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한 근과 저작권 사이에서
문산읍으로 향하는 길, 그날따라 볕이 참 반짝거렸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승합차 뒷좌석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타고 계셨다.
문산읍에 아귀찜이 맛있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사실 어르신들에게 중요한 건 ‘뭘 먹느냐’보단 ‘누구랑 먹느냐’ 일 테다.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어르신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으셔도 안다.
길이 멀다 하면 멀고, 가깝다 하면 가까운 그 거리. 승합차 안은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누구는 수박 모종이 다 말랐다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고, 또 누구는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속상한 마음을 툭 내비쳤다.
그러다가 문득 한 어르신이 조용히 꺼낸 이야기가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라믄 안 되지예. 고추 말려놨는 거를, 밤에 와가꼬 싹 가져가삤데이…”
처음엔 한마디였던 그 말이, 이내 물결처럼 번졌다.
“우리도 마늘 다 뽑아가지고 말릴라꼬 풀어놨는데, 하룻밤 사이에 씨도 없이 없어졌데이.”
“양파도 가져가믄 안 되는 기라. 1년 농사 다 헛수고 됐다 아이가.”
“지것도 아닌 걸, 어데서 그리 당당하게 팔고 있을꼬. 요새 사람들 양심이 있기는 한 기가.”
이야기들이 어우러지며 차 안은 어느새 작은 법정처럼 되었고, 어르신들은 마치 누구도 들어주지 않던 억울한 말을, 오랜만에 꺼내놓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저릿해졌다.
고추 한 근. 마늘 한 단. 양파 몇 자루.
그 속에는 단순히 작물만 있는 게 아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비닐을 걷고, 해가 지고 나서야 겨우 쪼그린 허리를 펴는 삶.
손끝이 갈라지고 허리춤이 시큰거려도, 누군가의 밥상에 오를 걸 생각하며 꾹 참고 해온 시간.
그 시간이, 그 마음이, 고스란히 그 고추 한 근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밤에 슬그머니 와서 그걸 통째로 들고 가버린다.
그건 단순한 물건 도둑이 아니다.
그건 사람의 ‘수고’를 훔쳐간 것이다.
‘정성’에 무단으로 손을 댄 것이다.
그 순간, 문득 머릿속에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글을 쓰는 내게는 너무 익숙한 말.
그러나 어르신들에겐 조금 낯설 수도 있는 단어.
하지만 그 뜻을 풀어보면, 참 익숙한 마음이다.
누가 쓴 글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고, 시를 베껴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고, 남이 만든 음악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는 행위.
그 모든 것이 ‘저작권 침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간단하다.
그것은 남이 정성껏 키운 ‘말의 고추’를 몰래 가져다 파는 짓이다.
글도, 음악도, 그림도
고추처럼, 마늘처럼
손끝으로 빚어낸다.
마음을 담아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말리고, 손질하고, 다듬는다.
글 하나를 쓴다는 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옮기는 게 아니다.
삶을 끓여내는 일이다.
사랑과 슬픔, 오래된 기억과 오늘의 하루를
서툰 손끝으로 꾹꾹 눌러 담는 것이다.
그런 글을, 그런 마음을,
아무 말 없이 가져가 버리는 사람들.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그건, 누군가가 1년을 들여 키운 고추 한 근과 같은 겁니다.”
이름도 없이, 출처도 없이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 건
그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훔친 것’이다.
법을 떠나서, 그것은 사람 사이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 사람의 수고에 손을 댄 것이다.
문산읍 아귀찜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어르신들은 다시 웃음을 되찾으셨다.
“그래도 밥은 묵어야지예~ 아귀찜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카이.”
나는 그 웃음이 너무 좋아, 잠시 차 문을 닫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추 말리는 널찍한 마당이 떠올랐다.
그 위에 얹힌 정성과 기다림, 그리고 고요한 바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동시에,
그 글이 누군가의 것임을 잊지 않고,
그 사람의 땀과 이름을 함께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정직하게 글을 쓰고
정성껏 자란 고추처럼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싶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이고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는 방식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