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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Jan 19. 2021

희망을 감싸는 악력

Question.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공책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난이 휩쓸고 지나간 집에 내 방이라곤 없었다. 낡은 텔레비전, 옷장, 창고로 통하는 문 등 온갖 것이 다 있는 안방에 할머니와 나란히 함께 누우면 꽉 들어찼다. 지난한 가난이 이어져 할머니를 지치게 하고 나를 부끄럽게 할 때, 공책은 나만의 방이 되었다. 펜을 쥐면 창문이 열리는 방. 창문으로 까마귀가 자주 날아오고, 불이 타오르고, 정해진 위치 없이 돌아다니는 쿠션처럼 낱말이 휘날리는 방. 가난한 우리는 ‘거지’라서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두려워했다. 할머니는 매일 성실히 장으로 나가 배추며 무며 당근을 팔며 채소 장사를 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밝고 착한 아이로 커야 했다. 할머니와 고모는 나의 행실을 바로잡기 위해 매를 들었다.     




  폭력에 무감해지지 않기 위한 소소한 저항이었다. 공책을 가방에도 넣고 손에도 들고 다녔다. 수업 시간이면 수업 필기가 아니라 머릿속에 떠다니는 말과 릴레이 소설을 적었다. 학교나 학원에 새로운 국어 선생님만 왔다 하면 공책을 보여드렸다. 머리카락도, 안경테도, 생김새도, 목소리도, 주변 환경도 모두 다른 선생님들의 답변은, 놀랍게도 비슷했다.     




  “너무 부정적이네. 조금 밝은 쪽으로 써 봐.”     




  그때 무언가를 놓쳤다. 불안과 지루함과 공포와 분노가 ‘부정적이다’라는 말로 납작해졌다. 마음에도 손이 달렸다면, 손에 힘이 쭉 빠져 무언가를 놓친 것이리라. 놓쳤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 어떤 것이 희망이라는 것도. 마음의 악력이 약해진 채로, 희망의 허리끈을 부여잡았다.      




  가을이 왔다. 만추가 무성하고 감이 열린 날에 일기를 들켰다. 숨기고 싶었던 가족에게. 용납하지 않는 어른. 1등과 완벽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어른이 방문을 열었다.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마치 악어에게 잡힌 듯 했다. 소도 놓치지 않는 힘을 가진 악어의 턱은 손이 되었고, 강하게 몸을 돌리는 등은 회전하는 악어의 둥근 등이었다. 어른이란 뺏는 존재인가. 공책을 놓쳤다. 일기장에 쓰인 어둡고 불만이 가득한 십 대 아이의 글을 읽더니 쭉쭉 찢었다. 죽고 싶고, 비관하고, 분노하는 것은 어른에겐 1등이 아니었다. 하물며 수치스러운 감정이었다. 수치스러운 감정을 공책에 적었다는 것만으로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이웃 중에 누구라도 알게 된다면 ‘그 집 네 손녀가….’ 혹은 ‘그 집 네 조카가….’ 하며 입방아에 오르내릴 일이었다.        



  

  무형의 아름다운 것을 놓치는 감각은 추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추락이기보다 우주에 맨몸으로 떠 있는데도 호기심이 들거나 두렵지 않았다. 무(無)였다. 악어에 목덜미가 물리고 눈물을 교정 당하는 동안 나는 놓치는 데 익숙해졌다. 지키려고 하면 실망하고 빼앗겼다. 찢기는 공책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안방 바닥을 메우는 종이들의 잿가루를 보면서 무력해지고, 무감해졌다. 생각을 멈췄고 글을 쓰지 않았다. 2010년이었다.      




