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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11. 2024

독한 엄마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야.

사회가 날 독하게 만들었어. 미안해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해도 집에 오지 않은 세상 독한 엄마야."


학생의 보호자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

학생이 아프다고 한다. 보건교사인 내가 판단했을 때 학생은 병원에 가야 하거나 가정에서 요양해야 한다. 보호자에게 담임교사 또는 내가 직접 전화로 학생의 상태를 알린다.  보호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보호자가 학생을 데리러 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친한 후배를 만났다.

후배가 “선생님, 학생이 열이 나서 보호자에게 연락했는데 보호자가 데리러 올 수 없다고 저보고 병원에 가주라고 하는 거 있죠. 나 참. 보건실은 아픈 학생들로 미어터지지, 오늘 진짜 미쳐 불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보호자가 여기저기 연락해 보더니 마침 야간 근무하고 쉬고 있는 고모부를 찾아서 고모부가 데리고 갔어요. 진짜 저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긍게. 보호자도 얼마나 바쁘면 그럴까 싶다가도 우리 상황도 상황인지라 그런 경우 정말 힘들어요.”

“선생님, 대기 학생 10명도 넘고 침대도 다 찼는데 저보고 병원 데리고 가라고 하는 건 좀 그러잖아요.” “보호자는 우리 상황을 모르니까. 초등에서는 보건실을 애 맡기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2시 30부터 4시 30분까지 학생 데리고 있었던  적도  있어요.  학생이 체육시간에 다른 학생이랑 머리를 좀  부딪쳐서 가정에서 주의깊게 관찰해주라고 했더니 보호자가 자신이 4시 30분에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그때까지 봐주라고 해서 데리고 있었어요. 심지어는 보호자가 늦게와 5시까지도 데리고 있적도 있어요.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우리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 거절 못하겠더라고요. 보호자도 아픈 학생을 학교에 두고 데리러 오지 못해 속상할 거예요.  우리가 이해해요. 다만 진짜  보건실에서 학생을  데리고 있을 수 없을 때는 욕먹더라도 단호하게 말해야죠. 우리도 살아야지.”

  

나는 시댁도 친정도 시골이어서 주변 사람 도움 없이 딸 둘을 키웠다. 지금은 사회적 분위기도 좀 바뀌었기에 예전 보다 공무원의 경우는 눈치를 덜 보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양육자의 부담을 덜어주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사정이 생겨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다는 것은 직장이 눈치를 주든 주지 않든 불편하다. 교사는 대부분은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학기 중에 연가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가 아파도 학교에 출근하는 교사들을 정말 많이 봤다. 젊은 선생님들이 "우리 반 애들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나왔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면 가슴이 찢어진다. 내 일 같아서. 교사들은 매년 연가가 남는다. 누구는 당당하게 연가나 가족 돌봄들이 권리라며 사용하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은 당당하게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열 살 전에는 일반적으로 잔병치레가 많다. 학생이 아픈 경우 5, 6학년 정도는 혼자 병원에도 가고 가정에서 요양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저학년 학생들은 그런 경우 어른들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할 때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양육자는 속이 미어터질 것이다. 아이가 아팠을 때 보호자의 내적 갈등은 상당하다. '내가 얼마나 번다고.', '아이들 때문에 돈 버는데 지금 잘하고 있나.', '애는 나 혼자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나만.', ' 윗사람한테 또 뭐라고 말해.', '지금 나갈 상황 아닌데.',‘누구한테 부탁하지.’ 여기에 교사들은  "내 애 저러고 있는데 나 지금 여기서 다른 집 애들 돌보며 뭐하는거야.'라고 생각하며 서글퍼한다.


큰아이가 2살 때 폐렴에 걸렸었다. 그 당시 아이를 내가 살던 아파트 인근의 가정집에 맡겼었다. 그 가정집에는 우리 아이 말고 2명의 아이가 더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분이 아이가 열이 난다고 해서 퇴근 후 아이 엎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폐렴이라며 입원하라고 해서 입원했다. 그 당시 나는 보건교사 2년 차였다. 남편은 6년 차 공무원었는데 직급이 낮았고 하필이면 그때 중요한 일로 관외 출장 중이었다. 당장 내일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아이를 돌볼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어떻게 어떻게 해서 왕래도 없는 자신의 사촌 누나를 찾았다. 그분이 오전 일곱 시 반까지 병원으로 와준다고 했다. 다음날 아이를 사촌 형님께 맡기고 출근하려는데 아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겨지니 병원이 떠내러 갈 정도로 울었다. 나는 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눈 안으로 집어넣고 출근했다. 일하는 동안 내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보건실의 경우 학생들 등교 시간부터 점심시간까지 학생들이 밀려온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보건교사는 3시 전에는 학교를 비우기가 힘들다. 그날 나는 오후 2시 즈음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아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조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울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당황하시면서 애 나을 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남편이 출장지에서 돌아오고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며 연가를 쓰면서 아이를 돌봤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늦가을에 독감에 걸렸었다. 그 당시가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라 학교에도 독감이 의심되는 발열 학생들이 많아서 바빴다. 관리자가 내가 조퇴만 해도 "보건 선생님 없으면 우리 애들 어떻게 해?"라며 온갖 눈치란 눈치는 다 주는 분이었다. 그분은 내가 학교를 비우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분이었다. 지금은 보건교사가 연가를 가면 교육청에서 순회 기간제 보건교사를 학교로 보내주기도 하고, 학교 자체에서 강사를 채용하기도 한다. 그 당시 그런 제도가 없어서 나는 관리자 눈치를 엄청  봤다. 나는 2학년이면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며칠 연가를 사용하고 하루 이틀정도 오전에만 아이가 혼자 집에 있기로 했다.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날 내게 전화해서 "엄마, 나 너무 아파요. 집에 와줘요. 저 이러다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죽으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는 “시계 볼 줄 알지. 2시 10분까지 갈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걱정하지 마. 너 인자 애기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도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 그때 아파서 보건실에 온 학생이 "선생님, 울지 마세요. 어디 아파요?"라고 물었었다. 지금도 작은 아이는 조금만 서운한 일이 생기면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해도 집에 오지 않은 세상 독한 엄마야. 나 절대 안 잊을 거야.  정말 매정한 엄마라고." 한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다고 하면 어디서나 등장해  “엄마가 나 초등학교 때 그랬어.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고.”라고 말한다.     


