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어느 목사와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
“요 녀석아, 왜 자꾸 졸졸 목사님만 따라다녀?”
“헤헤~ 목사님은 우리 아동센터의 관리대장님이시고, 나는 공구 수리반장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야?”
“생각을 해보세요. 목사님이 부서진 곳을 고치실 때,
저는 공구상자를 정리해서 바로 들고 따라다녀야 하잖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수리 안 하고 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르지요. 갑자기 고장난 걸 발견하시고 수리하실는지 누가 압니까.”
"에구, 네 마음대로 하거라"...
그게 한 달쯤 전의 일이었다.
“목사님, 심심해요...”
갑자기 교회 사무실로 들어온 아이, 택량이었다.
“심심하면 아이들이랑 놀거나 책을 보려무나.”
“아이들이랑 놀다 왔고, 책도 오늘 읽을 분량 다 읽었어요.”
이 말을 하며 종알대는 입매가 어찌나 진지하던지.
마침 눈에 들어온 공구상자가 있어, 장난삼아 시켜본 일이었다.
“그래, 마침 잘 왔다. 저기 공구상자 보이지? 그걸 좀 깨끗이 정리해보거라.”
그랬더니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더니 하나씩 공구를 집어 들고 이름을 묻는다.
“목사님, 이건 이름이 뭐예요?”
“롱로즈 플라이어.”
“이건요?”
“쇠톱.”
“그럼 이 시커멓고 무거운 건요?”
“몽키스패너지.”
아이에게 장난삼아 준 일거리가 갑자기 진지한 학습이 되어버렸다.
그 작은 손으로 공구를 죄다 바닥에 쏟아놓고선, 이름을 부르며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야무지던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
“목사님, 공구 정리 다 했어요.”
하는 소리에 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나는 눈을 의심했다.
못은 못끼리, 나사는 나사대로,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갈하게 나뉘어 고이 담겨 있었다.
“택량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헤헤~ 대단하긴요. 목사님, 이 정도쯤이야. 저는 얼마든지 잘할 수 있어요.”
“목사님이 보건대, 우리 택량이는 커서 멋진 엔지니어가 되겠구나.”
“우와! 정말요?”
“그럼.”
다음 날이었다.
학교 스쿨버스가 교회 앞마당에 멈춰서더니, 아이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택량이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뛰어내리더니, 책가방을 아동센터 구석에 던져두고는 내 사무실로 숨이 차도록 뛰어들어왔다.
“헉... 헉... 목사님, 오늘은 뭘 고칠까요예?”
“글쎄다. 네가 한 번 둘러보고 찾아서 고쳐보거라.”
아이의 발길이 교회와 아동센터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잠시 후, 실로폰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택량아, 나무 실로폰은 왜?”
“살펴보니까요, 이 나무 실로폰의 나사가 꽉 조여져 있지 않아서요. 계명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인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번 손 좀 봐야겠어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한 번 고쳐보거라.”
그러더니 공구상자에서 드라이버를 꺼내서는 나사 하나하나를 정성껏 조여주기 시작했다.
계명판 나사를 꽉 조여주면 실로폰의 맑은 소리가 제대로 나질 않는다는걸 택량이는 알고 있을까?
그 일이 있고서 한 시간이 지났을까.
4학년 수연이가 나무 실로폰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목사님, 실로폰 소리가 잘 안 나와요.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툭툭 소리만 나고, 계명판이 하나도 안 움직여요.”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연아, 우리 아동센터 수리반장님께 가져가 보거라. 택량이 오빠가 손이 아주 야무져서 잘 고쳐줄 거야.”
“네~에!”
수연이는 밖으로 나가며 외친다.
“박택량 오빠~, 박택량 오빠~, 바꾸테꾸! 실로폰 고쳐줘!”
그날 아동센터 한켠에서, ‘엔지니어 박’이 정식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밖은 미세먼지로 잿빛 하늘이었지만, 아동센터 안은 아이들의 꿈이 자라나는 오색빛깔 오후였다.
가방도 놀이도 잠시 내려두고, 작은 실로폰 하나에 마음을 다해 고장난 것을 고치려는 그 마음.
그게 바로 시작이다.
꿈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목사님, 오늘은 뭐 고칠까요예?”
라고 물으며 달려오는, 그 마음 안에 조용히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 꿈만은 무너지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어른이 된 택량이가
진짜 공구통을 들고, 진짜 고장 난 세상을 어딘가에서 정비하고 있기를.
나는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