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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Oct 23. 2021

런던 히드로 공항의 엄마 냄새

영화 미나리가 불러온 추억

" 누가 너더러 일하래? 시집만 잘 가랬지."

엄마가 엄마표 시골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랜만에 집에 오셨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엄마의 속상함은 딸내미의 등짝 스매싱으로 끝을 보인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빨랫감 하며, 설거지 통에 이틀 동안 쌓인 듯한 그릇들이 처박혀 있는 것을 보시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슬픔의 아우라가 비친다. 언제부터였을까? 집에 오시면 엄마는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대신 딸의 집안 꼴을 말없이 차곡차곡 눈에 담으셨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가시고는 다시는 오시지 못했다. 


1. 내 인생의 시작


까마득한 스무 살 시절 시골에 있는 바닷가 앞 중학교에 처음 부임한 학교가 첫 직장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을 갓 졸업한 그 처녀는 직장을 놀러 다녔다. 학생들이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게 신기하고 좋았고, 진심이 아니었을 예쁘다는 말에 혹해 선배 선생님들께 커피 꽤나 타 날랐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신기했고, 첫 월급을 받아 기쁘게 내 옷 한 벌을 샀다.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다니. 대견하고 기뻤다. 남들은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린다, 용돈을 드린다, 월급을 드린다 하던데, 나는 그 당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는 부자는 아니지만 화수분같이 채워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철없이 첫 인생의 직장을 시작했다. 


중매로 결혼을 하면 좋은 곳에 시집을 갈 것을, 고집이 황소라 자기 맘대로 상대를 고르는 막내를 엄마는 무던히도 못 마땅해하셨다. 기운다면 기우는 남편의 집안 어른들을 시댁 식구라는 이유로 군말 없이 융숭하게 대접하셨다. 엄마는 아들이 없어 늘 을이었다. 좋은 대학 공부시킨 언니들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시키던 그때도 엄마는 늘 을이었다. 나는 엄마같이 을로 살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함께 부모님을 떠나 영국으로 시집을 갔다. 


2. 첫 출산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영국에 오지 못하고 공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막내딸의 출산 소식에, 그것도 아들을 낳았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엄마는 바리바리 음식을 싸 대셨다. 장남에게 시집와 아들을 출산하지 못한 엄마는 딸의 아들 출산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딸이 갑이 되었다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들 없는 설움을 평생 마음에 묻고 사신 엄마는 산모 미역이며 한우 등을 엄마 몸무게만큼 싸셨다. 기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셨던 공항에서 여권 만료기간이 지난 걸 아셨을 때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노인만 사는 집에 누구 하나 여권 만료 기간을 챙겨줄 사람이 있었으랴. 엄마 아빠는 가지고 오려던 음식을 시어머니 댁에 부치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시댁 어른들은 엄마가 준비해주신 음식을 가지고 영국에 오셨다. 그리고는 손자가 100일이 될 때까지 집에 머무셨다. 엄마가 보내신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감사한 마음보다는 부담스러움이 앞섰다. 남편이 일찍 퇴근해 오지 않으면 배고파도 참아야 했다. 내 몸 챙기려고 부엌에 가는 것이 괜시레 민망한 며느리가 되었다. 아들을 낳고도 나는 을이 되었다.


3. 엄마의 영국 방문


드디어 엄마 아빠가 영국에 오실 수 있는 날이 왔다. 막내딸이 낳은 아들이 무척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엄마는 또다시 음식을 바리바리 챙기셨다. 나는 그냥 몸만 오셔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도 안 그러실 엄마를 아니까. 무엇보다 엄마의 음식이 너무나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사히 출발하셨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탔던 항공기가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엄마 아빠 모습이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끼리 오는 첫 장기 비행이라 걱정이 앞섰다. 아무래도 짐이 많으시니 천천히 나오시겠지 스스로 위로하던 그 순간. 나는 아주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김치 냄새. 엄마보다 먼저 검열대를 빠져나와 나를 만나고 있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지나갔어도 엄마의 김치 냄새는 구분이 됐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먹고 싶고 그리웠던 그 냄새에 눈물이 울컥 났다. 이제 엄마 아빠도 곧 나오시겠지. 그 후 20여분이 더 지나, 부모님은 키만 한 높이의 이민가방을 밀고 도착 플랫폼으로 나오셨다. 짐이 크니 검역에 걸렸고 가지고 온 한우와 생선은 모조리 뺏기셨다고 했다. 엄마의 치매는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영어를 잘할 줄 모르신다. 그런데 검역소 직원이 고기 맛있겠다며 챙겼다고 내내 울분을 토하셨다. 아마 엄마는 그때 이미 치매셨는지도 모르겠다. 



4. 영화 미나리는 향기를 부르고


엄마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영국에 한번 더 오셨었고 유럽여행을 하셨다. 한국에서 살게 된 막내 집을 몇 번 더 오시고는 돌아가셨다. 잘 살던 막내딸이 한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내내 속상해하셨다. 늘 아픈 손가락이던 나는 엄마의 마음속에 한을 남겨드렸다. 그렇게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고 나는 다시 외국으로 나와 지내게 되었다.


미나리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윤여정 할머니가 음식을 바리바리 꺼내놓는 장면을 보았다. 음식과 돈 봉투를 주시는 윤여정 할머니의 마음은 수십 년 전 우리 엄마의 그것과 같았으리라.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는 손주 앞에서 딸 걱정을 더 하셨을 윤여정 할머니와 우리 엄마.


향기는 대단하다. 잊히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 남았다가 익숙한 향기를 맡으면 그때의 장면을 선명하게 불러온다. 그 향기가 났던 장소는 향기와 함께 내 몸 어딘가에 기억으로 남아 있었겠지.


인생을 힘들게 살고 있는 딸을 위해 음식을 싸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정신줄을 놓기 전까지 자신보다 더 걱정하던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끄집어낸 엄마.  


엄마의 김치 냄새가 갑자기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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