*            



        

  맑은 하늘색의 치마와 연청색의 재킷을 입고 경주 불국사에 도착했다. 벚꽃이 저물어가고 겹벚꽃이 무성해지는 시기. 흙바닥을 메우는 진홍색과 분홍색의 융단. 낮은 벚나무들이 사람의 얼굴에 꽃잎을 맞대며 비비적거리는 2018년, 3월이었다. 백화점에서 함께 일하는 매니저님과 둘째 언니가 나를 각별히 여겨주었다. 그들 마음에 있는 넉넉함과 유쾌함이 다시금 마음의 손을 갓 태어난 아이처럼 쥐락펴락 움직이도록 했다. 둘째 언니가 벚꽃이 아주 예쁘던데, 같이 불국사를 가자고 했다. 그날 눙눙(가명) 언니가 찍어 준 사진을 인화하여 공책에 붙였다. 여행 일지의 시작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길렀던 눙눙 언니는 정해지지 않은 순간에도 나의 사진을 찍었다. 걸어가는 모습, 웃는 모습, 밥을 와구 와구 모습이 언니의 시선으로 담겼다. 디지털 시대에 나는 아날로그의 발자국처럼 사진을 인화했다. 장당 450원. 몇 장만 뽑아 몇천 원을 냈다. 푸른 나뭇잎을 스치고 얼굴을 밝히는 햇빛과 웃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폭력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제일.  



   

  뭐 하나 삐끗하면 혼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좋나, 수현아? 아이고 잘 웃네, 잘 먹네.’ 해주는 눙눙 언니와 함께 묘지와 꽃밭을 걸었다. 피자를 두 손으로 먹든, 한 손으로 흘린 올리브를 줍든 언니는 마냥 잘 먹는다고 했다. 치마를 입고 마구 뛰어다니든, 춤을 추든 함께 꺄르르 웃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자꾸 웃었다.      




  잔잔한 호수에서 몸을 띄운 것 같은 감각. 마음은 호수 속에 손을 담갔다. 그러쥐려는 불안 없이, 천천히 호수에 누워 손을 저었다. 윤슬처럼 희망이 손가락 사이를 유영했다. 희망은 폭죽 같은 소릴 내지 않는구나. 희망을 잡으면 물이 가볍게 찰랑이는 소리가 나는구나. 우리의 웃음처럼. 그렇구나, 햇빛이 달군 물의 표면처럼 따스하구나.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눈물마저 양지에 나올 수 있다는 해방감을 살포시 손에 담았다.     




  사진만 붙이던 여행 일지는 변화한다. 사진 밑에 몇 마디씩 쓰기 시작했으므로. 다시 쓰기 시작하는 순간. 다시, 다시 잡은 순간이었다. 나를 지켜보자는 희망을.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자꾸 쓰는 것은 가족을 부양할 생각이 없고, 그것은 이기적이라는 사람들에게서. 글이 곧 내가 되는 순간을 지키고 싶어졌다. 마음이 손을 뻗어 써도 된다는 허용의 희망을 물질했다. 어떤 감정을, 낱말을 적어내든 긍정해도 된다는 희망을. 




  2010년. 갈기갈기 찢어 공책이 죽었다. 나도 죽었다. 마음의 방에 창문을 잃고 시체처럼 나를 눕혔다. 그때 죽었던 것을 다시 되살려 놓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넉넉함과 각별함, 웃음. 8년 만에 되찾은 희망을 지킬 수 있을까.               




*                         




  2021년 1월 16일. 겨울이 물러가고 햇살의 꼬리가 길어지는 날. 북성로 대화의 장 공동 작업실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무기력과 희망을 다시 써내며 차게 식은 두 손을 모은다. 북성로에 한쪽에 전구들이 불을 밝히는 책상. 달궈진 커피잔 바닥을 받쳐 올리며 손을 녹인다. 두려웠던 시절을 써내느라 피가 통하지 않는지 손 마디마디가 식었지만, 손끝은 뜨겁다. 타자를 열렬히 쳐냈기 때문이리라. 손이 창백해질 정도로 쥐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으로, 커피잔을 살포시 감싼다. 믿음과 마음의 악력으로, 희망을 감싼다. 희망을 지키기에 적당하고 온온한 악력으로.                                        





*

<본 글은  대화의장 'PAGE OF DAEHWA 2020'에 요약 기고한 글의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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