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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Oct 23. 2021

국제학교 교사의 대학원 도전기

더욱 이해하게 된 국제 학교 학생의 고충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 다시 진학할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가 공용 언어인 직장을 다니다 보면 무언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은 모호한 지식을 가진 나를 발견한다. "왜 아는데 말을 못 해?" 같은 질문이 내 안에서 여러 번 요동을 친다. 토익을 935점 받아도 영어로 진행되는 교사 회의는 7-80%만 알아듣는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교사의 배려 따위는 없다. 교사 연수도 마찬가지. 뭔가 아는 듯 잘 모르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못하는 신 홍길동이 되어 국제학교 교사 생활을 한지 어언 십 년이 되었다.


한마디로 답답했다. 매년 IB 커리큘럼 연수를 받아도,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교육의 트렌드 학문을 누군가 시원하게 한국어로 설명해 주었으면 했다. 한국어로 설명해도 이해가 어려울 것 같은 대목에서는 갈길을 잃는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기가 버겁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가 뻘쭘하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대학원 지원을 준비했다. 외국 대학원과 한국 대학원 두 곳에 합격을 한 후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외국 대학원은 장학금을 받아 학비가 한국에 있는 대학원보다 저렴했다. 한국 대학원은 국제 학교 교사는 장학금이 없다. 곧 2500만 원의 학비를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다.


 대학원에 가려고 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후 나는 최종적으로 한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영어를 꽤 잘한다고 믿고 근무하는 나도 모국어가 편하다. 모국어로 교육학 지식을 쌓고 싶었다. IB 교육도 모국어를 중요시하지 않나. 그러고 보면, 국제학교 아이들은 정말 대단하다. 사막에 막 던져진 심정으로 날것의 영어를 학습한다. 불확실한 앎을 안고 그 머나먼 배움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라이프 롱 러너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것 아니겠는가.




1. 교사에서 학생으로

지도 교수의 감언이설에 속아 가장 어렵다고 소문난  과목을 1학기에 선택했다. 교육공학과 교수설계.   과목을  학기에 신청하는  미친 짓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원우회 선배들에게 들었다. 교육 공학 시간에 매주 학습한 내용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고 다른 학습자들의 마인드맵을 보고 리뷰를 써야 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주는 과제와 비슷한 입장이 바뀌어  받는 기분이 들었다. 교수설계는 내가 생각했던 과목과는 너무나 달랐다. 코딩을 하는 개발자처럼 세부적으로 교수 학습을 설계하는 법을 학습해야 했다. '와이셔츠 빨래를 하는 ' 같은 교육하고  관계가 없는 주제로 세부적인 학습을 설계하다니. 대체 뭐가 맞고 틀렸는지  수가 없었다. 모국어로 배우면 뭐든지 습득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은  학기에 깨졌다.


그렇게 울면서 1학기를 보내면서 어느 순간 머릿속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지식을 정말 쌓는 느낌이 들었다. 교육공학과라고 해서 아주 특별하게 새로운 교육을 받는 건 아니었지만 트렌드 교육 이론과 고전적 교육 이론을 다시 리뷰하고 실제 교실에 적용할 점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2. 마의 1년


1년쯤 지나 고비가 왔다. 시작이 반이라면 나는 몇 퍼센트의 공부를 끝낸 것일까? 학비도 만만치 않은데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온갖 변명을 찾아 휴학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가르치기만 하고 있어도 되는데 왜 학생이 다시 되었을까? 대체 얼마나 길게 가방끈을 늘리고 싶은 걸까?



십 년 전 사회복지 대학원에 다닐 때도 똑같은 고민이 찾아왔다. 그때는 나의 변명에 속아 1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교사 자녀 특혜로 교실에 던져졌던 아이들에게 엄마의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반년을 더 열심히 하고 나서 관성의 법칙이 생기고 공부에 속도가 붙었다. 다시 학생이 되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속도가 붙도록 기다려 주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졸업은 온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지 않을 것 같이 멀게 느껴진 졸업의 날이 왔다. 학위복을 입고 교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가장 좋아하셨을 것이다. 코로나로 졸업식에 참석은 못했지만 나는 엄마와 함께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나의 아이들에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나는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직업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라이프 롱 러너(life-long learner)의 모습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습하는 삶의 선배가 되었다.


주변 친구들이 지어준 내 별명은 '가방끈 지구 한 바퀴, 평생 교육의 달인'이다.

 나는 다시 새로운 도전이 될 IB 워크숍 리더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교장선생님의 적극적 추천도 있었지만 나는 이 도전을 통해 또 무언가 학습하고 발전할 것을 믿는다. 결국 다시 영어로 리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학원에서 학습한 교과 내용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남은 자긍심은 뭐든 배우고 헤쳐나갈 단단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 주었다. 이 마음 근육은 나를 또 다른 배움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학생이 다시 되어보니 학생이 짠하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 근육은 잘 자라고 있는지 아이들과 좀 더 시간을 갖는 교사가 되어야지.이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시기에는 단단한 라이프롱 러너가 필요하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선생님으로부터 자긍심을 배웠다고 말하는 나의 제자를 만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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