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먹는 물 관리 누가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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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가 교직원 회의에서 보건교사와 협의하여 조만간 정수기와 냉온수기를 복도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날, 나는 출장이었다. 관리자는 회의직전 기간제 보건선생님께 냉온수기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단다. 기간제 보건 선생님께서 당황해서 "수질검사하고 사용해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학교 밖의 사람들이 본다면 보건교사? 냉온수기? 너무 엉뚱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학교 구성원들은 냉온수기는 보건교사라는 자연스러운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다.
관리자의 발언이 잔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소문에 의하면 학생회의에서 냉온수기를 복도에 설치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학년 간담회에서도 많은 선생님들이 냉온수기 설치를 요청했단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발언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복도의 냉온수기는 설치하는 일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 난 보건실을 운영하면서 관리까지 할 자신이 없다. 나는 성격상 어떤 일이든 맡으면 최선을 다하는 부류다. 일단 설치되면 대강 대강 관리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을 대강 관리하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급식이나 우유 등 학생들이 먹는 것은 영양 교사가 다 한다. 유독 먹는 물 관리만 보건교사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먹는 물 관리를 보건교사가 하고 있는 현실의 이상함은 학교 내에서 보건교사에게만 포착된다.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고 보건실로 가는데 관리자가 나에게 달려왔다. 출장 가던 길에 나를 보고 온 것 같았다. 관리자는 후관 3,4층에 냉온수기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학생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냉온수기는 설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관리할지 그 방법만 명확하다면 설치해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간단히 의견을 말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 교내 메신저로 3, 4층 복도에 냉온수기가 설치되었으니 학생들이 물을 마셔도 된다는 메시지가 왔다. '설치한다고 하더니 연락도 없이 설치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수질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학교의 먹는 물은 분기별로 수질검사를 해야 한다. 수질검사에서 적합판정이 나야 먹을 수 있다. 수질검사를 안 돼서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메시지를 보낸 이에게 알렸다. 그는 나에게 수질검사 전이니 마실 수 없다는 안내 메시지를 전체 교직원에게 보내라고 했다. 나는 '3,4층의 냉온수기는 수질검사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마시지 않게 지도 바랍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낸 이에게 전화하여 언제 설치했냐고 물었다. 그는 관리자가 보건교사랑 협의되었다고 설치하라고 지시하여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설치했다고 했다. 그의 인품을 아는지라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려고 전화한 것도 아니고 질책하려고 전화한 것도 아니였다. 그냥 언제 설치되었는지 궁금해서 전화한 것이었다. 그는 내 전화가 설치한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고 여겼나 보다. 목소리가 다른 때와 달리 통명스러웠다.
들리는 말로는 식생활관은 3시 30에 문을 닫아 학생들이 물 마실 곳이 없다고 한다. 식생활관은 왜 3시 30분에 닫는 걸까? 아마 3시 30분 이후는 학생들이 식사하는 곳을 지키는 이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식생활관의 냉온수기는 조리종사원이 매일 청소한다. 그렇다면 복도 냉온수기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른 학교에 물었더니 전문 소독업체에서 한 달에 한 번 외부 소독을 해주고, 미화 선생님께서 매일 청소해준다고 한다.
행정실에 냉온수기 전문 소독업체에 매월 소독을 의뢰해 주라고 말했다. 미화 선생님께 찾아갔다. 냉온수기 설치 장소를 알려주고 매일 외관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흔쾌히 해주겠다고 하셨다. 고마웠다.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냉온수기를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교사들이 바로 생활지도 한다. 그러나 복도의 냉온수기는 학생들이 바르게 사용하지 않아도 생활지도 하기 어렵다. 최근 초등학교는 아동학대 등의 위험성 때문에 담임들도 자기 반 학생이 아닌 경우 생활지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담임교사들에게 반 학생들이 냉온수기를 바르게 이용 할 수 있게 지도해 주라고 부탁했다. 호흡기 질환 감염병 예방을 위해 안내문도 만들어 붙였다.
