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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pr 27. 2024

금주의 이유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다. 오후 열한 시에 함께 점심을 먹기로 약속하고 조금 일찍 열 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운전을 하지 않는 지인을 위해 차를 몰고 집 앞으로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다. 기왕 운행을 시작한 거 오는 길에 한 명 더 태우고 왔다. 나머지 한 명은 약속 장소와 가까운 곳에 살아서 걸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오전 열한 시 네 명이 모였다.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떨었다. 수다는 끝날 줄 모르는데 수학 공부방을 운영하는 지인이 주말 보충 수업 약속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셋은 그의 부재가 너무도 아쉬웠다.      

 결국 우리는 보충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모임을 재개하기로 했다. 일터이자 집인 아파트 입구에 그녀를 내려놓고 나머지 셋은 시간을 보낼 겸, 단골 서점으로 향했다. 

 셋은 서점에서, 한 명은 일터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모였다. 그렇게 네 명을 차에 태우고 ‘가볍게 한 잔’ 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세련된 분위기의 선술집이었다. 평소 그런 장소를 찾을 일이 없는 데다 저녁 외출이 오랜만이라 모두가 유쾌한 분위기였다. 


 오전의 만남부터 합치면 4차를 마치고도 아쉬움이 남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근처의 술집을 찾았다. 한쪽 벽면이 LP판으로 가득하고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할 수 있는 음악 감상을 콘셉트로 잡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노래를 여러 곡 신청하며 맥주를 마셨다. 나를 포함하여 평소 술을 마시는 일이 없는 넷은 적당히 취했고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막걸리에 맥주까지 더해지니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술집이었으나 가게를 나가 건물의 입구까지 꽤 걸어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해서 불편했다. 겨우 맥주 두 잔을 먹는 동안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야 했는지 모른다.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는데 신호가 왔고, 매번 다리를 떨다가 결국 화장실로 향했다.

 예전엔 술을 마시며 화장실에 이렇게나 자주 가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럽게 나이 탓을 하게 되었다. 이젠 맥주를 마시는 것도 꽤나 불편한 일이 되었구나.     

 볼 일을 마친 후,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향하는데 얄궂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정면에 커다란 거울이 있어 거기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토요일 밤, 온갖 프랜차이즈가 집결해있는 상업지구의 특성상 거리와 식당에는 20대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자 화장실 안에도 그랬다.

 보고 싶지 않아도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친 나와 그들의 모습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나이를 절감한 순간이었다. 알코올 탓인지 발그레해진 얼굴은 평소보다 더 추레해 보였다. 눈을 질끈 감는 심정으로 거울에서 시선을 피하고 화장실을 나와야 했다.     

 동네 친구와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호프집에 간 적이 있었다. 다양한 안주와 유행하는 주류를 파는 적당히 분위기가 좋은, 역시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우리 테이블을 포함해서 그곳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남녀가 식당을 채우고 있었고 마음 편하게 시간을 즐겼던 기억이 났다. 언제부턴가 누가 눈치를 주지 않아도 주변 분위기를 가늠해보고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인지 따져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기준은 물론 ‘나이’이다.      

 지인들의 만남은 새벽 한 시가 넘어서 마무리되었다.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주제가 떠오를 정도로 아쉬움이 가득한 즐거운 만남이었다. 

 예전 같으면 술을 마시고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나 감정을 드러낸 걸 후회하고 금주를 다짐했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알코올 탓에 평소라면 하지 않던 내 얘기를 마구 털어놓고 목소리를 높인 건 여전했지만 오히려 속이 시원해져서 좋았다. 

 다만 화장실에 수시로 드나들거나 거울에 비친 외모로 나이 듦을 탄식하며 이제 술은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슬프고 짠한 금주 결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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