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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17. 2021

살이 찌면 해야 하는 일

운동과 식단 조절이면 좋으련만

 살이 쪘다

 먹는 입을 때려야 할까? 아님 자제하지 못한 이성을 탓하며 머리를 쥐어박아야 할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배부른 돼지가 되기는 더욱 싫었는데 자꾸만 나 자신이 배부른 돼지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몸의 변화를 몰랐을 때는 남편이 날보고 '먹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놀려도 웃을 수 있었다. 본인은 나보다 더 먹는 사람이니까. 아들이 엄마 얼굴이 점점 '빵빵한 찐빵'이 되어 간다며 신기한 듯 두 손으로 감싸 안아도 '네가 네 입으로 엄마들이란 살집이 좀 있어야 포근한 맛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라며 능청을 떨 수도 있었다. 아들은 원래 나와 장난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그런데 나 자신이 변화된 몸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는 그런 허세를 부릴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걱정이란 놈과 직면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 그놈은 자신의 손안에 '건강'이란 문제를 넣어 온 것이 아니라 '문제는 돈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돈'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뭐지, 살이 찌면 걱정해야 하는 건 건강 아냐? 살이 쪘는데 왜 돈을 걱정하지.'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살이 쪘음을 인식한 후 내가 보인 행동을 보면 안다.

 


 가을 옷을 정리하고 겨울 옷을 꺼내 입을 때였다.

 '뭐야, 이것도 맞지 않잖아. 작년에는 편하게 입었는데 왜 이러지.'

겨울 바지를 입다 갑갑함에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눌린 건 분명 배였는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 것이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가을까지만 해도 옷 입는 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내 몸은 옷을 거부하지 않은 순종적인 몸이었다. 불편하다고 불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지금은 불편하다며 제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괘씸한 생각에 한마디 했다.

 '야, 너 이러면 배신이야. 배신. 넌 분명 가을 옷을 입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어.'

했더니

 '그때는 허리와 배를 자유롭게 놔둔 원피스를 입었으니까 그렇죠. 이렇게 허리와 배를 조여버리면 날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제발 양심 좀 챙기세요.'

라고 한다.


 '아, 그랬구나. 가을까지는 내가 원피스를 입고 다녔구나. 몸에 헐렁한 원피스의 여유를 걸치고 다니느라 살이 찌고 있음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농으로 시작한 말이 진심이 되었는데도 우리 집 양치기들의 말을 거짓으로 알고 비웃었구나.'


살이 쪄서 한 일

 착각에서 깨어난 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몸에 맞는 옷을 사면 된다. 옷을 찾아 끝없는 검색의 길을 달렸다. 살이 쪄서 건강이 나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따위는 부수적인 문제다. 당장은 몸에 맞는 옷을 사야 했다. 그래서 살이 찌면 제일 먼저 돈을 걱정해야 하나 보다. 몸에 맞는 옷부터 사야 하니까.


 물론 옷을 사는 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건 단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그 일이 가장 쉬웠기에 그 일을 했다.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야 할 때다.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운동을 해야 한다. 가까운 산책길이라도 걸어야 한다. 할 수 있다. 한데 차가워진 날씨가 밖으로 나가는 걸 막는다. 집에 연약한 몸뚱이를 묶어 놓는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또다시 입이 궁금해진다. 먹을 것을 찾는다. 살이 찐다. 뭐지, 뭐지? 진정 겨울은 운동하기 부적합한 계절이란 말인가. 이대로 먹는 욕심만 계속 부려 배부른 돼지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라며 내 몸에만 적극적인 투자를 권유해야 한단 말인가.

 

 아~. 의지박약 인간은 오늘도 입으로만 운동을 외치며 음식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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