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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Sep 20. 2024

왜 학생들은 발열을 탐하는가?

학원가기 싫어서

5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중학생 같은 6학년 남학생 땡땡이 3명이 보건실에 왔다. 셋이 차례대로 대기 의자에 앉았다.


-한 명씩 도와줄게요.


1번 땡땡이가 온다.

-어디 아파요?

-머리요.


-언제부터 아파요?

-1교시부터요.


-다른데 불편한 곳은 없어요?

-기침 조금 하고 목 아파요.


-언제부터요?

-이틀 전인가? 잘 모겠어요.


-집에서 먹고 온 약 있어요?

-네. 해열제 아침에 먹었어요.


나는 열을 잰다. 38.4다.

-열나는데, 38.4도야.

눈이 동글해지더니 금세 웃는다.

-학원 안 간다.


대기 중인  2번 땡땡이가

-좋겠다. 우리 엄마는 열나도 해열제 먹고 가라고  하는데.

내가 2번 땡땡이를 바라보며

-으메, 너 짠하다. 어쩌냐?


1번 땡땡이가

-우리 엄마는 아프면 학원 빼죠.

라고 자랑한다.

3번 땡땡이가

-우리 엄마도 아프면 학원 빼죠.


큰 아이 중 2 때가 생각났다. 아이가 38도였다. 나는 학원에 전화해 아이가 열나서 오늘은 학원에  간다고 했다. 학원 선생님께서 "어머니, 해열제 먹이고 보내세요. 오늘 개념설명하는 날이라 빠지면 안 돼요."라고 했다. 나는 귀가 얇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


아이가 중 3 때 비염으로 콧물이 심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콧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난 또 학원에 전화해 비염이라 오늘은 쉰다고 했다. 선생님께서는 비염약 먹이고 보내라고 했다. 그때도 나는 귀가 여전히 얇았다.  나는 비염약을 먹여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


1번 땡땡이에게

-학원 뭐 다니는데요?

-영어, 수학요.


-중학교 수학하냐?

-네.


-몇 학년 해요?

-2학년이요.

-고생 많다.

웃는다.  해열제를 주고 침대에 눕혔다. 담임에게 학생의 상태를 알리고 보호자 연락을 요청했다.  




-2번 땡땡이, 이리 와요?

병색이 좀 있어 보인다. 가래 기침을 한다.

-어디 아파요?

-목 아파요.


-언제부터 아파요?

-3일 됐어요.


-집에서 약 먹었어요?

-네. 감기약 먹었어요.


-급식 먹었어요?

-네. 조금요.


-몸컨디션 통증척도(10점 척도,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점수가 높다)에서 찾아보자. 몇이야?

-8이요.

-많이 아프구나.


-어제 잘 잤어요?

-아니요.


-왜?

-학원숙제 하느라 늦게 잤어요.

요즘 학원들은 무슨 숙제를 그리 많이도 내주는지  모르겠다. 학교 숙제는 없는데 학원숙제가 많다. 정말 배우는 것은 인자 모두 학원에서 하고 있나 보다.  6학년 보건수업 가면 최소 두 명은 학원숙제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학원숙제 하는 학생들을 혼냈다. 보건수업시간에 숙제라니 하면서. 근데 이제는 한 번 부탁해 본다. 수업 끝나고 나중에 하라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착해서 말하면 숙제를 책상 서랍에 넣는다. 그러나 다시 꺼내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학원숙제 하라고 그냥 내버려 둔다. 많은 학원 숙제, 놀고 싶은 마음, 정해진 시간. 이 사이에서의 학생이 얼마나 힘들지 이제는 이해한다.


요즘  학생들은 주요과목을 학원에서 배운다. 초등에서 중등을, 중등에서 고등을 배운다. 고등 가서는 등급이 안 나와서 낙담한다. 대한민국 학생들 불쌍하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한국에서 태어난 것 뿐이라.


-무슨 학원 다니는데?

-땡땡학원 영수요.

땡땡학원.  학생들이 책상에 폭파버튼 만들어 놓고 폭파시키고 싶어 한다는 유명 학원이다. 그 학원출신 아이들이 중고등 상위권은 다 잡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받으니 당연히 그러겠지. 우리 애들도 다녔던 학원이다. 학원은 강압적이고 숙제가 엄청나다. 숙제를 안해가면 남겨서 끝까지 하게 한다.


-고생 많구나. 열재보자.

-38도다.


-일단 해열제 먹어보자.

-네

학생의 건강기록을 살폈다. 특이사항 없다. 몸무게를 측정하고 약을 먹였다.


-보호자에게 연락해 줄게.

-네


-담임 선생님한테 열난다고 엄마한테 오늘은 학원 보내지 말라고 말해주라고 할까요?

-네.

-너희 선생님 워낙 말씀 잘하시잖아. 오늘 학원 쉬게 될 거야.

2번 땡땡이가 웃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연배가 좀 있으시다. 누구에게나 기분 좋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잘하시는 분이다. 그 분야의 천재다. 다행이다.


담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2번 땡땡이는 열나서 해열제 먹었고 방과 후에 가정에서 푹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코로나에 감염된 학생이 많습니다. 학원가지 않고 가정에서 쉴 수 있게 보호자에게 안내전화 부탁드립니다. 꼭 학원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해열제 주고 침대에 눕혔다. 퇴근할 즈음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다. 2번 땡땡이 어머니께서 오늘은 학원 보내지 말고 가정에서 쉴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단다. 역시 좋은 담임선생님이다.


-다음 3번 땡땡이, 이리 와요?

-어디 아파요?

-머리요.


-언제부터 아파요?

5교시부터요.


-5교시에 무슨 공부했어요?

