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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EATS Oct 27. 2019

달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아름답고 관능적인 문장으로 사랑받는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책 제목만 보면 10년도 훨씬 전에 유행했던 카카오99% 초콜릿이 떠오른다. 쓸개즙이 올라오는 것처럼 쓰다고 하던데 먹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어찌됐든 초콜릿이 마냥 달기만 하진 않다는 것을 뇌리에 박히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쌉싸름한 맛이 초콜릿의 풍미를 더욱 높여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달콤 쌉싸름한 다크초콜릿과 흑맥주를 곁들이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조금 극단적일 수 있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홀어머니가 있는 집안의 막내딸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전통이 아직도 건재하다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과 재능을 탐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어머니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운명만이 정해져 있다면... 아, 나는 차라리 탄생을 무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 티타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여자다. 평생을 부엌에서 요리만 하고 어머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치만 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책의 주요 무대인 부엌은 티타를 억압하는 공간이자 안식처이다. 겉보기에 티타는 관습에 의해 부엌에 갇힌 존재로 보이지만 티타는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법(요리)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자유를 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티타가 만들어낸 요리는 티타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티타의 분노가 담긴 초리소는 먹을 수 없게 썩어버리고 몇 시간을 끓여도 익지 않던 콩이 티타의 노래자락을 듣고 포슬포슬하게 푹 삶아진다. 그렇게 총 열두 개의 요리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만들어지고, 티타의 이야기도 완성된다. 티타는 요리를 통해 사랑과 감정을 표현하고 관습에 저항하며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한다. 책의 줄거리는 이게 전부다.


사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티타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것보다 20세기 중남미 문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오묘함과 관능적 문체에 있다. 사랑과 요리라는, 어쩌면 너무도 여성적인 소재를 활용하면서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을 그려낼 수 있었던 배경에 '마술적 사실주의' 표현기법이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저자는 티타가 운명을 깨부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티타 개인뿐 아니라 주변 인물을 통해서도 드러낸다. 티타 내면의 변화를 주변인물(외부)에 투영하기 위한 매개체로 요리를 활용한 것이다. 사랑과 요리라는 소재가 마술적 사실주의를 만남으로써 그 매력이 더욱 극대화된다.


※ 다음의 내용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판타지인가 현실인가? 바로 그게 마술적 사실주의이다!


티타가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는 고독을 느끼고, 사랑에 대한 욕망이 담긴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마약을 한 것처럼 씻을 수 없는 갈증에 휩싸인다. 즉 티타의 요리를 먹은 주변 인물들이 티타의 감정과 변화를 외부에 드러내는 스크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몇 가지를 더 짚어보자.


먼저, 티타의 눈물이 담긴 웨딩 케이크를 먹은 하인이 옛 애인을 그리워하다 사망한 사건이 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티타의 괴로움을 반영한 에피소드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티타의 둘째언니 헤르트루디스가 티타의 요리를 맛보고 끓어오르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간 사건이다. 헤르트루디스는 집을 나가 창녀촌을 떠돌기도 하면서 자신의 본능대로 살아간다. 이 사건은 티타가 어머니를 벗어나도(관습을 탈피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 초반에 티타는 접시에 하나 남은 요리를 냉큼 먹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이 하나 남았을 때 먹지 않고 두는 것이 예의이자 미풍양속이기 때문에 생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책 후반부의 파티에서는 텅 빈 접시가 묘사된다. 사람들이 요리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티타가 자신을 억압하는 관습에서 탈피해 오롯이 하나의 개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결말을 한 번 더 되짚어주는 것이다.


책의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티타는 요리를 통해 관습에서 탈피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만을 추구하는 티타를 두고 너무 수동적이거나 가벼운, 전형적인 옛날 이야기의 여자주인공이라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부엌과 요리, 사랑과 희생을 뒤로하고 티타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티타는 그릇된 관습으로 상징되는 마마 엘레나의 억압에 두려워하면서도 속박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두 남자 주인공, 페드로(티타의 본능을 자극하는 사람)와 존(티타의 이성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갈팡질팡 흔들리진 않는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도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의한,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티타가 자신의 사랑만을 위해 관습에 저항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조카가 같은 고통을 물려받지 않도록 관습을 철폐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티타의 요리를 먹고 집을 나간 헤르트루디스가 혁명 장군이 되어 돌아온 것에서도 진취적인 여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읽을 수 있다. 남성 중심으로 그려진 혁명의 역사에 여성을 등장시킨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 혁명 당시 사빠타파 혁명 세력에는 여성 군인도 많이 가담했었다고 한다. 작품의 주제가 가정 내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시대배경을 깊이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역사를 반영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티타가 사랑과 요리에 매어 사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이유로 이 작품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고 가볍다며 비판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중략)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124~125쪽)

티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녀를 떠나 보내주었던 존이 한 말이다.


티타에게는 진실(사랑)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산소가 되어 불꽃을 만들어냈을 것이고, 헤르트루디스에게는 정상을 향한 투쟁이 그러했다. 관습에 대한 개인의 저항이 주가 되는 책이지만 위의 문장을 고려하면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요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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