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부부 이야기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찬바람과 더운 바람이 어깨를 부대끼는 늦가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두 분이 있다. 고성 영오면의 작은 시골마을, 오서리. 그 입구에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단칸방 하나를 짓고 사셨던 이광렬 할아버지와 조 씨 성함을 가지신 할머니.
나는 그때 이 마을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고 있었다. 청년의 어깨에 목회의 사명을 얹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며 기도를 올리던 시절이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교회 의자에 앉아 성경책을 덮고, “주님, 이 마을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무언가 선한 일, 작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촛불 같은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나는 면사무소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가장 어렵고 나이 많으신 다섯 가정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맨 먼저 찾게 된 곳이 바로 그 노부부의 집이었다.
처음 찾아간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길가에 지어진 작은 집은 담장도, 대문도 없이 그대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낙엽 타는 냄새를 싫어 날리던 가을 오후였다. 대청마루 앞에서 나는 조심스레 외쳤다.
“어르신, 계세요?”
잠시 후 삐걱 열리는 문 사이로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몸의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누구신데 이런 누추한 집까지 찾아왔소?”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누추하다 말하는 그곳은 참으로 정갈했다. 세상과 꼭 맞닿아 있는 외진 곳에서 둘이 함께 살아온 삶의 냄새가 방 안 가득 스며 있었다.
좁은 방에 들어서자 할머니께서는 아랫목에 누워 계셨다. 벌써 10년째 그렇게 누운 채 사신다고 했다. 하반신 마비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지 오래라 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할아버지의 손이 아닌 손에 의지해 살아본 적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날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할머니가 다시 일어나 걷게 해 주십시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장날 구경 한번 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우리는 주말마다 쌀 한 되, 과일 한 소쿠리를 들고 노부부의 집을 찾아갔다. 그 집은 더 이상 외딴곳이 아니었다. 마치 내 친가처럼, 고향처럼 따뜻해졌다.
할머니는 우리가 올 때마다 반가워하시며 늘 같은 인사를 건네셨다.
“하늘 새끼들 왔나?”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하늘 새끼’란 말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도 우리를 하늘에서 보내준 자식처럼 여겨주신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할머니가 우리를 그렇게 불러주시면서 본인이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몇 해 전 가을의 막바지였다. 서울에 잠시 다녀온 사이 노부부 댁을 찾아가니 집 안 공기가 싸늘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마치 제 몸을 겨우 추스르고 계신 듯 의자에 앉아 계셨다.
“할머니, 돌아가셨군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뺨을 타고 흘렀다. 돌아가시기 전날,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나도 예수 믿어야겠네. 하늘 새끼들이 이리도 나를 좋아해 주는데, 나도 믿어야지.”
그 말을 들은 나는 기쁜 마음에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영접기도를 드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할머니와 드린 마지막 기도가 될 줄은.
나는 할머니가 평생 누워 계셨던 그 방 한가운데 서서 중얼거렸다.
“할머니, 이제는 하늘 새끼 되셨네요. 예수님 곁에서 편안히 쉬세요. 천국에서는 꼭, 꼭 걸어 다니시는 모습 보여주세요.”
매년 그 계절이 돌아오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서쪽 하늘로 돌리게 된다. 붉게 물든 저녁놀 사이로 “하늘 새끼들 왔나” 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소리에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어본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두 분이야말로 내게 목회의 참모습을 알려주신 스승이었다. 성경처럼 묵직한 삶의 말씀을 남기고 가신 분들. 섬김이 무엇인지, 기다림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나는 다시 묻는다. 목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 곁에 앉아 “하늘 새끼들 왔나” 하는 그 한마디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배우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 이들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낼 때, 감사와 그리움이 섞인 기도로 두 손을 모으는 것.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꿈을 꾼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꿈.
그 꿈속 할머니는 어김없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 새끼, 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