-텀블러나 컵을 이용하기
-침이나 가래를 뱉지 않기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먹지 않기
설치된 냉온수기는 분수형 수도꼭지 두 개, 일반형 수도꼭지가 하나로 되어 있었다. 행정실에 물어 설치한 업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설치한 업체에 전화해 분수형 수도꼭지를 잠가 줄수 있는지 알아봤다. 입안에 음식물을 머금은 채 분수형 수도꼭지로 물을 마시면서 입안의 이물질이 수도꼭지로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초등학생이니까.분수형 수도꼭지는 입을 벌리기 때문에 침이 흘러 호흡기 질환 등 감염병이 생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물이 바닥에 흘러 안전사고의 위험도 존재한다. 교육지원실과 협의하여 분수형 수도꼭지 물을 잠갔다.
냉온수기가 설치된 장소에 8시 40분에 가봤다. 물이 뜨거웠다.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피부가 약하기에 온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설치업체에 온도 조절방법을 물었다. 업체에서는 물 온도를 데우는 타이머가 새벽에 맞춰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이 기계는 맞춰진 시간에 물이 데워지고 식어가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럼 물을 데우는 시간을 좀 당길 수 있는지 물었다. 업체는 가능하다고 했다. 업체에서 물을 데우는 시간을 몇 시로 맞출 건지 물었다. 나도 모르는데 물으니 당황스러워 생각할 시간을 주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한 영양 선생님께 몇 시에 타이머를 맞춰야 하는지 물었다. 10시 즈음에 타이머를 맞추고, 간혹 정전이 되면 늦게 물이 데워지니 아침마다 물 온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매일 3,4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물 온도를 확인해야 하는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냉온수기를 설치한 회사에 냉온수기 기계에 대한 간단한 사용법을 물었다. 업체 사장님께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는데도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한 선생님들에게 “왜 학교 먹는 물은 보건교사가 관리하는 걸까요?”라고 질문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보건교사 일이잖아.”라고 말한다. 지금의 보건실은 그들이 말하는 원래의 보건실이 아니다. 방문 학생수가 예전 같지 않다. 우리 학교만 해도 하루에 80명 정도의 학생들이 보건실에 온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질병처치에 대한 요구도도 예전과 다르다.
나는 그간 원래를 바꾸려고 무단히 애를 써봤다. 관리자들은 언제나 학교 행정실이 바쁘다, 영양 교사가 급식실 밖은 책임지지 않는다, 다른 보건 선생님들은 조용히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 내가 대신 보건 수업을 줄여 주겠다 등으로 나를 회유했다.
어떤 관리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 누가 관리하는 것이 맞나요?" 말문이 막혔다.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누가가 보건교사는 아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문성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때마다 직업적 회의가 든다. 학교 공동체에 자기 주장이 강하면 왕따, 은따, 일하기 싫은, 공동체에 협력하지 않는, 자기주장이 강한 이로 낙인찍혀 학교 생활이 힘들어진다.
먹는 물 관리에 대한 보건교사 업무 분장의 부당함을 20년 가까이 주장하였으나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보건교사는 잡부가 아니다.
공기청정기며 나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미세먼지며 교직원 결핵검진, 학교 성희롱 고충상담까지 너무 부당한 업무들이 당연하게 보건교사에게 주어지고 있다.
보건교사는 보건실을 운영하며 아픈 학생들을 치료하고 보건교육을 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이다. 내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생의 성장을 돕고 싶다.
학생들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맘이 조금 편안해진다. 이런 걸 열정페이라고 하나보다. 그런데 난 이제 열정페이 그만 받고 싶다. 남들처럼 노동에 대한 페이를 받고 싶다.
메시지를 보낸 이도 업체 알아보고, 예산 잡고 품의하는 등 설치하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나는 설치한 이에게 설치하느라 고생했다고, 학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도 어쩌면 냉온수기 설치가 자기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도 나처럼 열정페이를 받고 일했을 수도 있다.
복도의 냉온수기 누가 관리해야 하는 걸까?
이 물음의 대한 대답을 나는 언제나 찾을 수 없다