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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21. 2020

시어머니의 뒤주, 그 속에는...

업이 웅크리고 있다.

시어머니의 뒤주 속에 업이 살고 있다


 "어~~어어, 살살 조심해서 옮겨라"

 "어머니, 걱정하시 마시고 들어가 계세요"


 남편과 내가 낑낑거리며 창고에서 어머니의 뒤주를 꺼내고 있을 때, 어머니께선 우리가 못 미더우신지 옆에서 계속 참견을 하신다.


 새해, 남편이 새로운 취미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남편을 위해 작업실을 만들어주겠단 다짐을 했다.  큰 맘먹고 한 다짐이었다곤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눈을 부라려 작업실 장소를 물색하고 입을 놀려 찾아낸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나의 생색을 대신할 밖엔.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공간이 우리 집 광, 바로 창고였다.


 그 공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에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집안 행사 때나 문이 열려 미흡하나마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그 창고에는 집 안에서 내어 놓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다. 옛날 우리의 여행을 책임졌던 다양한 캠핑 도구들, 부엌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쫓겨난 큼지막한 그릇들, 제사에 쓰인 제기와 상. 그리고 매실, 오디, 복부자를 한 아름 품고 있는 과일주 통 등. 자신의 자리가 불분명한 많은 물건들이 한 번이라도 이름이 불려지길 바라며 외롭게 쪼그리고 앉아 광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광 속에 두기에는 그 의미 면에서 다소 억울한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어머니께서 시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뒤주, 우리 집을 소리 없이 지키고 있다는 어머니의 뒤주가 바로 그 주인공 되시겠다.


 뒤주를 창고에서 꺼내 놓고 보니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몇십 년을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손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지냈으니 그 몸뚱이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시간의 흐름에 제 몸이 깎이기라도 한 듯 튼튼했을 다리는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다리가 곧 부서지겠어요. 다리를 좀 고치고, 겉에는 니스칠도 해야겠어요."

 "아서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어라. 내가 죽고 나면 니들이 알아서 고치든지 사용하든지 맘대로 하고 지금은 그대로 옮겨만 놔라. 지금 그 속엔 내 업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업 이야기


업이 무엇인가? 업이란 한 집안의 살림을 보호하거나 보살펴 준다고 하는 동물이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런 민간 신앙적 존재나 그로 인해 파생된 얘기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니 신빙성이 없다 여기며 그 영향력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대단히 민감하시기에 이 말이 과학적으로 맞는니, 그렇지 않느니 하는 식의 말대꾸는 아예 접어 버렸다. 어쩌면 그건 어머니에겐 신앙과도 같은 일일 테니.


 어머님은 처녀 시절,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한다. 무슨 무당들처럼 신내림을 받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미래를 예견하는 예지몽을 꾸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 싶겠지만 용케도 그 꿈들이 잘 맞은 탓에 집안에서는 그것을 어머님의 능력이라 여기며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시할머니의 뒤주에 산다는 그 업을 어머니께선 결혼 전 꿈속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업은 큰 귀를 가진 구렁이 모양을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선을 보고 온 다음 날이면 늘 어머니 꿈에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을 볼 때마다 업은 몸이 잘린 흉측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모습이 께름칙한 어머니께선 계속해서 혼사를 미루셨고, 드디어 시아버님과도 선을 보게 되셨는데 예측대로 그 업이 온전한 모습을 하고 어머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선 '이게 인연이다' 여기며 아버님 결혼을 하셨단다.


 과연 어머니께선 꿈 때문에 아버님을 선택하신 것일까? 종종 어머니께선 본인이 아버님을 더 좋아해서 결혼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젊은 시절 아버님은 굉장한 미남이셨는데, 선을 본 자리에서 어머님은 아버님의 외모에 혹하셨을 수 있다. 아버님에 대한 그 설렘이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해서 업을 온전한 모양으로 탄생시켰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한데, 그것이 어머님의 꿈이 보여준 특별한 능력이라 믿는 어머니나 아버님, 남편 때문에 나 역시 그 말에 호응하여 대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결혼 후 어머님께서 또다시 예지몽을 꾸셨는데, 어머님과 아버님을 맺어준 그 업이 어머니를 따라와 시할머니의 뒤주에 똬리를 틀었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반가운 마음에

 "아이고, 니가 여기까지 따라왔어?"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그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단다. 


 그런데, 업이 떠난 어머님의 친정 집에 알 수 없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한다. 업이 어머니를 따라 시댁의 뒤주로 찾아든 이후 어머님 친정 집의 풍족했던 살림살이가 끝을 모르고 추락을 했단다. 6.25가 일어날 무렵 차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던 어머님의 집은 점점 가세가 기울어 시댁보다 더 가난해졌고, 어머님이 시집 온 이후 시댁은 점점 여유로워졌으니. 어머니께선 자신의 업이 시댁으로 따라오면서 친정의 모든 복을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믿음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머님의 업이 시댁으로 온 후 시댁의 살림에 후퇴란 없었다 하니 업을 지켜내는 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뒤주는 지금 어머니의 그림 공방에 놓여 있다.


 업이 웅크리고 있다는 어머님의 뒤주. 한낱 미신에 불과하다 치부하지 않고 가끔 손길이라도 줘야겠다. 어머님의 마음이라도 흐뭇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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