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껌이란
울적함을 달래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
나에게 껌이란 울적함을 달래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다.
울적할 땐 껌을 씹어야 한다. 울적함의 정도가 심하다면 풍선껌을 씹어라. 분명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나는 왕년에 껌 좀 씹던 여자다.
그 시절엔 껌이 귀했다. 껌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껌이 귀할 수밖에. 나는 껌을 반으로 잘라 반쪽씩 먹었다. 지금도 그게 습이 되어 껌을 반쪽씩 먹는다. 이제는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껌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껌 천 통도 넘게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있다. 껌에 대해서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지 꽤 되었다.
껌은 들판에 널려 있는 삐비를 뽑아서 씹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 껌은 단맛이 났다. 이 사이에 넣으면 찰지게 씹혔고, 씹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서 기분을 좋게 했다. '똑똑똑', '똑딱똑딱', '짝짝짝', '찍찍찍', '통통통', '퉁퉁퉁','텅텅텅' ,'푸우푸우' , '딱딱딱' 껌은 종류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씹는 소리가 달라진다. 참 신기하다.
껌은 슬프고 외로울 때 나에게 늘 위안을 준다. 껌 씹는 박자에 맞춰 기분도 점점점 좋아진다.
껌을 씹을 때는 이상하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껌씹는 나는 우쭐댄다. 껌씹는 동안 나는 천하에 무서울 게 없다.
껌은 아무리 씹어도 삼키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풍선껌이 아니어도 풍선을 불 수 있다.
껌은 잡념을 없애고 싶을 때도 좋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껌 하나를 일주일 정도 씹는 게 기본이었다. 하얗던 껌은 시간이 지날수록 까맣게 되었다.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는 씹던 껌을 벽에 붙여두었다. 벽에 몸을 기대고 앉을 때 조심해야 했다. 나 말고도 벽에 껌을 붙이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 좋으면 껌이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재수 없으면 머리카락에 달라붙기도 했다.
벽에 붙여 놓은 껌이 없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껌 도둑은 찾을 수 없다. 차라리 껌 도둑이 되는 것이 쉽다.
껌을 씹다가 삼키면 장이 달라붙어 죽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생과 장난치다가 그만 껌을 꿀꺽 삼키고 대성통곡을 했다. 똑똑한 언니가 그건 소문일 뿐이라고, 껌은 다 뱃속에 들어가면 똥이 된다고 했다. 껌을 한 두 번 삼키고 똑똑한 언니의 말을 들은 후 소문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이나 순진한 친구들을 골탕먹이려고 거짓소문을 진실인양 계속 퍼트렸다.
우리 집 애들이 껌을 삼켰을 때도 그 소문을 써먹었다. 겁 많은 큰 아이는 울었다. 반면 작은 아이는 "엄마, 먹은 건 다 똥으로 나와요. 책에서 봤어요.'라고 말하며 오히려 날 가르쳤다.
껌 씹다가 잠들면 안 된다. 자는 도중 껌이 머리카락이나 침구에 달라붙을 수 있다. 침구에 껌이 달라 붙으면 엄마에게 등짝만 한두대 맞으면 된다. 그러나 머리카락에 껌이 덕지덕지 달라붙으면 머리를 잘라야 한다. 그 시절엔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머리카락에 껌이 달라붙어 머리를 자르곤 했다. 껌 씹기를 즐겨하던 요즘애인 우리 집 아이들도 껌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머리를 자른 적이 있기는 하다.
풍선껌은 일반껌보다 늦게 씹기 시작했다. 풍선껌은 씹는 재미와 풍선을 부는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친구들과 누가 누가 더 크게 풍선을 부는지 시합하기도 했다. 풍선을 크게 불어 친구에게 자랑하면 친구가 손바닥으로 풍선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는 영재성이 있어서 풍선을 꽤 잘 불었다.
우리 집 애들이 유아였을 때 나는 종종 풍선껌을 씹어 풍선을 불었다. 남편이 옆에서 손바닥으로 풍선을 터뜨리면 애들이 '깔깔깔' 웃었다. 껌으로 풍선을 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우리 집 애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이스크림 막대에 껌이 들어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껌도 먹고. 꿩 먹고 알 먹기다. 더 나중에는 막대 사탕 안쪽에 껌이 들어 있는 제품도 있었다. 사탕에 껌이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내 취향은 아니다.
봉지에 쌓여있던 껌만 먹다가 반들반들한 알약 같은 껌들을 먹기 시작했다. 이 껌들은 껌통에서 껌을 꺼내는 재미를 솔찬히 준다. 껌통에 있는 껌은 흔들었을 때 '찰캉찰캉찰캉' 경쾌한 소리가 나서 씹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큰 아이는 여덟 살 때, 작은 아이는 여섯 살에 풍선껌으로 첫 풍선을 불었다. 그전부터 애들은 풍선껌으로 풍선을 불고 싶어 했다. 풍선껌으로 풍선을 부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인가 보다. 난 정말 쉽게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남편과 연애할 때 커피숍에 갔다.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한 손바닥 위에 씹던 껌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남편이 눈이 똥글해지더니 손바닥 위에 껌을 올려놓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단물이 안 빠져서라고 답했다. 나는 남편에게 껌이 얼마나 귀한지, 나에게 껌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다음부터는 씹던 껌을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내가 입안에 음식을 넣을 때나 물을 마실 때 잠깐씩 손바닥에 위에 껌을 올려놓는 것을 보고 자랐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씹던 껌을 손바닥에 올려놓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애들에게도 엄마에게서 껌이 갖는 의미를 알려 주었다. 작은 아이는 껌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몰랐다고 했다.
우리 집 애들은 지금도 "엄마, 심심하면 껌 씹어."라고 말하며 껌을 건넨다.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가면 아이들은 "엄마, 껌 안 사?"라고 묻는다. 우리 집은 마트 갈 때마다 껌 한 통은 기본으로 사 온다. 내가 울적해하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껌을 준다. 기특한 놈들.
보건교사라는 업이 생각보다 외롭고 울적하다. 학교생활의 울적함을 달래려고 보건실에서 껌을 사두었다. 어느 날 씹던 껌을 뱉는 걸 잊어버리고 5학년 보건수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지? 입안에 단물이 안 빠진 껌이 있는데. 벽에 붙여놓고 수업 끝나고 떼어서 먹을까? 선생님 어렸을 때 껌을 벽에 붙였다 떼어먹는 건 평범한 일이었어요. 여러분은 씹던 껌 벽에 붇였다 떼어서 먹은 적 없죠?"라고 웃으면서 물었다. 학생들에게 껌이 얼마나 귀한지, 껌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마무리는 이젠 껌 천 개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은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보건수업이 시간에 빙고게임을 했다. 선착순 10명에게 선물로 껌을 주기로 했다. 학생들이 의지를 불태워 게임에 참여했다. 나는 선착순 10명에게 껌은 주며 "이 껌은 단순한 껌이 아니라 선생님의 인생이 담긴 의미 있는 껌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학생들은 껌이 그동안의 껌이랑 맛부터 다르다고 했다.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너무 힘들어서 축 쳐져 있는 날이었다. 5학년 학생이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살며시 껌 하나를 주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으로 껌의 의미를 되새겼다.
학생이 준 껌을 씹자 기분이 점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