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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Jul 02. 2023

유통기한 이틀 남은 육개장 사발면을 2달러에 사고

그런데 왜 멜버른?

거주지를 옮기고 처음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만난 컵라면. 시내와 거리가 있고 아시안들이 모여사는 곳이 아닌데 그곳에 "육개장 사발면"이라는 글자라니. 그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거기에 마구 휘갈겨 쓴 숫자를 보니 단돈 2달러! 글자를 보자마자 "와!" 하고 탄성이 나왔다. 한국에 비해 3~4배 이상은 되는 한국 식품들 가격에 매번 실망했으니 말이다.


돈 없는 워홀러에게 라면은 필수품이라, 겟하기 위해 집어 들었는데! 그럼 그렇지. 2달러인 이유가 있었다. 그 길고 긴 라면 유통기한이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혹여나 컵라면 봉지를 뜯었는데 곰팡이라도 폈으면 어떡하나 했지만. 2달러에 컵라면을 살 수 있는 기회는 드물기에. 분명 이틀 안에 먹을 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데려왔다.



호캉스하고 싶네.


멜버른 시내에서 호텔로 들어가는 캐리어족을 보다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호캉스 그립다." "나 호캉스 하고 싶네?". 호텔 로비로 들어가면 반겨주는 우아한 향과 고급스러운 조명. 객실 키를 탭하고 문을 여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나의 기대감. 문이 다 열리면 보이는 칼 각으로 정리된 침대. "아 피곤해."라고 말하면서도 행복하게 침대 속으로 달려들고 싶게 하는 그 정돈된 분위기.

 

호텔에는 큰 관심 없이 살다 호텔 관련 프로덕트의 PO로 일하며 여러 호텔을 다니게 되었다. 때로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인스펙션과 트라이얼을 하고 때로는 집에 가기 늦은 날 호텔스**, 데**호텔, 야** 등 다양한 앱을 펼쳐보며 급 호텔 방문을 하기도 했다.



습관을 잘못 들여놨어, 정말.


매달 돈을 버는 직장인이었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늘수록 무엇을 하든 기대하는 평균치가 점점 높아졌다. 내가 가는 장소, 먹는 음식, 누리는 문화생활.


소주와 과자를 나눠 먹는 분위기가 좋던 대학생 시절, 조금씩 좋은 식당에 가보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 그리고 가끔 호캉스와 뮤지컬을 즐기는 n년차 직장인이 되기까지. 마음속 별점을 매기는 기준이 점점 올라가고 깨끗하고 깔끔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2달러에 기뻐하는 워홀러가 되어버렸네?



물가가 비싼 편이다.


나도 이 정도로 물가가 비싼 줄은 몰랐다. 인터넷을 서칭하며 보는 문구들을 대충 넘기면 안 됐다. "물가가 비싼 편이다."라는 한 줄에는 집값도 비싸고 생활용품도 비싸고 식당도 비싸고 모든 게 서울보다 (꽤 많이) 비싸다는 게 숨어있었다. '에이. 비싸긴 해도 서울에서 5년 가까이 살았는데 비슷하겠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비쌀 줄은!


물론 시급이 높다. 거의 2만 원이다. 그러나 전 세계 워홀러와 학생비자로 온 많은 지구인들이 몰린 지금. 잡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물가가 높지만 시급이 높아서 괜찮다', 그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란 말이지.



그런데 왜?


일단 호주였다. 몰타, 호주, 영국, 캐나다 이렇게 고민하다. 영어를 놓은지 오래기에 영어가 안되면 직업을 구하기 힘들 것 같은 곳은 일단 킵했다. 그래서 영국이 사라졌고 캐나다와 호주 중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었다. 캐나다는 이미지부터 추웠다. 그래서 호주가 남았다. 몰타를 갔다가 호주로 갈까 하다가 코로나 이후 치솟은 항공권 가격을 보고 놀라 호주에서 시작부터 함께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멜버른이었던 이유는


자 이제 후보군이 4개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워홀러들이 가는 도시들을 추렸다. 호주는 땅덩어리는 넓지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많지 않다. 여러 정보들을 찾아본 이후 이렇게 갈렸다. 시드니는 사람이 많고 워홀러도 많다. 브리즈번은 약간 시골 느낌이다. 퍼스는 아직 많이 안 간다. 그런데 멜버른은 내 취향이 담겨있다. 하루에 4개 날씨가 있지만 한국보단 안 춥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멜버른이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꼽자면 하나로 꼽힐 '축구', 그리고 일상이자 힐링인 '커피'. 호주에서 멜버른은 스포츠가 가장 발달한 도시고 커피로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곳이다. 그렇게 멜버른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불과 반년 전 한국에서의 소비 생활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상상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일이다. 하하. 멜버른 생활을 두 달을 넘긴 지금, 오기 전 보았던 정보들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지만. 개고생을 하러 간다고 굳은 다짐을 했어도 가끔 한숨이 나오고 호캉스가 매우 그립지만.


그럼에도 다시 결정한다면 여전히 멜버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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