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는 민들레 Aug 18. 2024

학교에 못된 개는 없다

원망하지 말자

 "땡땡땡 선생님 아시죠? 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셨잖아요. 그 선생님 5시에 예약하셨어요. 이따가 염색하러 오실 거예요."


 '땡땡땡'선생님의 이름을 듣자 심장이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땡땡땡 선생님은 전에 두 번(8년)이나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다.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업무갈등이 심했던 그 시기에  '선생님, 많이 힘들죠? 많이 속상하시겠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 선생님께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 선생님도 바빠서 그랬겠지.', '그 선생님도 직장에서 살기 위해 그랬겠지.' 싶지만서도 그 서운함이 원망으로 자리 잡았었다.


만기를 채우고 다른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도 서로 모른 척하며 그렇게 헤어졌었다.


그 사건의 발단은 '공기청정기 설치'였다.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교실마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라는 공문을 보냈었다.


그 공문은 많은 학교에 업무분쟁을 일으켰다. 행정실도 보건교사들도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관리자에 의해 업무를 지정받은 대부분의 교직원들은   불만은 품은채 그냥 업무를 했다. 그러나  일부 학교에서는 업무를 지정 받은 자가 공문 재지정을 요청했다. 나는 이 경우에 해당했다.


 업무조정을 위해 업무정상화 회의가 열렸다. 나는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것이 보건교사의 업무가 아니다고 생각했었다. 그땐 난 너무 젊었고 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지금이라면 그때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주장하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냥 업무를 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내가 하는 것이 맘 편하다는 것을 안다.


업무정상화 회의에는 관리자, 각 학년부장, 행정실 대표, 공무직 대표, 그리고 나, 교무부장, 연구부장, 행정실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해 보면 비교과대표도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없었다. 회의는 관리자와 교무부장 주도하에 한 시간 삼십 분가량 진행되었다.


회의시작 초기에 난 논리적으로 내 업무가 아님을 주장했다. 학교의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보건교사가 시설물을 설치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냐, 공기청정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등을 주장했다. 회의 참석한 교사들이 돌아가며 반격했다. 학교 컴퓨터도 교사인 자신이 관리한다, 교사인 자신도 정보화 기기 하나도 모른다, 배움터 지킴이도 교사가 채용하다, 학교 CCTV도 다 교사들이 구입하고 관리한다고 했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되면서 나는 모든 교원들의 공격을 받았기에 후반부에는 논리 없이 '나는 못한다. 계속 강요하면 학교 앞에 피켓을 들겠다.'라고 말했다. 최후에는 '다른 보건교사들에게 우리 일이 아니라고 앞장서서 주장하는 보건교사로서 도저히 저는 할 수 없다. 제발 제 입장을 받아줘라.'였다. 이 마지막 발언으로 나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했다고 또 한 번 수모를 당해야만 했었다.


나의 끊임없는 주장과 교사들의 반박으로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자 않자 관리자가 말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누구의 업무인지 말하라고. 공무직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교사들 앉아있는 순서대로 우물쭈물하며 "보건교사의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들은 관리자의 입장을 대변했을 것이다. 그들은 관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생을 지도하기도 바쁜 교사들이 한 시간 반이나 관심 없는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했으니 얼마나 짜증 났을까 싶다.


회의가 끝나고 그들은 다 회의장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 제일 먼저 그 자리를 떴다.  회의 장소를 나와 전교조 분회장 선생님 교실에 갔다. "관리자나 행정실은 그렇게 말하더라도 교사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전교조 분회장 교실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고 보건실에 왔다. 그 회의에 참석한 두 분의 선생님이 차례로 전화를 했다. 두 선생님은 "선생님,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답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는 전쟁터에서 이미 온몸에 총상을 맞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다면 나는 결정을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업무를 거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배짱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내가 체육부 소속이었기에 결국 그 업무는 체육부에 속했던 교사가 했다. 그 업무를 하기로 한 교사와 나는 평소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교사는 날 외면했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자녀가 보건실에 와서 인바디 검사를 해주라고 했는데 보건교사인 내가 바쁘다고 하지 않았다며 비야냥거리는 메시지를 장문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 선생님의 반응도 이해한다. 뜬금없이 나 때문에 그 큰 업무를 맡았으니 학생지도하면서 짜증 났을 것이다. 나는 그 선생님께 너무 미안했다.


그 사건이 내가 그 학교 만기를 4개월 정도 남겨두고 있던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그 회의에 들어온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회의가 생각났고 총상을 입은 곳이 아물지 않고 피를 토해냈다.


 그 시절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이는 귀여운 학생들이었다. 보건실에 와서 자기 고민을 이야기를 하고 나의 작은 도움에 감사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난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학교의 어른들은 나에게 모두 등을 돌렸지만 학생들만은 예전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믿으며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교를 옮기고 '교원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을 것이며, 교원들과 관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절대로 내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업무갈등이 생기면 그냥 한다.'라는 나름의 철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했으나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받는다.'라는 말처럼 좋은 교직원과 관리자들을 만나며 많이 치유되었다.


나는 그들을 더 이상  원망할 필요가 없다.  교사가 관리자  눈 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성적으로 그 사실을 잘 알고 다.  


그런데 왜 그 선생님의 이름을 듣고 내 심장은 날뛰었을까?


시공주니어에 '못된 개가 쫓아와요!'라는 그림책이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개가 못된 줄 알아서 피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착한 개였다는 이야기다.


학교에 못된 개는 없다. 나는 업무 정상화 회의에 참석한 그들을  자세히 보지 않았기에  그들을 못된 개로 여긴 것이리라. 


그 누구도 원망할 필요 없다. 원망하지 말자.


나는 남편에게 "그 선생님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한 지 오래되었는데 왜 심장이 쿵광거렸을까?"라고 물었다. 남편은 "네가 아직 어른이 덜 돼서."

나는 "빨리 어른되고 싶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더 이상 타인을 못된 개로 보지 않고 착한 개로 보는  것이리라.






이전 09화 왜 학생들은 발열을 탐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