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교달 Oct 23. 2021

엄마는 토익 만점 도전 중

평생 공부의 달인

토익 (Test of English for international communication) 시험은 말 그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일상생활이나 사업 현장에서 필요한 실용에 알맞은 영어 구사 능력 평가 시험이다. 2시간 동안 200 문제를 풀며 총점은 990점이다. 듣기와 읽기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토익 700점이 대학 최소 졸업 요건이다. 특히 한국은 취업용 토익 점수의 기준이 높은 나라다.


나는 이미 취직도 했고 나이도 꽤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토익 공부를 하고 있을까?


나는 국제학교에서 일하는 엄마다. 당연히 영어로 업무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 그러면 그렇지. 영어 점수가 필요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제학교에 취직할 때 영어 점수는 필요 없다. 영어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토익 시험을 본 것은 영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이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지만 나의 영어 실력이 정규 교사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나의 점수를 물은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1. 첫 시험


내 생애 최초 토익 시험을 본 나이가 37살이다. 첫 시험을 본다고 하기엔 꽤 늦은 나이. 영어 시험을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 잔잔한 인생을 살다 경단녀로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 세상은 경단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경력이 단절된 사람이 아니라 엄마로서 경력을 더하고 온 대단한 여성 인력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무언가 증명하고 싶었다.


토익 시험 파트가 어떤 유형 인지도 몰랐고 문제 유형 스킬을 익히러 학원에 갈 시간도 없었다. 그저 접수하고 시험장에 갔을 뿐이다. 첫 시험 결과는 925점. 이 점수가 높은 점수 인지도 나는 몰랐다. 솔직히 만점이 몇 점인지도 몰랐으니까. 대단하다는 주변 선생님들의 말에 경단녀가 아닌 엄마 경력 플러스인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경력은 쌓였고 지금은 국제학교에 근무한다.


2. 세 번째 시험


두 번째 시험은 제주에서 보았다. 국제학교에서 근무한 지 2년쯤 되었을까? 교사가 아닌 인사과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를 꽤 자주 사용해야 했고 첫 번째 시험보다는 결과가 좋을 줄 알았다. 기대와는 달리 나는 800점대 점수를 받았다. 영어를 매일 사용하는 환경에서 근무하는데 점수가 왜 떨어졌을까? 역시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을까?


베트남으로 이주하면서 나는 모국어로서의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나 업무, 수업계획, 회의, 기타 방과 후 강의 등은 모두 영어로 한다. 때로는 국어의 어순이 뒤엉킬 때도 있다. 영어는 늘 어렵다.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영어도 잘 못하고 모국어도 잃어가는 상황에 놓인다. 항상 쓰는 낱말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여러 이유로 나는 다시 한국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어로 배운 애매한 지식을 한국어로 명확히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영어 시험을 보거나 시험을 대체할 영어 시험 점수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토익 시험을 보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어린 학생들과 시험을 함께 보았다. 내가 아마 최고령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엔 토익 공부를 좀 해야 하나 망설였다. 어떤 유형의 문제가 파트 1에서 6에 나오는지 공부 좀 하고 문제의 유형을 보면 답을 유추할 수 있는 스킬을 좀 익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 시험도 공부할 여유는 없었다. 워킹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대학원까지.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이미 꽉 채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점수는 935점을 맞았다. 나쁘지 않은 점수다. 공부할 시간이 없는 워킹맘이 받을 수 있는 점수로는 꽤 훌륭한 점수였다. 대학원은 이 점수로 거뜬히 졸업할 수 있었다.


3. 다시 시험 


나는 시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내년에 다시 토익 시험을 보려고 한다. 이번엔 공부를 좀 하고 시험을 보려고 한다. 누가 보면 나는 나이 든 선생님,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의 워킹맘으로 볼지도 모른다. 대학원에 제출해야 하거나 직장에 제출할 이유는 더 이상 없다. 내가 시험을 다시 보려는 이유는 하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학습하는 나의 모습을 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금수저를 물려줄 수는 없지만 끈기 있는 도전정신은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익 만점은 아마 받지 못할 점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나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를 한다. 영어 기사를  매일 읽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본다. 매일 1시간은 이렇게 꾸준히 할애할 것이다. 남은 인생 배우지 않으면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혼자설 수 없다. 


내 나이 60이 되면 노마드가 되려고 한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너무나 많으니까.


이전 01화 국제학교 교사의 대학원 도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