-체육요. 강당에서 피구 했어요.


-6교시는 어떤 공부하나요?

-국어요.

안색이 좋은데 머리 아프다고 하는 학생들은 꾀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학생들이 보건실에 오는 경우에는 교실에서 어떤 공부를 했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꼭 물어봐야 한다. 주로 저학년은 받아쓰기 시간, 고학년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시간에 보건실에 온다.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는  두통으로 보건실에도 오지 않는다. 아파도 참고  끝까지한다. 체육시간에 머리가 아픈 학생은 정말 아픈 것이다.


-(통증척도를 가리키며) 어느 정도 아파요?

-3요.


-평상시에도 자주 아파요?

-네


체온계를 들고

-열재보자.

-선생님,  열나면 좋겠어요.

-왜? 학원 안 가게?

-네

웃는다. '저는 꾀병이에요. 공부하기 싫어서 왔어요.'라고 광고를 하는 격이다. 귀엽다. 웃음을 참다가 피식 웃었다. 내 모습을 보고 학생이 또 웃는다. 바보 같은 녀석. 이 학생 덕분에 오늘 하루 피곤함이 싹 날아간다.


-뭐 뭐 다니는데요?

-영수요

-어쩌냐? 열 안 난다. 36.8이야.

꾀병이 의심되지만 1%의 만약이 있을 수 있다. 두통을 호소했기에 오심, 구토, 어지러움, 시야변화 등에 대해서도 문진 했다.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다 정상이다. 어젯밤 잠은 잘 잤는지도 덧붙였다. 유감스럽게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체육시간에 땀도 흘리고, 공부도 하기 싫은가 보다고 결론을 내렸다. 점심 먹고 운동하고 국어 하려면 얼마나 잠도 오고 힘들겠는가. 보건실 침대에서 좀 쉬고 싶은 마음 이해가 된다.  학원도 가기 싫은 마음도 이해된다. 그러나 교실로 보내야 한다.


-물 한잔 마셔요.

학생이 물을 마셨다.


-땡땡아, 교실 가서 공부하자. 학교 끝나고 학원에서도 열공해라. 열 안난다. 운명이니 받아들여야지. 공부도 열심히 하다 보면 재미있다. 정말이야. 오늘 학원에서 열심히 해봐. 선생님 말이 진짠지, 가짠지.  얼른 교실로 가세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1.2번 땡땡이들도 웃는지 웃음소리가 난다. 3번 땡땡이도 웃었다.


-다음에 열나면 꼭 엄마에게 연락해 줄게요

나는 선심쓴다. 이상한 희망을 심는다.

-네

큰 소리로 발열을 탐한다. 학생들이 학원때문에 발열을 탐하기 시작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대한민국 초등과 중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픈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3번 땡땡이는 다른 학생들 처치하는데  15분, 본인 처치하는데 5분. 최소 20분 정도는 보건실에 있었다. 그 정도 기분전환했으면 됐다. 20분 후면 하교다. 물 마시고 교실로 올라가는 3번 땡땡이의 걸음이 가볍다.



2시 40분.

이번에는 5학년 땡땡이가 가방을 메고 보건실에 왔다. 아픈지 걸어오는데 힘이 없고 안색이 안 좋다.

-어디 아파요?

-머리요.


-언제부터요?

-그제부터요. 그제부터 열났어요.


-열재보자.

열이 난다.


-열이 나네. 해열제 먹어야겠다.

-선생님, 조금 전에 해열제 먹었어요. 엄마가 열나면 먹으라고 줘서 먹었어요. 교실에서 나오기 전에요.


-근데, 왜 보건실에 왔어요? 먹었으니 집에서 쉬면 될 것 같은데......

-엄마가 학원 하나 가고 집에서 쉬래요.


학생이 보건실에 온 목적을 알았다. 학원 하나 때문이다.

-그럼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해 줄게. 핸드폰 있지?

-네

-엄마에게 전화해요. 스피커폰으로.


학생이 사랑하는 엄마로 저장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땡땡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땡땡이가 열이 납니다. 안색도 안 좋아 보여요. 요즘 코로나가 유행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 가지 않고 가정에서 쉬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땡땡이가 학원 하나는 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하나도 쉬게 해야 할 것 같아요.

-당연하죠.

어머니께서 호탕하게도 웃으신다.

-오늘은 쉬면 내일은 좋아질 겁니다. 땡땡이 바꿔줄게요.

-엄마, 나 학원 가?

-아들. 오늘은 집에서 푹 쉬어.

-네

안색이 안 좋았던 학생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지나갔다.


우리도 아프면 일하기 싫다. 우리도 아프면 일에 효율이 떨어진다. 우리도 아프면 쉬고 싶다. 하물며 아이들은 얼마나 쉬고 싶겠는가.


대학생이 된 아이가 아픈 날에도 학원을 보냈다고 엄마도 참 지독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때는 엄마가 뭘 몰랐다고, 어리석었다고 사실대로 말하며 용서해 주라고 했다. 내가 너무 진지모드여서인지 아이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그때는 아이가 학원 하루 이틀 빠져도 되고 안 다녀도 되는데 그걸 몰랐었다. 불가능하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사교육은 안 시킬 것이다.  학원비도 아깝고, 하기 싫은 공부 하며 스트레스 받는 아이도 불쌍하다. 차라리 실컷 잠자고, 실컷 놀게 내버려 둘 것이다. 놀다 보면 배우는 게 많다. 이제야 귀가 두꺼워지나 보다.  학원을 다니든 안 다니든 공부할 놈들은 다 공부한다. 놀 놈들은 다 논다. 공부 못해도 주변에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쌔고 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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