오래전 수영 체험 학습을 가는 날 3학년 학생이 피부가 가렵다고 보건실에 왔다. 학생의 피부를 살펴보니 수두가 틀림없었다. 담임교사에게 수두인 것 같다고 수두는 전염성이 강해 등교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임교사가 "선생님, 전염병에 대해 제가 잘 모르기도 하고 수영체험학습 때문에 바빠서요. 보호자에게 전화 좀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보호자에게 전화했다. "어머니 땡땡이가 수두인 것 같아요. 수두는 전염성이 강해서 나을 때까지 등교중지입니다. 지금 땡땡이 데리고 병원에 가보면 좋겠습니다. 학교로 데리러 올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싸늘한 목소리로 "어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안 옮기는 수두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안 옮기는 수두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의사에게 확인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라고 말했다. 5분 후 학부모가 "땡땡이 엄만데요. 지금 데리러 가겠습니다. 근데 언제까지 학교를 못 가나요?" “의사가 진단에 근거하여 전염력이 사라질 때까지입니다.” 보호자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어서 “어머니 의사 확인서나 진단서 내면 결석 기간 모두 출석 인정됩니다.”라고 말했다. 담임교사는 체험학습 차량이 왔다고 뒷일을 부탁하며 학생을 보건실에 두고 갔다. 나는 보호자가 올 것을 대비하여 교무실에 가서 그 반 열쇠 가지고 학생과 함께 교실에서 가서 가방을 챙겨 왔다. 30분 후에 한 여성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보건실에 들어왔다. 그 여성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학생의 이름을 부른 후 학생을 데리고 쌩하니 가버렸다. 나중에 그 보호자는 내가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애 앞에서 엄마를 다그쳤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보호자는 학생에게 엄마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관리자에게 요구했다. 학생은 유난히 귀엽고 인사성도 밝고 착한 학생이었다. 학생이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바랬다. 학생이 엄마를 불신하지 않기를 바랬다. 관리자는 한 술 더 떠서 보호자에게도 사과하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보호자에게는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호자는 나에게 화낸 것은 아니다. 양육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사회에 화를 낸 것이며 그 화를 공무원이기에 내가 받은 것 뿐이다.  그러기에 보호자에게 원망은 없다.

    

코로나 시기 때도 지침에 따라 등교 중지해야 한다고 보호자에게 알리면 보건실로 항의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학생들 중에는 "선생님, 저 기침하고 열나요. 근데 엄마가 보건실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저 너무 아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뉴얼대로 학부모에게 호흡기증상으로 인해 등교중지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학생을 바꿔달라고 해서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사회는 왜 부모가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가?.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너무 슬프다. 왜냐하면 보호자의 모습이 내 모습이니까.     


보건실엔 아픈 학생들이 많이 온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보건교사가 자신의 자녀만 대한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보건교사를 꿀직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솔직히 병원의 근무 환경보다는 괜찮다. 하지만 보건교사도 꿀직업은 아니다. 그런 분들은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쉬게 해 주세요.". "그냥 눕혀 놓세요."라고 말하지만 보건교사에게 그냥은 없다. 보건교사는 다른 학생을 치료하면서 끊임없이 침상에 눕혀 있는 학생을 살펴야 한다.


보건교사가 보호자에게 하교 조치나 등교중지를  요청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보건실의 바쁜 상황으로 학생을 데리고 있을 수 없거나 전문적인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가정요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 병원진료나 가정요양이 필요한 학생을 보호자가 일부러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학생을 학교에서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기에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출생률을 장려한다고 케겔 운동을 하거나, 정관 풀기, 여아 1년 조기 입학, 연애하면 백만 원 주는 정책 등에 웃음이 나온다.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나는 지자체에서 보호자 대신 아픈 학생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보호자가 학생에게 올 때까지  가정에서 학생이 요양할 수 있게 돌봐주는 정책이 생기면 좋겠다. 우리 사회구조가 아직은 양육자가 직장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학생은  아파서 집에 가고 싶고,

보건실 상황은 학생을 데리고 있을 수 없고,

학생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고

보호자는 직장에서 나올 수 없다.

    

아이도, 보호자도, 보건교사도 슬픔의 비를 날마다 맞고 있다.  언제까지 이 비를 맞아야 하는 걸까?  

지자체가, 사회가, 국가만이  슬픔의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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