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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Oct 24. 2021

딸과의 대화를 위해 인스타를

그들의 언어- SNS


Bringing you closer to the people and things you love.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들을 더욱 가까이.
Instagram.


사랑하는 나의 딸은 인스타를 한다. 비디오나 사진을 포스트 하면 친구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리고는 라이크를  개나 받았는지 전전긍긍한다. 가끔 올리는 스토리는 24시간 안에 보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어진다.


그렇다 나는 딸과 대화를 하기 위해 인스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좋아해서 엄마가 야근을 하면 엄마 옆 자리로 하교해 와서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기도 했다. 만평 가까이 되는 학교에 엄마와 단 둘이 남아 야근을 할 때에도 내 딸은 불평하지 않았다. 야무지기로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영어를 잘 못해도 영어로 대화를 거는 선생님들에게 기죽지 않았다. 이런 나의 딸과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나는 베트남으로 이사를 했다. 제주의 시골 학교에서 베트남의 국제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교사의 자녀는 시험을 보지 않고 입학이 가능하다. 8학년과 4학년으로 입학한 아이들은 그야말로 벌거벗고 찬 바람을 맞는 벌판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학교라 교사와 학생의 교류가 수월했고 아이들도 모두 친근했다. 과제를 못 알아듣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 친구들은 몇 번이고 설명을 해주었고 교사들은 나에게 이메일로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추운 벌판을 헤쳐 나갔다. 4개월쯤 지났을까? 놀랍게도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웃으며 함께 놀고 운동하며 영어를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학교 전교생이 함께하는 뮤지컬에도 참여했다. 아들은 표범, 딸은 범블비였다.


시골 학교를 떠나 엄마를 믿고 따라와 준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위해 나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딸아이는 6학년이 되자 전교 1등이 되었고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소위 엄친딸처럼 엄마의 자존감을 상승시켜 주었다.


인생의 단계를 건너뛸 수 있을까? 싫은 것은 그냥 스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피할 수 없는 나의 갱년기처럼 딸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려는 나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를 한다.

 " 엄마, 노크를 좀 하고 들어왔으면 좋겠어. 노크하고 바로 들어오지 말고 내가 "응"이라고 답하면 말이야."


그 이후 항상 엄마 편이었던 딸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함께 밥을 먹어도 핸드폰을 옆에 두기 시작했고 잔소리를 하면 친구들이랑 이야기 중이었다고 했다. 식탁예절을 강조하면 식사를 하는 내내 정적이 흘렀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자신들의 굴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어쩌다 기분이 좋은 딸아이가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 엄마 이 아저씨 어때? 40대라는데 정말 잘 생겼지? 내 스타일이야."라고 웃으며 하는 말에 심장이 땅에 닿았다. " 딸아, 엄마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야기했었지? SNS는 16살 이후에 하는 게 좋고. 또 나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걱정이라는 탈을 쓴 잔소리를 꺼내놓았다. " 엄마아, 그만해. 엄마 진짜 이 짤 같네. 봐봐." 하면서 딸은 방금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다른 아이의 포스팅을 보여주었다.


그렇다. 엄마들은 자기도 모르게 모두의 딸들에게서 디스를 당하고 있었다. 나도 여러 번 도마에 올랐으려나 싶으니 기분이 안 좋다. 그렇다면 나도 인스타를 해봐야지. 페이스북으로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카카오 스토리에 사진을 올리지 않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올드하다며 디스 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인들이 하나 둘 카카오 스토리를 벗어나 인스타로 이동했기도 하지만, 왠지 새로운 플랫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평생 교육을 지향하는 나 아닌가.



딸아이의 스토리에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준다. 가끔 수위가 좀 과하다 하는 사진이 있으면 하트를 안 누르는 걸로 소심하게 내 뜻을 내비친다. 내가 올린 사진 중 어쩌다 딸아이의 갬성에 맞는 사진이 올라오면 그 귀한 딸의 댓글이 달린다. " 오오 울 엄마 인스타 갬성 있는데?" 딸에게 칭찬을 받다니. 정말 기쁘다. 사춘기 절정을 딛고 있는 딸아이와의 대화는 이제 인스타를 통한다. 친구의 친구들도 나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나도 그들과 맞팔을 한다.


딸아이의 '하트'를 받으면 즐겁고 댓글을 보면 더 행복하다. 인스타를 보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친구들과 무엇을 하고 노는지도 훔쳐볼 수 있다. 아이들이 하루 일과를 엄마에게 일러주는 단란한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잔소리를 하지 말자. 차라리 '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 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그렇게 세상은 바뀌고 또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인생은 평생 배우는 여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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