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선택권은 너에게 맡길게
꼰대 엄마의 자기극복 반성기
진심이었다. 화를 내고 강요를 해도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찌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프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늘 진심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딸에 대한 모든 마음은 늘 그렇게, 그 자리에서 진심이었다.
딸을 보면 가슴이 설렜다.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서두르다 챙기지 못한 것이 있었을까 애처로운 마음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이 마음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몰래몰래 숨겨둘 의향도 있었다. 아니 모르는 일처럼 시치미를 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이 반듯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딸과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생기고 있는 걸 느꼈다. 투명했기에 차마 벽인 줄도 몰랐던 벽이 우릴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보고서야 거기에 벽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닿지 않는 손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벽의 존재를 인식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누구였을까. 나였을까 아님 딸이었을까. 찾아야 했다.
그러다 알았다. 딸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반감의 원인을. 차마 꺼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게 박혀버린 뒤틀림의 뿌리를. 그건 나였다.
눈물이 나는 걸 참았다. 딸은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문제를 알아버린 이상 그것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때 나의 선택은 너를 위한 것이었어'라는 말 따위는 꺼내지 않았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1년 남았는데 그래도 졸업은 하지"란 말은 흘렸다 이내 담았다. 그따위 졸업장이 뭐라고.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꾸역꾸역 참아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난 딸에게 무슨 짓을 하며 살았던 걸까? 딸을 위한다는 일이, 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눈 감았던 건 아닐까? 그것만이 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남의 시선에 한껏 몸을 웅크렸던 건 아닐까?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남들에게 인정받길 바라서가 아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고단하고 번다한 세상 속에서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고통받고 힘드라고 공부를 강요하겠는가. 자신의 면을 세울 도구로 앞세우려 하겠는가.
마음속에 꾹꾹 눌러둔 말을 꺼내버린 딸은 표정이 밝아졌다. 반쪽이 된 얼굴에선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천진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앗아간 것이 나였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날 남편과 내가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방문이 없었다면 딸의 진심도, 깊숙이 박힌 불신의 뿌리도 뽑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색한 미소와 껄끄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그날만큼 뿌듯했던 날이 있었나 생각되는 하루였다.
딸은 휴학을 선택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인생의 키를 과감하게 틀었다. 선택이 불안했을 딸에게 그래도 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지원군을 자처한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길 위에서 춤을 춘다고 했다. 딸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남들과 경쟁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지나온 길도, 옆에 선 사람도 쳐다볼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느리게 가는 것에 조급해하지 말고, 올바르게 걷고 있는 자신의 발을 자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다시 생각해 본다. 딸에 대한 나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을까. 아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나의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다. 하지만 선택의 키를 건네버린 지금은 그 진심이 무겁지 않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