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에게 털리고, 마음은 채우고
그해 여름은 어쩐지 좀 일찍부터 더웠다.
장마는 제법 늦장을 부렸고, 땅은 햇볕에 먼저 달아올랐다.
오후만 되면 아이들의 등줄기에는 땀이 한 줄, 두 줄 흘러내렸다.
그날도 땅이 숨을 헐떡이는 듯 덥던 날, 나는 아동센터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로 향했다.
쉬리와 피라미가 있는 우리 마을 강, 이름도 그저 정직하게 붙인 ‘영천강’.
발원지가 이 마을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고, 물은 맑디맑아 아이들이 엎드려 보면 자기가 쏘아보는 눈동자와 금방 친구가 될 만큼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물에 뛰어들며 소리 지르고, 첨벙거리며 웃었다.
제각기 타고난 재주로 수영도 흉내 내고, 서로 등을 태우며 노는 아이도 있었다.
다섯 살짜리 준서를 등에 업고 물살을 타는 상민이는, 그 나름의 책임감이 대견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거나, 휩쓸려 떠내려가며 마치 이강을 오랜 친구처럼 다루는 그 아이의 몸짓은, 마치 여름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껴안는 듯 했다.
아이들이 물장난에 몰두하는 사이, 나는 고기 잡이에 나섰다.
고기를 잡는다기보다, 피래미에게 미끼를 주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얕은 물가에 막대기 두 개를 박고, 그 사이에 낚시줄을 어설프게 늘어뜨려놓은 게 전부였다.
줄에는 파리처럼 생긴 낚시바늘을 몇 개 달았고, 그 위에 고기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고기를 담아둔 자갈 구덩이는 피래미로 가득 찼다.
딱 봐도 수십 마리.
튀겨 먹으면 고소하고 바삭한 맛에 손이 멈추지 않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입안에 침이 돌았다.
하지만 그렇게 멍하니 기다리는 것도 조금 지루했던지, 문득 어린 시절 하던 놀이가 떠올랐다.
강가의 자갈밭 위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탱크놀이 해볼래?”
요즘 세대 아이들이 이런 고전놀이를 좋아할까 싶었는데 웬걸.
눈이 번쩍 뜨이며 자갈을 모으고, 각자의 기지를 세우는 아이들의 손이 분주했다.
가운데 선을 긋고, 돌멩이로 탱크를 만들고, 상대의 진지를 무너뜨리는 일명 '자갈판 스타크래프트'.
어느새 물속은 텅 비고, 자갈밭에는 흙묻은 손과 환한 웃음이 넘실거렸다.
덥다는 것도 잊은 듯, 아이들은 저마다의 전략으로 돌을 날리고, 부서진 탱크에 탄식을 쏟았다가, 반격이 성공하면 환호했다.
나도 한쪽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내가 이 아이들과 함께 있고, 이 아이들이 이 강가에서 이렇게 자연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을 즈음, “앗, 낚시!”
피래미 생각이 났다.
아이들과 함께 낚시가 설치된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멀리서도 하얀 물결처럼 출렁이는 것이 보였고, 가까이 가보니 웬 백로 떼가 강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어찌나 기세등등하던지.
우리의 자갈과 모래로 임시로 만든 고기 보관소가 그들의 잔칫상이 되어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달려갔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모아둔 피래미들은 온데간데없었고, 남은 것은 휘젓고 간 흔적뿐.
그래도 낚시 줄에는 몇 마리쯤 걸려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고개를 들이밀었는데, 이게 웬걸.
낚시줄마다 피래미 ‘머리’만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노련하고, 너무나도 철저했다.
마치 백로들이 우리를 조롱하듯, 머리만 남기고 먹어치운 피래미들은 마치 이야기거리라도 되는 듯 우리를 향해 매달려 있었다.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백로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천천히, 아주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을 건너갔다.
그때 아이들 중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두목님, 백로가 머리만 남겨줬어요. 머리는 맛없대요~”
그 말에 모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마치 사소한 실패쯤이야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그러고 보니, 그렇다.
고기를 다 잃긴 했지만, 잃은 것이 다는 아니었다.
물장난, 탱크놀이, 자갈을 모으던 손길, 서로의 기지를 공격하며 웃던 그 소리들,
그리고 백로에게 허탕친 경험까지도, 아이들에게는 여름의 한 조각으로 깊이 새겨질 것이다.
삶은 때로는 고기 잔뜩 모아놨다가 백로한테 한 번에 털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웃음처럼, 또 다른 기쁨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날 아이들은 백로에게 털리고,
나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마음을 채웠다.
그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잃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웃음과 기억을 얻었다.
그리고 그날의 저녁,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오늘 진짜 진짜 재밌었어요!”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조금은 더럽혀지고, 종종 털리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
자연과 사람, 아이들과 웃음—
그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으로 강가를 걷는다.
백로에게 털리는 일이 있더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날은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