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월이 절반이 넘게 흘렀다. 영원히 안 올 것만 같았던 가을, 그리고 아이의 생일 케이크.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를 간절히 고대했는데 지금 그런 하루들을 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들 둘을 키우느라 목소리가 커진 엄마와 아들들 등쌀에 못 이겨 주말이면 밖으로 나가던 아빠와 집안 빼곡히 깔려있는 매트 위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개구쟁이 형제는 지난 1월 부터...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나, 아주 조금 다르고 특별한 삶을 살게 되었다.
헤노흐 쇤라인 자반성 사구체신염
큰아이의 진단명이다. 자가면역세포가 편도염 등을 계기로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바이러스가 아닌 피부 및 혈관이나 위, 장, 신장의 사구체를 공격하는 질환으로 8세 전후, 남아, 환절기에 많이 발병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큰아이는 자반이 두드러지지 않아 진단 및 처치가 늦어졌고, 그 결과 혈뇨와 단백뇨가 그야말로 쏟아져내리는 상황이었다. 재발까지 포함해 총 3차례, 2달이 조금 안되게 입원하며 치료받았지만 이미 손상된 신장의 사구체는 되돌릴 수 없었다.
입원 중 내 아이는 퉁퉁 부었고 생식기가 참외만 해졌으며 소변색은 늘 빨갛거나 검거나 아예 안 나오거나...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 좋아하던 과자나 고기는 물론이고, 과일음료, 계란 노른자, 유제품은 완전금지. 유일하게 섭취 가능한 고기류(?)인 생선조차 그 양을 엄격히 정해서 먹어야만 했다. 그것도 저염식으로.
움직임도 제한되었다. 단백뇨를 줄이기 위해선 최소한의 움직임을 제외하면 거의 누워있어야 했고, 소변이 터지기 전엔 수분 섭취도 제한이었다. 이뇨제를 통해서만 배뇨가 되던 그때는 그랬다.
혈압약,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고농도 스테로이드 용법에도 단백뇨가 줄지 않고 도리어 신독성 부작용으로 가벼운 급성신부전을 두어 차례 겪고.. 약물 부작용으로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얼굴이 붓고 털이 많아지고..
급기야 아이의 예전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꿈속에서도 아이를 찾아 헤매며 울었다.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제한된 식단으로 구성된 찬을 주며 먹을게 너무 없어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또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저 작은 몸을 어떻게든 지켜주자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눈물부터 쏟아졌다.
처음엔 검사만 받는 거라며 한없이 밝던 아이가 점점 두려워했다. 시커먼 혈뇨에 무서워하여 죽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던 게 첫 입원 때였는데.. 입퇴원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해갔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자기도 재설정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 테니 그냥 죽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또 아플 거 나을 필요 없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서 엄마를 또 만나야 하니 엄마도 같이 죽자고 했다. 8세 아이의 입에서 계속 나오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어린 둘째는 기나긴 입원기간 동안 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생일 케이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랐다. 형이 입원하기 전에 두 놈이 투닥거리며 싸웠는데 면회를 와서는 그런다. 자기가 형을 때려서 아파서 입원한 거냐고. 자기를 벌주려고 엄마도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 거냐고. 잘못했어요. 형아 앞으로 안 때릴게요. 저랑 같이 살아주세요. 엄마 형아 보고 싶어요......
남편은 계속 병원과 시댁을 오가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서울의 병원에서 아이의 치료를 받고 싶다며 울며 애원했던 내 뜻을 전적으로 따라주었다. 그리고 우직하게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우리 아이가 혹시나 단백뇨가 음전되지 않는 10%에 해당될까 봐 고통스러워하던 그 순간에도 아이의 가느다란 발을 만지며 말했다.
가을이 되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 생일쯤에는.. 다 낫지는 않더라도 훨씬 건강해져 있을 거야. 그렇게 믿자. 왠지 그럴 것 같아. 이제 겨우 2월이야.
9월의 열한 번째 날.
내 아이는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맛있는 쌀케이크를 나눠먹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신나게 온 집을 누비며 생일을 즐겼다. 전에 비해 조금 마르고 잔털이 조금 남아있지만, 그래도 언뜻 보기엔 너무너무 평범해 보이고 건강해 보였다.
오늘도 볕이 무척 좋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깊어가면서 공기는 다소 쌀쌀해졌다. 나는 조금 있다가 아이의 방과 후 수업 전에 전용 간식빵을 챙겨주러 학교에 가야 한다. 친구들과는 달리, 도시락으로 좀 더 무거울 가방도 미리 집에 가져갈 생각이다.
아직 아이는 완치되지 않았다. 늘 공복 몸무게와 소변 스틱으로 컨디션을 체크한다. 그럼에도 이 정도까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 무탈하기만 해도 왜 이리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늘 힘들고 불만스러웠던 예전에 비해 삶을 대하는 내 마음의 그릇 또한 부쩍 깊어진 기분이다. 아마 이런 기분 역시, 아이가 무탈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게다.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또 바짝 긴장해야 한다. 큰아이의 병은 감기에 무척이나 취약하다. 힘겹게 잡은 신장 수치가 작은 감기로 인해 요동칠 수 있다. 늘 조심하고 긴장하며 지내야 하지만 오늘은 지금 아이의 상태에 기뻐하며 웃는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