 영향력 있는 제안을 계속 제시해왔고 그 제안은 대부분 통과됐다. (RWA 담보 제안 등등..) 재 권은 창업자이지만 다른 블록체인의 창업자(ex. 비탈릭 부테린)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2020년 "코스모스에 관심 없고 본인의 다른 프로젝트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텐더민트 코어 대표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렇게 재 권을 비판한 재키 매니언(제안 82번 제안자 중 한 명)과 ICF가 코스모스의 핸들을 쥐고 있다.
영리적 DAO는 일반 법인처럼 이익을 내야 한다. 메이커다오와 코스모스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도 장기적으로는 의결권이자 DAO에 참여한 보수인 거버넌스 토큰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다. (메이커다오는 스테이블코인 DAI의 안정성도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메이커다오처럼 창업자가 끌고 가는 문화가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메이커다오는 '루네 크리스텐슨의 독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메이커다오는 '더 탈중앙화된 DAO'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안은 루네 크리스텐슨이 내고 있어서다.
가상자산 업계에서 창업자의 카리스마만을 내세우다가 망가진 프로젝트들도 존재한다. 바로 테라(권도형)와 FTX(샘 뱅크먼 프리드)다.
이들이 몰락한 이후 "창업자가 불통이었다", "모든 게 창업자의 독단으로 결정됐다"라는 폭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의사결정이 빨리 진행되기에 테라와 FTX 모두 단기간에 성장했지만 결국 도덕적 해이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와 달리 코스모스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표방하는 대신 "프로젝트를 강하게 이끌 지도자가 없다"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82번 제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무정부주의식이었다는 비판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ATOM 가격이 2022년 1월 이후 내내 하락세인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시장 전반이 침체기인 걸 감안하더라도 2021년 상승장 때도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괄목할 만한 상승세를 보이진 못했다.
성장과 건전한 거버넌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선 어떤 조직 문화가 필요할까? 최근 가상자산 업계에서 일어난 일들이 조직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