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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Oct 06. 2021

망모전서( 亡母傳書 )-5. 끝.

엄마, 잘 가. 조금 있다가 만나

엄마의 긴 투병 생활 동안 아빠는 외로우셨다.

딸들에게 말하지 못한 아빠의 외로운 인생을 엄마 대신 누군가가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인생을 다 바쳐 아빠와 함께 한 엄마는 그 사실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엄마, 엄마가 죽기 전날 병실에서 있었던 일은 잊어. 엄마랑 약속했잖아. 내가 아빠를 꼭 지키고 있을 거라고. 염려하지 말라고. 엄마가 말로는 못하고 온 몸으로 엄마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때 엄마를 꼭 안고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엄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던 그 새벽, 아빠의 핸드폰에서 여자로부터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엄마가 느꼈을 분노가 나에게 빙의된 듯했어. 그리고는 엄마 대신 내가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그리고는 연락처를 지워버렸어. 아빠의 단축번호 7번. 


언니들이 수군거리던 아빠의 수상한 행적을 엄마도 모두 들으셨다는 것을 엄마가 분노의 숨을 푸푸 내뱉고 계실 때 알았어. 엄마의 아픈 손가락인 나는 외국에 산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고 언니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어. 엄마의 일생을 되감아 생각하면 아빠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시골 촌동네 팔 남매의 장남인 아빠가 아빠만 믿고 시집온 장녀를 그렇게 구박하고 외롭게 살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엄마가 입은 그 촌스러운 수의는 대체 왜 준비해 놓은 건지. 엄마는 그 옛날 미술대학을 나온 수재인데, 세상을 떠날 때 입어야 할 옷은 그저 그렇게 뻣뻣하고 무미건조한 색의 옷을 준비했어야 하나? 언젠가 내가 엄마가 누웠던 그곳에 눕는 날이 오면 나는 내가 입고 싶은 예쁜 옷을 입혀달라고 해야겠다. 영혼이 떠난 얼굴에 분칠은 좀 더 잘하는 사람한테 부탁해야겠다. 아니면 입술만 살짝. 내가 아닌 것 같은 마지막 모습을 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죽음을 당당하고 아름답게 맞기 위한 준비를 해둬야겠다. 


엄마가 화장터로 옮겨지는 발인날에도 하늘은 울고 있었다. 하늘이 맑았다 한들 맑은 것이 보일까. 세상은 엄마가 화장터에서 재로 되는 순간 캄캄해졌다. 비가 그치고 더운 땡볕 여름 날씨가 되어도 나의 마음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불었다. 서러운 울음소리 같은 휘이휘이 소리와 함께.

엄마를 잃은 나는 고향을 분실했다. 나에게 엄마는 고향이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아빠는 혼자 아빠의 일생을 꿋꿋하게 버티고 계신다. 다시 7번으로 저장되었을 아니, 1번으로 저장되었을지도 모를 그 여자에 대해서는 가족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빠도 자식들에게 비친 부끄러웠던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아빠는 당당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빠도 외로운 인생을 사느라 누군가가 필요했다고 말씀하셨으면 아빠의 인생에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갑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우리 엄마의 당당하고 서늘한 성격에서 찾을 수 없는 다정함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엄마가 생을 치열하게 마감하는 그 순간 아빠의 머릿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을 그 여자를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가 떠날 때엔 엄마에게 온전히 아빠를 내어주기를 바랐다. 

엄마,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죽은 지 몇 년 뒤 아빠는 나한테만 그 여자와의 스토리 빗장을 열었어. 꼭 엄마에게 용서를 빌고 설명하는 모습 같았어. 지금은 소원해진 관계를 들으며 솔직히 아빠의 성격을 참아내며 평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도 했어. 아빠는 결코 사람을 잘 믿거나 마음껏 사랑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엄마는 잘 알 테니까. 


 


엄마 미안해. 죽어서까지 선산에 묻혀서 시댁 식구 돌보기 싫다던 엄마를 그곳에 두어서. 대신 엄마가 제일 사랑한 엄마의 막내딸과 행복하게 지내. 엄마의 가슴에 묻은 그 아이는 이제 엄마와 함께 행복하겠지. 나도 엄마로서 떳떳한 일생을 살아내고 하늘에서 부를 때 담담하게 엄마의 곁으로 갈게.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지? 외할머니가 하늘에 있으니 가는 게 무섭지 않을 거라고. 아빠를 가까이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해. 내년 여름엔 아빠랑 같이 엄마가 있는 선산에 꼭 갈게. 

 


혼자 삶을 정리해내고 있는 아빠에게 오늘도 전화드렸다. 오늘도 그러신다. " 오냐오냐, 나는 잘 있다." 그렇게 딸의 안부를 절대 묻지 않는 녹음된 대화를 반복할 지라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난 아빠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았고 아빠는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으니 죽은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아빠에게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5분 남짓 통화하는 걸로 계산하면 길어야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남은 아빠와의 이번 생의 마지막 대화. 할 말이 남았다고 후회하지 않게 나는 다음 주에도 전화를 할 것이다. 


아빠에게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말 " 아빠 사랑합니다. " 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게. 돌아가신 후에 할 말이 남지 않도록. 엄마는 사랑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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