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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24. 2020

나는 명절이 좋은 며느리다​

명절은 속풀이 시간이다.

  "세~상에 명절이 좋은 며느리래" "저 여자 정신 나간 거 아냐?"

 자칫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제목을 달고 말았다. 하지만 저 제목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든 상관없이

진심으로 명절이 좋은 사람이다.


 명절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거기에는 극과 극의 생각이 존재할 거다.

 "명절아, 어서 와라" 반가움에 온 몸이 설레는 사람과 "아~~, 세상에서 명절이 제일 싫어" 손사래를 치며 명절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으로.


 그 누군가는 이 두 부류를 나누어서 친절하게 분석도 해 주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명절을 가장 싫어할 대상으로는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란 이름을 갖게 된 사람들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난 며느리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명절이 좋은,

아니! 명절이 반가운,

세상.. 재수 없는 며느리다.


 명절이 좋다고 말하는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나에게 보낼 따가운 눈총 정도는 거둬가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결혼한 여자들에게 신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이는 신혼 때가 가장 좋았다며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이는 신혼 때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으니 결혼 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이 더 좋다 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이 두 상황 중에서 당신은 어떤 쪽을 선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왜냐면 나에게 신혼은, 아니 신혼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 시간은 나를 물 위에 뜬 기름,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섬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시집살이(시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시집살이라 부르는 것이지 특별한 스펙터클함에 그리 부른 건 아니다)는 이유 없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무슨 조선 시대를 사는 것도 아니면서 나를 '출가외인'이라고 부르며 친정 일에는 나서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도, 나의 습관을 탓하면서 훈계조로 말하는 영혼 없는 투명한 말투에도 서운함을 느껴 눈물을 흘렸다. 지금이라면 앉은자리에서 바로 받아칠 수도 있는 별 볼 일 없는 말들에도 저항 한번 못하고 바보같이 눈물만 흘렸다. 결국 바보 같은 눈물은 바보 같은 결과만 불러와 남편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역으로 대화만 단절시켰다. 나의 낯섬과 힘듦을 위로해 주고 보듬어줘야 할 남편이 저리 무심하니 나의 신혼이 어찌 편할 수 있었겠는가? 그럴 때 나를 위로해 주고 보듬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두 형님들이 되시겠다.


 결혼하고 맞이한 첫 명절에서 나는 형님들에게 남편 흉을 바가지로 봤다. 그러면 형님들은 웃으면서 내 말에 동조를 해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명절은 언제나 나의 묵은 스트레스를 해결해 주는 속풀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거기다 '없는 자리에선 나라님도 흉본다'는 말로 며느리들만의 시간을 마련해 주려 부엌문까지 닫아주신 어머니 덕에 그것도 아주 편한 마음으로 남편을 아주 꼭꼭 씹어버릴 수 있었다. 가끔은 나 혼자만 열폭하여 열변을 토할 때도 있었지만, 그게 뭐 어떤가? 내 속만 편하면 됐지.


 이렇듯 명절은 노동의 고통보다 정신 해방을 가져다준 거룩한 날이다. 그러니 나 자신 어찌 명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두 형님과 어머닌 나의 신혼 생활에서 참 고마운 사람이 되어 주었다. 김 씨 집안으로 시집왔으나 김 씨가 아닌 사람으로 산 사람들이 우리들이었으니 연대 의식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내 남편은 다음 생에 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와 결혼하겠냐는 말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 봐야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론으로 말이다. 그러나 난 내 남편과 다시 결혼을 할 것이다. 그건 뭐 남편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서기 보단 지금까지 그에게 맞춰 산 나의 나날들이 너무도 억울해서 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에 맞춰 살아가는 삶 자체도 싫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누리게 될 황금연휴, 많은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시댁과 친정을 오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밉든 곱든 자신이 만나는 그 사람들이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란 걸 느꼈으면 좋겠다.


  명절이 좋은 며느리, 나에겐 곧 찾아올 행복한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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